[오피니언타임스= 칼럼니스트  유세진]

온 세계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미 대통령 선거는 7일(한국시간 8일 새벽)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가 사실상 승리를 거두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나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줄줄이 법적 소송을 제기하고 있어 최종 확정 발표는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종착점이 눈앞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말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의 합류로 보수 성향을 더욱 강화한 대법원에서 결과를 뒤집겠다는 계산으로 보인다. 소송이 대법원까지 갈 것인지는 현재로선 확실치 않다. 또 대법원으로 가더라도 꼭 트럼프가 바라는 결과가 나올 것이란 보장도 없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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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역사상 대선 투표에서 진 후보가 패배를 승복하지 않는 것은 트럼프가 처음이다. 대선을 계기로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대신 혼란이 장기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패배하고 바이든 전 부통령이 승리했다는 소식에 세계는 대부분 희망과 안도를 표명했다. 지난 4년 간 세계 곳곳에서 후퇴했던 민주주의가 다시 강화되고, 격화되던 민족주의간 충돌도 가라앉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이익만을 내세우는 '미국 제일주의'로 좌충우돌 갈등을 빚으며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거듭했었다. 반면 바이든은 트럼프와 달리 원칙을 지키는 선에서 미국의 이익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때문에 트럼프 대통령 치하에서 미국과의 협력 관계가 뒤엉킨 동맹국들은 물론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됐던 많은 나라들이 미국과의 새로운 출발과 협력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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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대는 말 그대로 기대에만 그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가 물러나고 바이든이 새 대통령으로 취임하면 물론 많은 변화들이 일어날 것이다. 바이든은 취임 첫날 트럼프 대통령이 탈퇴했던 파리 기후변화협약에 재가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란과의 핵협상 복귀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포함해 중동의 정치 지형에도 많은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다. 바이든은 북한이 먼저 핵을 폐기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김정은과 친분 관계를 내세웠던 트럼프 대통령 때와는 달리 미국의 대북 정책은 더 강경해질 것으로 추측된다.

한반도의 비핵화 문제를 비롯해서, 중국을 포함해 세계 각국들과 끝없이 이어져온  무역 갈등, 유럽 동맹국들과의 제휴 협력 복원 등에서 트럼프 대통령 때와는 다른 상황들이 빚어질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등장 이전과 같은 상황으로 되돌아가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바람직하지 않다 하더라도 트럼프가 남긴 영향을 완전히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패했지만 트럼피즘(트럼프의 극단적 주장에 대한 미국민들의 열광)은 여전하다.

한국도 트럼프의 터무니없는 요구에 수없이 시달렸지만 동맹국들에 대한 더 큰 방위비 분담 요구에 미국민들은 환호했다. 트럼프의 개인적 성향에는 강하게 반발하면서도 그의 주장들은 아직도 지지받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창궐로 세계가 코로나19 전과 후로 갈리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나아가 세계도 트럼프 전과 후로 갈리게 된 것이다.
자국의 이익을 앞세우는 것은 미국뿐 아니라 어느 나라라도 마찬가지이다. 비용과 편익 분석에 따른 외교정책 결정이 바뀌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다만 트럼프 이전에는 서로간에 지켜야할 원칙들이 준수됐었다. 하지만 트럼프는 힘을 앞세워 미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상대의 입장을 무시해 갈등이 두드러졌을 뿐이다.

외교적 접근을 앞세오는 바이든이 새 대통령이 되면 이러한 갈등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물밑으로 잠복하게는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더라도 바이든이 미국민들의 바뀐 분위기를 완전히 무시할 수만은 없을 것이고 트럼프가 뿌린 미국 제일주의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7일 밤(한국시간 8일 오전) 트럼프 대통령 치하에서 분열됐던 미국을 다시 단합시키고 미국이 다시 전 세계에서 존경받는 국가가 되도록 이끌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존경을 받기 위해서는 자기희생이 전제돼야 한다. 미국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지위를 누리던 과거에는 자기희생을 할 여유가 있었다.

문제는 중국의 거센 도전에 조금씩 밀리고 있는 지금의 미국민들은 자기희생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국민들의 반대 속에 바이든이 일방적으로 미국을 이끌어가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소송을 계속하는 것을 지켜본 세계 일각에선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조롱과 비아냥의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그만큼 미국에 대한 신뢰는 훼손되고 미국의 위상은 추락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법정 소송 계속을 고집하고 있지만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 등 대통령 주변과 동료들 사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선 패배 사실을 받아들이고 명예로운 퇴진을 권유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트럼프는 이러한 권유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과거의 일들에 비춰보면 가능성은 커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단임 대통령으로 끝난다 해도 지난 4년의 행적만으로도 트럼프는 이미 미 역사에 그리고 세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이제라도 패배를 깨끗이 수용하고 물러나는 것이 미국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으로서 보여주어야 할 의무일 것이다. 

 유세진

 뉴시스 국제뉴스 담당 전문위원

 전 세계일보 해외논단 객원편집위원    

 전 서울신문 독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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