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 칼럼니스트 허서정]

#1. 오랜만에 동창끼리 뭉쳤다. 솥밥이 나오는 가게였다. 스테인리스 솥을 기울인 채 누룽지 국물을 떠먹는 중에, 한식집 딸내미가 쾌활하게 말했다. “여긴 스댕이라 좋네. 돌솥 쓰면 설거지가 안되거든. 바쁘니까 세제를 깨끗이 못 헹궈. 근데 세제 좀 먹는다고 죽겠냐? 하하!”

#2. 여름이었다. 비빔냉면이 당겼다. 매콤 달콤한 빨간 양념에 면과 오이를 버무려 몇 젓가락을 흡입했다. 어느 순간 쳐다본 내 그릇에 까만 머리카락 한 가닥이 보였다. 점원을 불러 이야기하고 같은 메뉴를 재주문했다. 점원은 마뜩잖게 대꾸했다. “다시 내올 순 있는데, 면 삶으려면 시간 좀 걸려요.” 혼자 늦은 식사를 마치자 일행이 웃으며 한 마디 건넸다. “사실 제 그릇에도 있었어요. 그냥 걷어내고 먹었죠.”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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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주말 저녁 고깃집은 사람이 미어터졌다. 어렵게 앉은 테이블인데 가스버너가 말썽이다. 열 번 넘게 시도해도 불이 붙지 않자 종업원은 신경질적으로 수저와 물통 세팅을 거둬들였다. 그리곤 우리에게 자리 이동을 제안했다. 그가 가리킨 빈자리는 주방 출입구와 화장실 사이 어둑한 곳이었다. 돼지갈비를, 다음 기회에 먹기로 했다.

나는 외식을 잘 하지 않는다. 직장 생활 특성상 점심 식사는 싫어도 바깥 음식을 먹게 되어서다. 주말이나 휴일에는 가급적 장을 봐서 만들어 먹는다. 손발을 움직이니 위장도 마음도 편하다. MSG 맛에 지극한 향수를 느낄 정도가 아니면 그러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손놈의 합성어로, 우리말샘에도 등록되어 있다. 1970년 신문에 등장했으니 그냥 줄인 말이 아니라 뼈대 있는 단어인 셈이다. 진상, 블랙 컨슈머(Black Consumer), 쓸 고()를 사용하는 고객과도 그 맥락이 통한다. 이들은 손님의 입장을 악용하여 부당한 이득을 챙기려 하며 모습도 가히 천태만상이다.

10월 초, 길었던 추석 연휴에 내가 진상인지를 고민해야 했다. 명절 선물로 사과와 배가 들어왔다. 운송장 붙은 상자를 개봉하니 금색 보자기가 나타났다. 보자기를 풀었더니 비로소 과일 박스가 보였다. 박스 속에는 名品스티커가 한 알마다 부착된 과일들이 빵빵한 PE 그물망에 싸여 있었다. 사과+배로 원플원, 모든 쓰레기도 두 배였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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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심각한 문제는 과일 속에 있었다. 사과는 인위적인 분홍빛이었고 쥐스킨트의 향수그르누이처럼 향 없는 기묘함을 풍겼다. 기껏 깎아보니 씨앗을 중심으로 곰팡이가 가득했다. 이런 말이 있다. 어떤 음식 한 귀퉁이에라도 곰팡이가 보이면, 그건 거기만 썩은 게 아니라 잘 먹고 간다는 곰팡이들의 작별 인사라고. 몇 개를 깎아도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직행이었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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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한가위 보내세요! 환경오염에 크게 한 숟갈 얹은 포장재 쓰레기와 못 먹을 과일까지 받고 나니 슬슬 화가 뻗쳤다. 누가 달라고 했나. 크기도 어린애 머리통만 한 걸 보내놔서 처리하는 데만 며칠이 걸릴 듯했다. 고객센터에 연락을 했고 결과적으로, 검수 완료한 상품 세트를 다시 받았다. 처음과는 딴판으로 상태가 좋았다. 그런데 담당 직원의 말이 은근히 걸렸다.

귀사에서 과일세트 신청이 많이 들어왔는데, 같은 케이스로 접수된 민원은 고객님 뿐이란다. 나만 이런 걸 받았다고? 20과 중 한두 개도 아니고 거의 전부를 버릴 만큼 불량이었는데 그 많은 과일세트 중 한 세트만 그럴 경우가, 또 그게 하필 나에게 올 경우의 수가 얼마나 될까. 처음 보낸 과일의 품질이 모두 동일했던 가운데 나머지 사람들이 따져 묻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고 보는 게 좀 더 신빙성 있는 추측은 아닌가.

당연한 말이지만 갑과 을의 방정식은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사람 대 사람으로 일처리가 오가는 서비스업에선 손놈과, 손놈만큼이나 많은 무개념 서비스 제공자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지금껏 아무 문제 없었고 다른 고객들도 가만히 있는데 당신은 뭐가 불만이야?” 소비자가 권리 주장을 할 때 받아치기 좋은 이 논리 속엔 조사 은는이가의 함정이 숨어 있다.

/는 조사들은 비교의 뉘앙스를 갖는다. 온유하고 순종적이며 피곤한 걸 싫어하는 손님을 긍정하면서, 의문을 제기하고 합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소비자는 손놈으로 매도하기 쉽다. 언론은 기적의 논리를 설파하는 오늘의 진상들을 쉬지 않고 보도한다. 양상도 늘 신선하고 새롭다. 사람들은 맘충, 무개념 진상, 상담원 기피 대상 블랙리스트 고객이 될까 봐 눈치를 본다. 까다로운 사람이 되기 싫어서 어지간하면 눈 감고 입 다물게 된다. 그럼 하나 물어보자. 내 돈 내고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뭔가요?

손놈의 정의에 입각하여 명백히 부당이득을 취하려 하는 일부를 변호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들에 대한 과잉 면역으로 불편러라 치부되는 또 다른 누군가도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이효리 씨가 말했다. 세상에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어디 있냐고. 나와 맞는 사람, 안 맞는 사람이 있을 뿐이라고. 그로부터 약 400여 년 전 셰익스피어도 말했다. 세상에는 좋고 나쁨이 없다. 다만 생각이 그렇게 만들 뿐이다, 라고.

우리도 조금 바꿔보자. 세상에 좋거나 나쁜 가게(손님)는 없다. 나와 맞거나 맞지 않는 가게(손님)가 있을 뿐이다. 손님도 주인장도 다운 매너를 갖추게 될 날을 소망한다.

허서정

살면서 잃어버린 것들을 되새기고자 펜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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