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의존의 평화

[오피니언타임스= 칼럼니스트 서용현]

이제 세계는 하나다. 세계 각국은 우리의 거래선이고 파트너다. 파트너인 나라를 침략하거나 점령함으로써 이득을 취할 수 있겠는가? 서로 으르렁거리는 미국과 중국의 예를 들자. 이들 나라들은 세계 최대의 교역국들이다. 교역할수록 복지가 증진된다. 중국이 있어서 미국인들이 후진 일을 안 하고 산다. 같은 배에 탄 것이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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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양국의 이익이다. 나는 미국이나 중국이 미치지 않는 한, 미-중국 간에 전쟁은 없다고 본다. 미국이 중국을 침공, 점령하면 행복할까? 나 같으면 중국을 먹어라 해도 안 먹는다. 14억 인구를 먹여 살리려면 골 아플 것이다. 역으로 중국이 미국을 점령하면? 미국의 엄청난 군사력에 비추어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점령한다 하더라도 고뇌의 시작이 될 것이다. 중국은 아이덴티티를 잃고 공산주의는 무너질 것이다. 다만 양국이 미치는경우에는 다르다. 미국에 대공황이 터지거나 중국 공산당이 붕괴하는 극단적인 경우, 외부에서 희생양을 찾을 가능성은 없지 않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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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의존의 시대가 왔다는 것은 인류가 전쟁에서 해방될 수 있는 유력한 계기다. 세계평화의 기본적인 여건은 마련되었다. ()이 선물로 주었다. 현실적으로도 지금은 평화의 시대다. 오늘의 전쟁들은 대개 과거의 유산이다. 남북한 간의 분쟁이 그렇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도 그렇다. 이들 분쟁들의 씨앗은 오래전에 심어졌다. , 이들은 투쟁의 시대의 전쟁들이다. 상호의존 시대와는 무관하다. 이러한 국지적, 구시대적 분쟁들을 제외하고는 세계는 평화롭다. 우선 강대국 간의 전쟁 가능성이 크게 줄어들었다. 동서냉전이 종식된 이래 세계는 범세계적인 긴장을 경험한 적이 없다. 투쟁의 시대는 눈에 띄게 퇴조하고 있다. ‘상호의존의 평화가 왔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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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이제 밑지는 장사가 되었다. 사양산업화 되었다. 왜 투쟁이 사양화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투쟁해도 건질 것이 점점 없게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상호의존의 효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아직도 싸운다. 전쟁이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우리가 투쟁의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5천년 인류역사를 통해 투쟁의 패러다임에 물든 인간들이 상호의존으로 넘어가는 시대적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과거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전쟁의 공포를 이용하여 욕심을 채우려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전쟁을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정치 지도자들이 그들이다. 셋째, 군인과 무기가 세계에 넘쳐나기 때문이다. 넷째, 투쟁의 시대에 기원을 둔 힘의 세계질서’(특히 팍스 아메리카나)가 아직도 세계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상호의존의 평화가 자리를 잡지 못하게 방해한다. , ‘신이 준 평화를 가로막는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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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의존의 시대에 전쟁은 대부분 <국내용>이다. “안 싸우는 것이 국익(國益)이다. 그런데 정치지도자들은 싸움과 긴장이 있어야 정권유지가 쉽다. 그래서 전쟁이 남는 장사가 아닌데도 전쟁이 사라지지 않는다. 강대국 지도자일수록 폼 잡기내지 마초(macho)'의 과시를 좋아한다. 내셔널리즘과 포퓰리즘으로 국민을 오도(誤導)하여 국가적 긴장을 유지한다. 최근 미국/중국 간의 카우보이식 무역전쟁’. 북한의 말로 하는 핵전쟁등도 대내, 대외용 폼 잡기.

사진=픽사베이(  hulk = machoism  상징 )
사진=픽사베이( hulk = machoism 상징 )

중국 시진핑의 일대일로(一帶一路)가 실패한 것도 이것이 폼 잡기라는 것을 다른 나라들이 간파했기 때문이리라. 독재유지를 위해서는 적정 긴장유지가 필수다. 그래서 중국은 심심하면 타이완을 건드리고, 남지나해에 군함을 파견한다. 북한의 서해 도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판을 깨지는 않는다. 그러면 자기 정권의 판이 깨지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남한이 없으면 김정은이 살아남겠는가? 나는 김정은이 내심 통일(남진통일 포함)을 바라지 않을 것으로 본다. 결국 상호의존은 전쟁의 한계를 긋는다.

이제 투쟁은 남는 장사가 아니다

요즘 전쟁은 남는 장사인가? 요새 전쟁해서 덕 본 나라 있는가? 다른 나라의 영토/자원을 빼앗는 것인가? 미국은 이라크에서 죽 쑤고 아프가니스탄에서 헤매서 무엇을 얻었나? 그레나다 침공으로 무엇을 얻었는가?

군사력은 남는 장사인가? 미국은 엄청난 국방비를 써서 무엇을 얻었나? 안보인가? 그렇게까지 안 해도 어떤 미친 나라가 미국을 공격할까? 9-11과 같은 공격은 국방비로 저지하지 못하지 않는가? 그런데도 안보논리가 먹힌다. 5천년 투쟁의 역사 속에서 투쟁이라는 마약에 깊이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소수민족들에 대한 막대한 보조금 지불을 보라. 소수민족들은 중국의 자산인가, 부채인가? 미국의 국방비와 중국의 소수민족 유지비의 상당 부분이 폼 잡기 위한 돈패권유지비가 아닐까? 이렇게 펑펑 쓰다 보면 이들 패권국들은 점차 국세(國勢)가 기울지 않을까?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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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전쟁의 대가(cost)는 막대해졌다. 무기의 성능이 좋아지고 대량살상무기가 도입되어 엄청난 사상자가 난다. 전비(戰費)도 엄청나다. 순수 전쟁비용 외에도 피점령국을 먹여 살리는 돈까지 들어간다. 미국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매년 수십억 불의 원조를 제공해야 했다. 특히 침략전쟁은 절대 남지 않는장사다. 오늘날 침략이나 점령은 고뇌의 시작이다. 민족주의적 저항 때문이다. 침략은 또 다른 비용을 수반한다. 국제적 비난이 그것이다. 국제적 비난은 국가 이미지의 손상으로 연결된다. 상호의존의 시대에 이러한 이미지 손상은 전쟁에 지는 것만큼이나 치명적인 타격이 된다. 전쟁은 이제 남는 장사가 아니다. 자살골이다.

투쟁이 점점 남지 않는 장사가 됨에 따라 투쟁적인 나라/사람과 협력적인 나라/사람 간에 흥망의 역전(逆轉)이 초래될 것이다. 투쟁적인 나라/사람은 헛돈을 쓰고 국력을 낭비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러한 추세는 종국적으로 투쟁의 시대의 종말을 재촉하게 될 것이다. 공산주의의 몰락으로 마르크스가 두 번 죽었듯이, 마키아벨리도 두 번 죽지 않을까? 굿바이, 마키아벨리! 굿바이, 마르크스!

이제 패권은 신화(神話)다  

패권은 남는 장사인가? 과거 영국은 패권 장사가 짭짤했다. 세계 도처에서 영토를 차지하고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했다. 그러나 오늘의 패권국 미국은 건진 게 뭔가? 영토를 얻었나? 자원을 얻었나? 패권국이라고 좋은 것이 뭔가? 미국의 달러 패권은 물론 쨥짤하다. 그러나 달러패권은 미국이 팍스 아메리카나의 정점에 있을 때 얻은 기득권이다. 지금 같으면 국물도 없을 것이다. 패권국은 무역전쟁을 걸 수 있다구? 무역전쟁은 패권국이라고 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역적자가 있어야 걸 수 있다. 그리고 무역전쟁은 대개 거는 나라에도 피해를 준다. ‘보이지 않는 손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패권에 입각한 침략은 피 침략국의 민족주의적 결사항전을 초래한다. 엄청난 피해가 난다. 패권국은 수렁에 빠진다. 패권국 지도자는 국내정치적으로 치명적 타격을 입는다. 지도자의 정치적 입지도 위협 받는다. 따라서 패권국 지도자는 침공보다는 침공위협에 의한 타결을 선호한다. 상대가 위협에 굴복하면 좋고, 굴복하지 않으면 협상한다 (트럼프가 북한에 전쟁임박을 위협하다가 협상도 안 되고 북한 핵무기도 그대로 있는데 유야무야하는 것을 보라).

<체첸 함정에 빠진 러시아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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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독립선언을 한 인구 100여 만의 소국 체첸을 두 차례에 걸쳐 침공했으나 처절한 민족적 저항에 부딪쳐 엄청난 희생을 치루었다. 러시아는 1945(2차 세계대전) 베를린 점령 시에 잃은 탱크보다 많은 탱크를 체첸에서 잃었다. 체첸의 테러리스트들은 러시아에서 여러 차례 테러를 감행해 러시아인들을 살해했다. 전후의 체첸은 경제적으로 완전 붕괴했다. 식량 공급과 경제복구를 위해 러시아는 막대한 금액을 원조해야 했다. 무엇을 위한 침공이었나?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

북한이 무너지면 중국이 북한을 점령한다는 주장이 있다. 시대착오적 생각이다. 중국이 북한을 점령하면 중국 최강의 소수민족을 품게 된다. 민족주의적 반발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북한이 중국의 다른 소수민족에게 미칠 영향은 어떡할 것인가? 중국의 북한 점령은 자살골이다. 지금은 병자호란의 시대가 아니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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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권국/강대국을 두려워하는 태도가 남아있다. 투쟁의 시대의 유산이다. 왜 강대국을 두려워하는가? 강대국을 거스를 필요는 없다. 그러나 너무 눈치 볼 필요도 없다. 세계화 시대의 파트너로서 당당하게 대하고 또 사랑하면 된다. 이런 점에서 중국 정부의 고자세 외교나 문정권의 저자세 외교는 둘 다 상호의존의 외교가 못 된다.

지금 패권국이 있는가? 미국? 2차 세계대전 후의 미국은 세계질서에 대한 구상과 의지가 있었다. 지금의 미국에 그런 구상이 있어 보이는가? 그저 무력과 경제력이 강한 나라, 또는 이기적/고립적인 깡패 나라로 인식되는 것 아닌가? FTA 탈퇴, 기후협약 탈퇴, 그리고 바이러스(코로나)와의 전쟁에서 무릎을 꿇은 미국이 패권국 지위를 상실한 지는 오래된 것 아닌가? 중국? 욕심은 있으나 실력은 없는 것 아닌가? 지금의 세계는 리더가 없다. 단합과 연대가 실종되었다.

지금의 세계질서, 팍스 아메리카나는 전형적인 투쟁의 질서이며 강자의 질서다. 미국의 패권 역할 방기에 따라 이 질서는 흔들리고 있다. 나아가 사람들이 상호의존을 세계의 질서로 받아들이게 됨에 따라 패권은 투쟁의 시대의 환상에 불과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체제가 붕괴하면 세계는 여태까지 부자연스럽게 유지되어온 투쟁의 시대를 공식적으로 종식시키게 될 것이다. 이제 세계는 상호의존이라는 새로운 현실, 새로운 패러다임에 입각하여 전혀 새로운 미래를 구상하게 될 것이다.

무군대 시대 (無軍隊 時代)

전쟁과 군대의 무용(無用)함을 깨우친 국가들이 있다. 군대를 없앤 무군대 국가(無軍隊國家)’가 그것이다. 군대를 폐지하여 국방비를 절감하는 것이다. 상호의존 시대에 침략은 이득보다 손해가 많음을 감안한 용기 있는 발상의 전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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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나라들은 군대의 유지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보다 엄청 강한 나라가 쳐들어오면 군대의 존재는 희생만 늘리는 결과만 초래한다. 공연히 병력을 유지하다가 미국 해병대의 침공을 받은 그레나다가 전형적인 예다. 자주국방은 이제 개그(gag). 중국이 한국에 쳐들어오면 자주국방이 되겠는가? 자주국방 할 수 있는 나라가 세계에 몇이나 되는가? 상호의존의 국제질서에서 대다수 국가의 안보를 확보해주는 것은 무력이 아니다. ‘관계. 무군대 국가는 이러한 현실에 입각하여 마음의 위안에 불과한 군대를 해체하는 것이다. 무군대 국가들이 자주국방을 하지도 못하면서 쓸데없이 큰 군대를 유지하는 국가들보다 번성하지 않겠는가? 이것도 상호의존의 효과다. 점점 많은 국가들이 무군대국가 클럽에 가입하지 않겠는가? 이것도 바로 상호의존을 향한 대세이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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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군대 국가들은 대개 작은 나라들이다. 그러나 중규모 국가, 또는 강대국이라고 무군대 국가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독일, 영국 등도 군사력을 줄이고 있지 않은가? 요즘 군대 노상 놀고 있지 않은가? UN 산하에 실효적인 집단 방위군을 형성하여 어쩌다 나타나는 깡패들을 응징하면 어떤가? 대신 각국이 응분의 방위세를 분담하면? 범 세계적인 <무군대 시대> 내지 전 세계적인 비무장(非武裝) 시대가 도래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세계인의 행복에 기여한다면, 왜 못 하는가?

 

서용현, Jose

 30년 외교관 생활(반기문 전 UN사무총장 speech writer 등 역임) 후, 10년간 전북대 로스쿨 교수로 재직

 저서 <시저의 귀환>, <소통은 마음으로 한다> 등. 

‘서용현, Jose’는 한국이름 서용현과 Sir Jose라는 스페인어 이름의 합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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