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 책 읽으면 뭐가 좋아요?

[오피니언타임스=칼럼니스트  시 언]

딸들은 정확하게 울었다. 한달 전 외할머니의 3일장을 지낸 후 내가 쓸 수 있는 문장은 겨우 이런 것이었다. 스산하게 식은 할머니의 시신을 어루만질 때, 벽제 화장장에서 할머니의 관이 운구될 때, 단 10분 전까지만 해도 웃고 떠들던 엄마와 이모들은 자명종 시계처럼 불시에 울음을 터뜨렸다. 아무리 기진해도 빼놓을 수 없다는 듯이. 식장 복도를 가득 메운 오열들은 장례 의식의 각 단계가 시작될 때마다 정확히 시작됐고, 각 단계가 마무리 되면 1시간을 넘기지 않고 사그라들었다. 엄마와 할머니들의 눈치를 보던 어린 조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장례식장 안을 뛰놀았고, 눈물을 닦은 딸들은 몇 안되는 문상객들과 안부를 주고받았다. 저잣거리를 연상시키는 활기가 식장 안을 다시 채웠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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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사람은 살아지기 마련인 걸까.  묘한 위안과 죄책감을 곱씹으며 나는 미리 챙겨간 책을 펴들었다. 발인까진 아직 이틀이 남아있었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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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삼촌 책 읽네요?”

마지막으로 봤을 땐 문장을 끝맺는 것만으로도 장하던 조카 녀석이 유창하게 대화를 걸어왔다. 꼴에 큰 오빠라고 초등학교 저학년인 사촌 동생들과는 격이 안 맞는다는 듯한 표정이 퍽 귀여웠다. 무슨 얘기를 해야 하나. 아이와의 소통에는 전혀 소질이 없었기에 난감해 하던 찰나, 조카의 손에 들린 『톰 소여의 모험』이 보였다. 형수님이 아들 책 교육에 관심이 높다던데 기어이 성공한 걸까.

“어, 나는 이게 워낙 습관이라서”

“올 쩌네요. 멋있어”

태어나서 두 번 본 삼촌한테 올, 쩐다니. 아이다운 당돌함에 긴장이 풀렸다. 손에 들린 책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너도 책 좋아하지 않냐고 묻자 조카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책 한권 다 읽을 때마다 엄마로부터 휴대폰 게임 1시간을 허락 받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제 엄마가 지정해 주었을 세계 명작을 다 읽고, 그 줄거리를 읊어주면 각종 게임이 즐비한 엄마의 휴대폰을 넘겨받는 식이었다. 바람직하다곤 할 수 없으나 형수님으로선 아들 손에 책을 쥐어줄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접근법이었으리라.

“삼촌, 근데 책 읽으면 뭐가 좋아요?”

정말 영문을 몰라하는 얼굴이었다. 하긴 소설은, 그것도 세계 명작이라면 최소 몇십년부터 수백년전 사람이 상상으로 지어낸 이야기일텐데 남이 지어낸 것에 불과한 이야기를 대단한 것인양 사방에서 떠받드는 어른들이 아이의 눈에는 의문이었을 터다. 마침 독서 이력과 그를 통한 논리력만으로 과분한 대학의 입시 문턱을 넘은 나였으므로 어떤 책을 어떻게 읽고, 어떤 흔적을 남겨야 입시에 유리한지 누구보다 할 말이 많았다. 그러나 왜인지 그런 얘기는 해주고 싶지 않았다. 종국에는 누구나 당도할 매캐한 광맥의 막장인 장례식장에서 만큼은.

“삼촌 생각에 한국은, 그 어떤 나라보다 책을 읽지 않는 나라인 동시에 그 어떤 나라보다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나라야. 전국민 독서율은 최하위권이면서 독서 교육열은 전세계 1,2위를 다투는 거지. 쉽게 말해서, 아무도 책을 안 좋아 하면서도 책을 읽어야 한다고만 생각하는 거야. 그럼 뭐가 문제냐. 책을 무슨 대회 상장처럼 여기게 돼. 무슨무슨 어려운 책 읽었다고 하면 무조건 떠받드는 거지. 사실 그게 유리한 것도 맞아. 너도 마음에 드는 여자애 앞에서 괜히 어려운 책 한 권 꺼내들고 그러면 사귀는 건 몰라도 유식한 척은 할 수 있어. 대학 갈 때 면접에서도 호락호락한 애 아닙니다~ 어필할 수 있고. 책이 그래. 삼촌도 그 수혜자고.”

“.....” 

갑자기 말문이 터진 과묵한 삼촌의 방언을 아이가 따라오고 있는지는 미지수였다. 하지만 상관 없었다. 원래 타인에게 하는 충고는 자기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라고 하지 않던가. 충고와 다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말들을 달래면서도, 왜였을까. 나는 말을 멈출 수 없었다.

“근데 그런 식으로 책을 읽진 않았으면 좋겠어. 세상에 책 말고도 유익하고 재밌는 게 얼마나 많은데. 너가 살다가 너무 지칠 때, 상황 속에 갇혀서 천천히 죽어가는 것 같을 때, 근데 기댈 데라곤 책 밖에 없을 때, 책은 그때 읽는 걸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 억지로, 겉멋으로가 아니라 힘든 삶을 위로해 주는 동반자가 책이 되면 좋겠어. 친구들은 너를 떠나도 책은 언제든 너를 떠나지 않거든. 너도 크면 이해할 거야. 이해하지 못하면 더 좋고.”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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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이 뿌예졌던 걸까. 말을 마치자 이미 딴청 중인 조카의 머리 위 허공 너머 흰 벽지에 환각처럼 어떤 형상이 아른거리는 듯 했다. 할머니 침대 맡에 놓여있던, 무수한 약병의 숲 사이 다 해진 성경책 한 권, 날 때부터 장애를 가진 다리로 임종 전까지 사실상 유폐의 생을 살았던 당신이었다.

침대에서 화장실까지 가는데 5분이 족히 걸리던 당신이었고, 착한 딸들은 밥을 벌기에 바빴으므로 당신 곁에 남은 건 결국 30여년 간 침대 밑을 떠난 적 없던 한 권의 책이었다. 생각해보면 TV 자막조차 읽기 버거워 했던 분. 젊은 사람도 읽기 힘든 성경 속 자그마한 글씨들의 행간에서 당신은 어떤 위로를 발견하고자 했습니까. 그렇게 30년 가까이 견뎌낸 삶은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던가요..

어떤 겉치레도 없이 그렇게 읽어내고 살아내고 싶다.  어느새 들고 있던 책은 내 앞에 던져두고 다시 동생들을 향해 뛰어가는 조카의 뒷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시 언

 철학을 공부했으나 사랑하는 건 문학입니다. 겁도 많고    욕심도 많아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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