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 디테일과 불매운동?

 

[오피니언타임스 = 칼럼니스트  양재현]

한동안 유행했던 말이 있다. 바로 피씨충이라는 말이다.

피씨충정치적 올바름을 뜻하는 Political Correctness의 앞글자에 이 결합해 나온 용어이다. 흔히 웃자고 하는 말에, 혹은 생각 없이 가볍게 던진 말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들을 지적하는 사람에게 내뱉는 경멸적인 비하로 사용되어 왔다. 이때, ‘피씨충이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때와 장소, 분위기도 가리지 못하고 진지충이라는 말도 함께 듣게 된다.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는 말도 필수 옵션이며, 때로는 글의 전체 맥락도 파악 못 하고 말꼬리만 물고 늘어진다는 의미로 맥랑맹이라는 조롱이 곁들여지기도 했다. 사실 이들이 문제제기하는 것들은 실제로 문제가 되는 것들이다. 우리가 생각 없이 내뱉는 병신’, ‘깜깜이’, ‘벙어리장갑’, ‘정병(정신병자)’와도 같은 장애인 비하 용어나 인종차별 용어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희화하는 혐오표현들이기 때문이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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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에는 전혀 다른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무 생각 없이 썼던 이러한 용어들이 실제 문제가 된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는 서로 앞장서서 이를 지적하며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다. 문제는, 이러한 지적들이 과도하게 많아지면서 그 본질을 흐리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는 수많은 도덕 디테일에 사로잡혀있다. 아이 있는 가정이 이사 올 때는 주변에 양해의 손편지를 돌려야 하고, 화장실에서 나갈 때는 뒷사람이 불쾌하지 않도록 커버를 올려둬야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너나 센스, 배려 정도로 여겨졌던 일들이 지금은 당연히 지켜야 할 도덕 디테일이 되어 어길 경우 집중포화를 받을 수도 있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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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소셜 임팩트와 가치 소비가 중요해지면서 이러한 도덕 디테일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업체들은 본인들의 미담을 퍼뜨리며 의도적인 바이럴을 만든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도덕 디테일을 지키지 않는 업체들은 불매운동, 보이콧의 대상이 되어 결국 문을 닫기도 한다.

무엇이 옳은 걸까? 디테일은 있지만 중심은 없는 사회

이러한 상황을 곰곰이 살펴보면 꽤나 혼란스럽다.아이 있는 부모에게 메뉴에 없는 어린이용 음식을 만들어주는 업장이 어느 날은 아이를 배려하는 착한 가게로 칭찬 받고, 또 어느 날은 다른 식당에게도 비슷한 호의를 요구하는 생태계 파괴자로 욕을 먹기도 한다.

이를 두고 우리는 진리의 케..(케이스 바이 케이스)’라는 단어로 쉽게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얼렁뚱땅 덮기에는 뭔가 찝찝하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에게 도덕 디테일만 있을 뿐, 그 중심이 되는 도덕관은 부재하게 되며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다변화되고 구성원이 다양성이 커지면서 예전에는 괜찮았던 것들이 이제는 문제가 되는 시기가 도래했다. 그 가운데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도덕을 온몸으로 배워야 하는 때가 되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일단 부딪혀보고, 상대와 대화하고 타협하면서, 그 도덕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집단 간의 갈등과 대립이 점점 첨예해지는 한국 사회에서는 그런 대화와 타협의 기회가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생각하고 판단하면서 중심을 잡아가는 대신, 당장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이는 디테일에만 집착하게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디테일에 흔들리지 말고 마음을 지킬 것

검도 용어 중에 존심이라는 단어가 있다. 원래는 <맹자>에서 유래한 말로 사람의 욕망 따위에 의해서 본심을 해치는 일 없이 항상 그 본연의 상태를 지킨다는 뜻인데, 검도에서는 어떤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는 한결같은 마음을 의미한다. 나의 칼이 상대의 몸에 닿았어도 이 존심이 없다면 인정받을 수 없다. 충분한 의도와 기세를 가지고 바르게 친 타격만을 인정하고 이리저리 휘두르다 어쩌다 이뤄진 타격은 인정하지 받을 수 없다.

우리가 삶 속에서 지켜야 하는 도덕도 어쩌면 이와 같다.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휩쓸려 이것이 옳다더라’, ‘저것이 옳다더라하면서 집착하게 되는 디테일들이 과연 도덕이라 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렇게 휩쓸리는 사이에 정작 지켜야할 중심을 놓치게 될 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 속에 어떠한 중심을 품고 있는 지다. 그 일관된 흐름이 있다면 때때로 디테일 한 두 개를 놓치는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결국에는 맞는 길을 찾아갈 수 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디테일에 흔들리지 말고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지키는 것. 그것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근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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