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을 들어온 지 어엿 1년, 고작 23년의 끝무 렵에 있는 나에게 가장 잊지 못할 한 해가 되지 않을까. 누군가에게는 코로나가 삶의 밥줄을 끊어버린 무기가 될 수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되어버린 슬픔이 되기도 했겠지만, 나에게 있어 코로나는 ‘낭만’이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낭만적’이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7살 많은 언니와 같은 방을 쓰는 관계로 내게 유일한 구역이었던 책상은 고3 이후로 철거되었다. 그 많던 8개의 책장이 대학에 입학했다는 이유로 하나로 줄어들고, 이젠 2층 침대의 내 이부자리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내 방이 아닌, 내 방에서 나는 거주한다. 코로나가 터지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도입되면서, 논문에 찌들어 하루를 보낼 것만 같았던 나의 석사 1,2기는 그 누구보다도 따듯했고 완전한 나의 구역이었다.

대학원의 모든 수업이 온라인으로 전향되면서, 내 방에서 강의를 듣기 시작한 것이다. 책상도 없고,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땅히 없으니 나는 늘 카페에서 과제를 했다. 부모님은 “왜 집에서 공부를 하지 못하니.”라는 말을 장장 10년을 넘도록 하시지만, 23년을 산 집에서 “내 방이 없어서요.”라는 말을 해도 달라질 것은 없음을 알기에…… 그저 나갔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고 카페를 갈 수 없던 나는, 책상이 없어 2층 침대 베개 위에 노트북을 올려 처음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그 강의에서 토론을 하기 시작하며 1층 침대에서 자고 있는 언니는 자연스럽게 수업 시간마다 방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고, 완전한 내 방에서 내 시간을 가진다는 감정이 이토록 뜨겁고 완벽한 행복인 줄 처음 알았다. 그토록 사랑스러운 내 방에서 시 창작 세미나와 철학 세미나, 전공 수업을 병행하며 나의 삶의 질까지 완벽하게 보장받게 된 것이다.

학교에 나갈 시간이 줄어드니 시를 쓰는 시간을 늘어났고, 세 끼니를 집에서 해결하니 자연스럽게 돈에 대한 걱정도 사라졌다. 물론, 침대 위에서의 공부가 가끔은 나를 재우기도 하지만, 다이소에서 5000원 주고 산 신상 책상을 들고 2층 침대에 올라갈 때면 그토록 신이 날 수 없다. 명패만 없을 뿐, 나만의 사무실이 낭만적이게도 탄생하게 된 것이다.

물론, 언니는 다시금 방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언니의 결혼”. 23년 동안 살아오며 나의 단짝 친구인 언니가 최대한 오래도록 결혼하지 않기를 간절히 빌었다. 이렇게 23시간도 안되는 찰나에 그 결심이 깨질 줄도 모르고……. 인간의 이기심이란 항상 생각보다 앞서간다. 때론, 그런 이기심이 최악의 순간을 낭만으로 치장시켜주기도 한다.

언젠간 이 넓은 방이 내 방이 되는 날을 꿈꾸며, 4계절을 다녀간 내 방에게 작별 인사를 전한다.

서은송

 제1대 서울시 청소년 명예시장

 2016 서울시 청소년의회 의장, 인권위원회 위원,한양대  국어국문학 석사과정

 뭇별마냥 흩날리는 문자의 굶주림 속에서 말 한 방울 쉽 게 흘려내지 못해, 오늘도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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