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영의 좋은 문장론을 읽고

[오피니언타임스=  칼럼니스트  석혜탁]

 문재인 대통령과 현 집권 여당에 대한 평가는 각기 다를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정치적 입장 차이는 잠깐 내려 두고 이 말을 들여다보자.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2017년 5월 취임사에서 힘주어 말했던 이 말이 주는 울림은 분명 컸다. 딱히 새로울 것도 없는 내용이었는데, 한 문장 한 문장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이 메시지에 적잖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다. 정권교체를 원했던 진영에서는 이 말을 듣고서 비로소 새로운 세상이 왔음을 실감했다. 반대로 지금 문재인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사람들은 대개 이 메시지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에 실망하고 분개하고 있다. 그만큼 위의 문장이 갖는 무게감은 남달랐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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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여당 지지자이든, 야당 지지자이든 필자는 크게 관심이 없다. 진영 논리에서 잠시 벗어나서 다시 문장 자체에 주목해보자. 정치적 수사로 보는 것이 아니라, 글쓰기의 콘텐츠로 말이다. 한 문장씩 짧게 끊어지다 보니, 의미 전달이 명확할 뿐 아니라 읽기도 듣기도 수월하다. 

이 문장은 물론 일필휘지로 쓰인 것이 아니다. 원래 버전은 다음과 같았다.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함, 결과의 정의라는 국정운영 원칙을 바로 세우겠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한 문장 안에 평등·공정·정의라는 거대한 키워드가 몽땅 들어가 있다 보니 메시지에 대해 곱씹어볼 잠깐의 여유도 없이 문장이 지나가버린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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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에 생명을 불어 놓고, 메시지의 간결함을 극대화하기 위해 군더더기 없는 여러 개의 문장으로 바꿔 놓은 이가 있다. 바로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다. 그는 “잘 고친 한 문장이 마음을 움직인다”라고 말한다. 이 문장에 이끌려 그가 쓴 책 <윤태영의 좋은 문장론>을 읽게 됐다. 

이 책에서 저자는 ‘고치기’에 방점을 찍고 있다. 유려한 문장을 쓰며 젠체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또 쉽게 쓴 글의 미학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그는 정치권에서 글을 쓰면서 글이 수준이 높다거나, 비유가 탁월하다거나, 촌철살인이라는 등의 평가를 거의 듣지 못했다고 한다. 되레 그는 ‘자네 글을 매우 쉬워서, 한 번 읽으면 무슨 뜻인지 바로 알겠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처음에는 이런 평가가 찜찜하기도 했지만, 이내 생각을 고치게 된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시간이 갈수록 ‘이해하기 쉽다’는 평가에 만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자부심까지 갖게 되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글이 쉽다는 것은 그만큼 전달력이 높다는 의미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런 깨달음은 가끔 접하게 되는 난해한 글들을 보면서 확신으로 더욱 굳어졌다.”

맞는 말이다. 일찍이 소설가 고(故) 마광수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도 심각한 체하며 쓰는 문학만을 유독 높게 쳐주는 경건주의와 엄숙주의를 비판한 바 있다. “쉽게 읽게 만들면, 다시 말해서 재미있게 빨려 들어가게 만들 면(그런 문장을 쓰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하룻밤에 심심풀이로 쓴 줄 알고 작가(또는 작품)를 우습게 보는 풍조가 우리나라 문학계에 만연하고 있다는 건 한심한 일이다.”(마광수, <자유에의 용기> 中)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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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이런 풍조가 ‘문학계’에만 만연한 것이 아닌 듯해 씁쓸한 뿐이다. 윤 전 대변인은 쉽게 쓰는 방법을 알려준다. 첫째, 단문을 구사한다. 둘째, 가급적 쉽고 편안한 일상의 용어를 사용한다. 셋째, 추상명사를 주어로 하는 경우를 최대한 줄인다.

이외에도 저자는 글쓰기를 할 때 지양해야 할 습관, 마감 전 체크리스트에 대해서 소상히 설명해준다. 에세이, 편지, 자기소개서, 주례사, 연설문, 평전 등 유형별 문장 다듬기 수업도 이채롭다.

저자는 초고를 쓰는 데 하루를 소요했다면, 글을 고치는 것에는 사나흘의 시간을 투자한다고 말한다. “좋은 글은 잘 쓰기보다 잘 고칠 때 탄생한다”는 말도 덧붙인다. 좋은 문장을 쓰고 다듬는 과정은 결국 ‘나와 세상을 바꾸는 여정’이라고 말하는 윤태영. 그와 함께 ‘여정’을 떠나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윤태영의 좋은 문장론>의 일독을 권한다.  

 석혜탁

- 대학 졸업 후 방송사 기자로 합격. 지금은 기업에서 직장인의 삶을 영위. 
- <쇼핑은 어떻게 최고의 엔터테인먼트가 되었나> 저자. 
- 칼럼을 쓰고, 강연을 한다. 가끔씩 라디오에도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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