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바치는 연설문

[오피니언타임스 = 청년칼럼니스트  석혜탁]

지금부터 연설문의 문법을 빌려 앞으로 어떤 남편이 되겠다는 다짐을 피력해보려고 합니다. 그동안 ‘부부’로 알콩달콩 예쁜 추억을 만들어가며 살아왔던 우리가 이제 ‘부모’가 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를 기다리는 이 시간이 무척이나 행복하고 설렙니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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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다시 급증하는 것을 보며 걱정도 많이 되고, 무엇보다 당신의 안전에 늘 신경이 곤두서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아빠’가 되는 과정의 일환이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늘 감사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더욱 왕비로 모시지 못해 송구할 따름입니다.

“앞으로 나는 어떤 남편이 되어야 할까”를 자문해봅니다. 그 답변을 당신께 들려드립니다. 첫째, 육아를 ‘돕는다’고 생각하는 아둔한 남편이 되지 않겠습니다.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에서 남편 정대현은 “내가 많이 도울게”라고 말합니다. 물론 취지 자체가 나쁜 말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 말을 듣고 김지영은 이렇게 일갈합니다. “그놈의 돕는다는 소리 좀 그만할 수 없어?”, “이 집 오빠 집 아니야?”, “애는 오빠 애 아니야?”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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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남의 일이 아닌데 돕는다고 표현하는 것에는 어폐가 있죠. 이 책을 먼저 읽고 당신에게 일독을 권했던 사람으로서 저 대화를 다시 곱씹어봅니다. 우리의 일이기 전에 ‘나의 일’인 육아. 그 유쾌한 책무에 최선을 다하는 남편이 되겠습니다.

둘째, 당신을 ‘아이 엄마’가 아닌 연애할 때부터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애칭으로 계속 호명하겠습니다. 아이 엄마로서의 정체성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당신은 당신 그 자체로 빛이 나는 사람이고, 그 빛의 크기가 출산을 기점으로 줄어들 리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고백을 했던 그때와 지금, 그리고 출산 후. 본질적으로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수십 년 후 당신이 할머니가 된다 해도 제 눈에는 여전히 빨간 카디건을 입고 커피를 들고 있는 어여쁜 영문학도입니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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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둘만의 데이트를 자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물론 선배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육아의 길이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기에 부부가 나란히 앉아 커피 한잔 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몇 년 전 한 정치인이 ‘저녁이 있는 삶’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던 적이 있습니다. 육아와 직장생활로 아무리 바쁘다 해도 부부에겐 ‘데이트가 있는 삶’이 매일은 아니더라도 종종 필요합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공간, 당신이 선호하는 분위기와 취향을 잊지 않겠습니다. 아이가 자라는 중에도 데이트의 설렘을 선사하는 남편이 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나이가 들어도 거리에서 손을 잡고 다니는 남편이 되고 싶습니다. 신혼여행 때 헝가리에서 봤던 한 쌍의 노부부가 기억납니다. 큰 버스가 멀리서 찬찬히 오는 것을 보고, 부인의 손을 꽉 잡았던 할아버지. 헝가리의 그 어떤 풍광보다 이채로웠던 어르신들의 뒷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늙어갈 수 있겠지요.  

좋은 커플이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욱 아끼고 보듬어주는 큰 소나무 같은 남편이 되겠습니다. 이 연설문을 박제하여 추후에 혹여 언쟁이나 오해가 발생할 때, 강력한 반박 증거로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그 주의 집안일 전체를 제가 감당하겠습니다.

늘 웃음 속에서 살게 해주는 당신에게 감사의 말을 재차 전하며 이만 줄입니다.

석혜탁sbizconomy@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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