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  심규진]

고양이 집사로 살아가던 나에게 어느 날 찾아온 보물, 아들, 딸. 둘째가 생긴 후 눈물을 머금고 고양이를 지인에게 입양시키게 되었다. 그리고 약 2년 뒤 아이들과 함께 달팽이를 키우기로 결정하고 ‘송이’라는 이름도 붙여주었다.

아이들이 처음 경험하는 또 다른 생명체. 보통 낮에는 자고 밤에 꼼지락 꼼지락 움직이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아이들이 직접 밥을 주고 때로는 만져보는 것을 좋아했고, 어느새 나도 서서히 정이 들어가고 있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아, 맞다. 달팽이 밥줘야하는데 (이름을 불러주지 못했다)”

“오늘은 뭘 하고 있으려나... 내일쯤 한 번 볼까? (정신없으면 항상 뒷전이었다)”

“혼자 생활하면 외롭겠다. 달팽이 한 마리 더 키울까? (말만하고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이렇듯 달팽이, 아니 송이는 생각보다 환대받지 못했고 내가 가끔 들여다보고 달팽이 밥을 부어주는 수준이었다. 지난주 주말 넉넉하게 밥을 채워주고, 오랜만에 인사를 하기 위해 달팽이집 뚜껑을 열어젖혔다. 밥을 담아주던 무겁고 넓적한 그릇이 엎어져 있었고 달팽이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갔지?”

“흙속으로 숨었나? 위에 붙어있나?”

일순간 불안한 마음이 기습했다. 넓적한 그릇을 집어 올렸더니 그 안에 달팽이가 있었고, 이리저리 인사를 해봐도 움직이지 않았다. 보통은 침을 흘리듯 ‘치직’ 소리를 내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곤 했는데 미동조차 없었다. 자신의 몸으로 아무리 저항을 해도 떨쳐낼 수 없었던 밥 그릇 아래 송이는 서서히 숨을 거두어간 것이다.

무관심이 만들어낸 타살적 자살.

아이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오히려 나의 불찰을 돌아보게 된다. 따가운 비난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관심이라고 하던데, 달팽이는 그렇게 세상을 떠나버렸다. 나는 오늘 그의 유품을 모두 챙겨 양지바른 곳에 묻어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하늘나라로 갔다고 잘 설명해야겠지. 달팽이 살인사건의 범인은 바로 무관심이었다. “미안해, 송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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