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 칼럼니스트  신세미]

올 봄 이사를 앞두고 있는 데다 코로나로 ‘집콕’하면서 살림살이들을 정리중이다. 주방 붙박이장과 서랍장에 모셔둔 30년 전 신혼그릇부터 넘쳐나는 플라스틱용기와 1회용품, 소형 주방용품이며 비상-예비용의 식료품과 각종 차와 커피에, 올 들어 거의 컬렉션 수준의 마스크까지... 각 방의 붙박이장 속 깊숙이 보이지 않던 물건까지 용품을 용도와 무게별로 간추리며 일부는 빼내니 이용도 수월하고 보기도 깔끔해졌다.

코로나 이후 남녀노소가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면서 주생활 관련, 건축 인테리어 뿐아니라 정리정돈에 대한 열기가 각별한 요즘이다. 한겨울이지만 이웃에서 집 안팎을 개보수하는 공구 소리가 끊이지 않고, TV서 주택 관련한 프로그램이 부쩍 많이 보인다. 

사진=픽사베이(bazar market , Egypt)
사진=픽사베이(bazar market , Egypt)

살 집을 찾아주고 인테리어를 거들 뿐 아니라 특정인의 집을 정리해주기도 한다. 전문가의 ‘신박한 정리’를 거쳐 변신한 자기 집을 마주한 출연자들은 놀라운 변화에 감동과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책장, 옷장 등 일부 가구의 위치를 바꾸고 취미용품, 장난감, 기념품을 추려내고 재배치하니 포기했던 부부만의 공간, 서재 겸 작업실과 개인별 드레스룸이 확보됐다. 버리기를 금기시하던 ‘맥시멀리스트’조차 인테리어잡지에 나옴직하게 미니멀해진 실내 풍경에 파안대소했다.

정리전문가의 조언이 인상적이었다. ‘과거의 추억에 얽매이기보다 미래를 생각하며 주변에 물건을 지니기보다 비우라’고. 바쁜 일상에 치여 여유도 없고, 추억 때문에 혹은 미래의 용도를 위해 이것저것 챙겨두지 않는가. 그러다 보니 유용한 공간만 줄어들 뿐 정작 필요할 때면 찾기 어려워 또 장만하는 악순환.

전문가들은 정리의 효율을 위해 살림살이를 ‘계속 지닐 물건’, ‘나눔용’, ‘폐기용’으로 분류해 재활용하거나 버릴 것부터 집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 정리의 시작이고 기본이라고 조언한다. 물론 물건마다의 추억과 용도가 제각각이라 ‘인 앤 아웃’의 결정은 쉽지 않다. 그럴 때면 사진에 담아 추억하는 것도 물건의 수와 양을 줄이며 집의 공간을 되살리는 방법이란다.

현실적으로 물건들을 치우기도 수월치는 않다. 코로나 이전에는 안 입는 옷, 쓰지 않는 일상용품을 모았다가 종교사회단체에 기부하면 바자행사들을 통해 단체에 재정적 도움도 되고 물건도 쓸모를 발휘할 수 있어 좋았다. 그러나 모임과 행사가 죄다 취소돼 나눔의 환경이 여의치 않다. 가구, 전자제품은 재활용 분리수거 업체에 비용을 지불해야 하니 그 또한 일이고 부담이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정리가 어려운 품목이 오랜 세월 지녀온 수집품들이다, 옛 물건, 골동은 용도보다 취향과 애정의 대상인데 평생 지닐 수도 없고 그렇다고 처분하기도 애매하다. 어느 시기에 열정적으로 찾아다니며 모았고 지인들도 그런 나를 생각하며 선물한 물건들인 만큼 정리와 처리가 어렵다. 서구서 경매회사의 출발이 귀족 부유층의 유품 취급이었고, 지금도 유명인 사후에 컬렉션의 경매 뉴스를 전해듣곤 하지만, 내 컬렉션은 경매에 낼만한 수준과 규모가 아니니 ‘어찌 하오리까’다.

요즘 그런 고민을 일부 해소해주는 채널이 지역단위의 중고거래 시장이다. 특히 핸드폰 애플리케이션 ‘당근 마켓’은 나로선 이보다 더 유용할 수 없는 중고장터다.

당근 마켓은 이웃 간의 직거래를 모토로 인접한 동별로 운영된다(동네 인증의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다른 동네 주민도 특정 지역에 접속할 수는 있으나 이웃 간 직거래를 지향한다) 누군가 휴대폰 당근 앱에 판매 물품의 사진과 가격 등 상품 정보를 올리면 이웃에게 그 물건이 노출되고, 판매자와 수요자가 서로 연락해 물건을 건네는 시스템이다,

‘당근’의 이미지로 주황색 야채 당근이 등장하지만 ‘당신의 근처’를 뜻하는 이름이다. 1 년 전 지인의 소개로 입문했고, 일시 휴지기를 거쳐 근래 집 정리하면서 애용자가 됐다. 당근에는 이사 앞두고 생활용품을 정리하는 사연도 많고, 최근엔 코로나 불황으로 문 닫는 자영업자들의 폐업 세일도 등장했다.  

한동안 애장했던 물건들, 특히 국내외에서 사 모은 골동들을 제대로 관리하기 어려워 떠나보내려면 감정이 복합적이다. 사소한 물건이라도 첫 만남부터 함께 해온 세월의 추억이 뒤엉켜 헤어지려면 섭섭하면서도 한편 누군가가 나보다 더 아끼며 관리하리라는 기대가 교차한다. 특히 해외여행지 상점, 벼룩시장에서 보고 또 보다가 구입해 집에 데려온 애장품을 처분하려면 마음이 편치 않다. 깨끗이 닦아 사진도 찍어두며 일종의 이별식을 갖는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며칠 전 중고거래를 통해 특별한 경험을 했다. 지난해 당근에 올린 금속 종을 몇 개월만에 재등장(당근 용어는 ‘끌올’)시켰더니 한 분이 연락을 해왔다. 물건에 대해 많이 묻고는 ‘한다 안 한다’ 후속 연락을 뚝 끊으면 다소 황당한데, 꼭 사는 분들은 묻거나 따지지 않고 쿨거래의 경향이 많다. 이 분 역시 ‘종 구입할게요’라고 짧은 글을 보낸 뒤 당일 저녁 집 근처로 와 갖고 가셨다. 그리고 1시간쯤 후 그 종까지 진열된 종 컬렉션 장의 사진 찍어 보내셨다.

그 분은 종 컬렉션의 계기가 해외 경매사이트에서 발견한 어느 할아버지의 종들이라고 했다. 종 500여점을 모은 이는 작고한 할머니. 종을 대할 때마다 할머니 생각이 나서 한꺼번에 경매에 낸다는 할아버지의 글에 마음이 움직여 그 종들을 산 뒤 종 컬렉터가 됐다고 한다.

현재 3천여 종에 이르는 종 수집의 시작도 인상적이었고. 종 컬렉션용 장을 짜 맞춰 잘 보관하는 그 분의 열정과 뜻에 감동해 나의 종들도 맡기기로 했다.

창고 방을 뒤져 20~30년 전 한동안 수집했던 종 상자를 찾아냈다. 유리 자기 소재의 종은 깨끗이 씻어 말리고, 종 추가 빠지거나 깨진 것들은 조각이 남아 있는지 상자를 꼼꼼히 챙겨보며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한때 애장하던 종 수십 개 중 몇 개만 빼서 한동안 곁에 두다가 그마저도 어느 시기에 종 컬렉터에서 전할 예정이다.

코로나 이후 내 일상은 이렇게 정리되고 있다. 누군가와 추억도 나누며....

 

 

신세미

전 문화일보 문화부장.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서 기자로   35년여 미술 공연 여성 생활 등 문화 분야를 담당했다.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ews34567@opiniontimes.co.kr)도 보장합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