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 칼럼니스트  서용현]

<고물차(車)의  행복>

내 차는 10년 쯤 된 고물이다. 이리 저리 받아서 사방이 찌그러져 있다. 이  고물차는 행복의 원천이다. 우선 스트레스가 없다. 외제차를 타는 사람들은 박거나 박힐까봐 노심초사한다. 그러나 내 차가 후진하다가 나무를 받으면 내 차는 안 쳐다보고 나무가 상했는지를 본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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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차는 10년간 고장이 없었다. 연료비, 보험료도 싸다. 이 차는 파리에서 산 국산차다. 원래 소나타를 사려고 갔는데 딜러가 소나타는 너무 커서 주차가 어렵다고 해서 작은 차를 산 것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꼬마 차를 타고 다니면서 대신 좋은 음식, 와인, 예술 공연 등에 돈을 쓴다. 그들이 구내식당에서 식판을 들고 20분 만에 식사를 끝내고, 예술 공연 전혀 안 보면서 차만 비싼 외제차를 타는 한국인을 보면 “왜 사니?”라고 물을 것이다.

<차(車)팔어!>

나는 차를 가진 학생(및 졸업생)들에게 ‘차 팔어’라고 훈계한다.

차를 운전하고 다니면 머리가 나빠진다는 이유 때문이다. 나는 묻는다: “서울 같은 곳에서 길이 막히면 2-3시간도 걸리는데 운전하며 무슨 창조적인 생각을 하느냐? 신호등과 도로표지판만 보지? 반면에 지하철, 도보 등을 이용하면 주변의 사람들이나 광고 등을 보면서 사색을 하고 아이디어를 개발시킬 수 있지 않느냐(원래 아이디어는 남의 아이디어를 ‘참조’해서 만드는 것이다)? ‘운명의 여인’을 만날 수도 있지 않느냐? 작은 메모책을 들고 다니면서 떠오르는 단상을 기록해보라. 이러한 버릇이 몸에 익으면 너는 머리가 좋아지고 패러다임 전환의 대가가 된다. 같은 원리로 스마트폰도 너를 돌대가리로 만들 수 있다. 최소한 게임은 하지 말라.

 

<성공의 법칙이 바뀌고 있다>

나는 왜 성공을 못할까? 나는 왜 공부가 안 될까?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을까? 나는 이 모든 문제가 우리가 '썩은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생긴다고 본다.  생각만 뒤집으면, 즉 패러다임만 바꾸면, 인생, 성공, 행복은 쉽다.  그러면 왜 성공과 행복을 못 이루나? 아래 때문이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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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공/행복은 인간관계와 소통에 달려있다.

2. 그런데 우린 경직적인 교육을 받으면서 머리가 돌대가리가 되었다.

3. 그래서 우린 진부하고 패러다임의 전환을 못 한다 (인맥, 지연, 학벌에 대한 집착 자체도 ‘썩은 패러다임’이다).

4. 우린 복사판 인생을 산다. 사회는 이 복사판들을 다 출세시킬 여력이 없다.

성공과 행복은 인맥, 지연, 학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신(神)은 이것들을 이룰 재능을 모두에게 주었다. 그 재능이란 1) 볼 수 있는 것, 2) 들을 수 있는 것, 3) 말할 수 있는 것, 4) 느낄 수 있는 것, 5) 웃을 수 있는 것, 6) 생각할 수 있는 것, 7)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세계 7대 불가사의>에 관한 동영상> 참조). 그런데 너는 그 신의 선물을 쓰지 않고 불평만 한다. 그러면 너의 실패는 확실하다. 상호의존(상생)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경쟁력은 ‘인간관계’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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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과 함께 잘 협력하면서 일해야 경쟁력이 생긴다. '인간다운 인간,’ ‘사람 냄새 나는 사람'이 뜬다. 좋은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좋은 인성(人性)’이 필요하다. 이른바 ‘큰 사람’의 덕성이 인성의 핵심이다. 잔머리가 아니라 ‘큰머리’가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배려하고, 소통하면서 살 줄 아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친구, 고객등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다. 이런 사람은 자기가 속한 사회나 조직에 크게 기여한다. 과거 삼성 재벌기업에서 권위있는 점쟁이를 면접에 참여시킨다는 전설이 있었다. 왜일까? ‘인성(人性)’을 보기 위함이다. 올바른 인성은 조직경쟁력의 원천이기도 하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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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다임을 바꿔라. 여러분이 새 시대의 경쟁에서 내세울 ‘경쟁력’이 무엇인가? 한국인들의 ‘장기’는 모두 공부다. 그러나 공부(지식)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컴퓨터에서 누구나 찾을 수 있는 (암기)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여러분은 99%가 몰려 있는 공부 경쟁에서 두각을 나타낼 자신이 있는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기를 쓰고 공부를 통해 성공하려 한다. 찰스 다윈은 이렇게 말했다: “끝까지 살아남는 자는 강자도, 똑똑한 자도 아니다. 변화에 적응하는 자다.      ” 여러분은 적응하고 있는가? 일본의 전국시대에는 칼싸움 잘하는 사무라이가 떴다. 메이지 유신을 통해 사무라이의 시대가 갔는데도 일본 칼잡이들은 칼에 집착했다. 이들은 그러면서 도태해갔다. 여러분은 ‘공부 사무라이’인가? ‘공부 동키호테’인가? 시대착오에서 벗어나라.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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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천명(天命)을 받고 태어난다. 하늘은 모든 사람에게 사명(mission)’을 주고,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재능’을 준다. 그런데 한국 학생들은 천명을 무시하고 무조건 일류 학교, 일류 직장의 ‘줄’에 선다. 무조건 대학에 간다. 그 줄은 엄청 길다.

이는 “자기가 잘 하는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아니다. 실패는 당연하다. 이는 천명을 어긴 데 대한 천벌이다. 왜 ‘긴 줄’에만 서는가? 시야를 돌려보라. 남들이 돌아보지 않는 ‘블루 오션(blue ocean)’이 널려 있을 것이다. ‘공부’야말로 ‘레드 오션(red ocean)’이다. 상어들이 횡횡하는 피바다이다 (친구한테 노트도 빌려주지 않는다 하지 않는가?). 꼭 여기에서 경쟁을 해야 하겠는가? 눈을 돌려라. 99%가 외면하고 있는 ‘블루 오션’이 널려 있을 것이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서용현, Jose

 30년 외교관 생활 (반기문 前 UN사무총장 speech writer 등 역임) 후,

 10년간 전북대  로스쿨 교수로 재직

 저서 <시저의 귀환>, <소통은 마음으로 한다> 등. 

[‘서용현, Jose’는 한국이름 서용현과 Sir Jose라는 스페인어 이름의 합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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