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vs 스티브잡스
[오피니언타임스 =칼럼니스트 서용현]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는 패러다임 전환의 귀재(鬼才)였다. 그의 대표적인 패러다임 바꾸기 사례들을 보자. 정말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정회장은 사실상 무학(無學)이었다. 나는 정회장이 학교에 안 갔기 때문에 패러다임 전환의 천재가 되었다고 본다. 한국인들의 암기지식은 패러다임 전환에 방해가 된다. 지식에 의존하여 직관(直觀)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학교가 획일적인 교육을 통해 창의력을 죽이기 때문이다.
“삶은 유한하므로 다른 사람의 생각에 매몰되는 도그마(dogma) 에 빠지지 말고 자신의 ‘가슴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라” - 스티브 잡스의 말이다. 정회장이 바로 이런 ‘용기있는 사람’이었다. 나도 학교 다니면서 학교공부를 적당히 무시했다. 지금 생각에는 더 개 무시할 걸 그랬다고 후회된다.
<소떼몰이 방북(訪北)>
정회장이 소떼 1001마리를 차에 싣고 북한에 간 <소떼몰이 방북(訪北)>은 유명하다. 남북 민간 교류의 물꼬를 트는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은 "20세기에서 가장 아름답고 충격적인 전위예술"이라며 극찬하였다.
<지폐 속의 거북선>
조선업을 시작하기 위해 만난 영국 금융가가 “경험이 없다”고 거부한 데 대해 500원짜리 지폐 속의 거북선을 보여주고 차관을 약속 받았다. 영국 금융가는 정회장의 열정과 배짱에도 감명 받았으리라. 이것이 조선강국 한국의 출발이었다.
<고사포를 옥상으로>
신축중인 전경련 회관에 대해 군부가 고사포의 시계(視界)를 가린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정회장은 “고사포를 전경련 건물 옥상으로 옮기자”라고 제안하여 해결하였다.
<4번의 가출>
그러나 그의 인생을 바꾼 패러다임의 전환은 어렸을 적에 4번이나 가출한 것이었다. 유교적 가부장권이 강하던 시절에 농사지으라는 부친의 지시를 어기고 가출한 것 자체가 패러다임의 전환이었다. 그가 가출하여 나룻배를 타는데 돈이 없어서 무전승선을 했다. 뱃사공은 정 소년에게 따귀를 크게 치고 “후회되지?”하고 물었다. 정 소년은 "네, 후회 되네요. 배 한 번 타는 데 뺨 한 대라면 진작에 탈걸..."이라고 답했다. 학생 여러분은 가출할 용기가 있는가?
더 감동적인 서사시가 있다. 정회장과 박정희 대통령의 “긍정의 힘”이 빚어낸 증동진출의 신화다. 이건 인터넷에서 퍼온 것인데 삭제된 듯하다. 유감이다.
<중동 진출, 불가능은 없다>
1975년 여름 어느 날,박 정희 대통령이 현대건설 정주영 회장을 청와대로 급히 불렀다.
박: 달러를 벌어들일 좋은 기회가 왔는데 일을 못하겠다는 작자들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 중동에 다녀오십시오. 만약 정 사장도 안 된다고 하면 나도 포기(抛棄)하지요.
정: 무슨 얘기입니까?
박: 1973년도 석유파동으로 지금 중동국가들은 달러를 주체하지 못해 그 돈으로 여러 사회 인프라를 건설하고 싶은데, 너무 더운 나라라 선뜻 일하러 가는 나라가 없는 모양입니다. 우리나라에 일할 의사를 타진해 왔습니다.관리들을 보냈더니, 2주 만에 돌아와서 하는 얘기가 너무 더워서 낮에는 일을 할 수 없고, 건설공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이 없어 공사를 할 수 없는 나라라는 겁니다.
정: 그래요, 오늘 당장 떠나겠습니다.정회장은 5일 만에 다시 청와대에 와서 박대통령을 만났다.
정: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하늘이 우리나라를 돕는 것 같습니다.
박: 무슨 얘기요?”
정: 중동은 이 세상에서 건설공사 하기에 제일 좋은 지역입니다. 1년 12달 비가 오지 않으니 1년 내내 공사를 할 수 있고, 건설에 필요한 모래, 자갈이 현장에 있으니 자재 조달이 쉽습니다,박: 물은?
정: 그거야 어디서 실어오면 되고요.
박: 50도나 되는 더위는?
정: 천막을 치고 낮에는 자고 밤에 일하면 됩니다.
박 대통령은 부자를 눌러 비서실장을 불렀다.임자, 현대건설이 중동에 나가는 데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도와줘! 정 회장 말대로 한국 사람들은 낮에는 자고, 밤에는 횃불을 들고 일을 했다. 세계가 놀랐다.달러가 부족했던 그 시절, 30만 명의 일꾼들이 중동으로 몰려나갔고 보잉 747 특별기편으로 달러를 싣고 들어왔다...(다음편에 계속됩니다)
서용현, Jose
30년 외교관 생활 (반기문 前 UN사무총장 speech writer 등 역임) 후,
10년간 전북대 로스쿨 교수로 재직
저서 <시저의 귀환>, <소통은 마음으로 한다> 등.
[‘서용현, Jose’는 한국이름 서용현과 Sir Jose라는 스페인어 이름의 합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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