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 =칼럼니스트  서용현]

장 그래 vs. 성 대리

시대가 변하고 있다. 투쟁의 시대가 저물고 ‘상호의존’의 시대가 오고 있다. 과거에는 투쟁(예: 시험, 전쟁, 모략) 잘하는 사람/나라가 성공했다. 이제는 안 된다. 예를 들자. TV드라마 <미생>을 보라. 여기에서 ‘성 대리’는 ‘투쟁적 인간’을 대표하고, ‘장 그래’는 ‘상호의존적 인간’을 대표한다. 옛날에는 ‘성 대리’가 출세했다. 지금은 어떨까? 사람들은 누구를 채용하고, 누구와 거래하고, 누구와 친구가 되고자 할까? 물론 장 그래다. 성 대리는 왕따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중요한 것은 인성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인성(人性)이다. 인간관계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 자식은 인성이 나빠도 1류 학교에 가기를 바란다. 투쟁의 시대에는 ‘성 대리’같은 쌈닭이 번영했다. 흑심/권력욕이 많은 비정한 정치인이 정권을 잡았다. 지독한 노랭이가 부자가 되었다. 이러한 ‘성 대리’의 시대는 갔다. 지금은 ‘장 그래’의 시대다.

투쟁의 타성에 젖은 나라/사람들은 투쟁의 버릇을 계속한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무조건 진다. 요즘 뇌물, 탈세, 부정부패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투쟁을 하던 사람들이 망하는 이유가 뭘까? 전에는 통했던 투쟁의 수법이 이젠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그래도 사람들은 투쟁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지금도 투쟁의 시대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전직 대통령이 감방에 간 것이 분수령이었다. 국회의원이 얼마 안 되는 돈을 받았다고 구속되고 의원직을 박탈당한다. 대기업의 총수가 구속된다. 침략전쟁을 개시한 국가가 막대한 전쟁 비용 때문에 휘청댄다.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투쟁해서 망한 사람은 보지 않고 성공한 사람만 본다. 쌈닭들이 망하는 사례를 그렇게 많이 보고도... 불나방처럼 투쟁에 뛰어든다. 이거 石頭(돌대가리) 아닌가?

게임을 바꿔라

로마의 시저는 명장 폼페이우스를 원수로 하는 원로원 보수세력을 상대로 그리스의 파르살로스에서 결전을 벌렸다. 시저는 상대의 게임 방식대로 싸우지 않았다. 게임 자체를 바꿨다. 시저 군은 수적으로 폼페이우스 군의 절반도 안 되었다. 특히 회전(會戰)의 승패를 좌우하는 기병(騎兵)은 1/7밖에 안 되었다. 상대의 게임방식대로 싸우면 무조건 지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시저는 회전의 상식을 무시하고 보병부대가 창을 앞세워 적군의 말들을 위협, 적군 기병대를 무력화시키는 임기응변에 의해 대승을 거두었다. 이런 것이 “게임을 바꾸는 것(Change the game)”이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게임 바꾸기”도 “패러다임의 전환”의 일종이다. 다만 게임 바꾸기는 보통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게임의 ‘룰’ 자체를 뒤집어서 ‘의외성’으로 승부한다는 점에서 보통의 패러다임 전환과 다르다.

태평양 전쟁(太平洋 戰爭)에서 맥아더 원수가 구사한 “개구리 뛰기”전술도 “게임 바꾸기”였다. 그가 태평양에 있는 수많은 섬들을 공략, 점령하면서 전쟁해서는 끝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일본군의 거점을 ‘건너 뛰어서’ 후방의 섬을 공격했다. 그래서 일본군 거점을 고립, 무력화시키고 다시 개구리 뛰기를 했다. 이 전술에 의해 맥아더는 최소의 비용, 최소의 인명피해로 최단의 시간에 전쟁을 끝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학생들은 암기공부와 주입식 공부를 당연시 한다. 즉, 이들은 공부라는 게임의 ‘룰’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 ‘룰’에 의해 공부하면 공부 잘 할 수 없다. 즉, 나쁜 ‘룰’이다. 그런데 어떤 학생이 암기공부와 주입식 공부를 끊고, 학교시험을 개 무시하여 일류대학에 쉽게 들어갔다면 이건 전형적인 “게임을 바꿔라”에 해당된다. 바로 내 경우다. 나는 암기와 주입식 공부가 독(毒)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관한 고정관념을 뒤집으면, 즉 게임을 바꾸면 공부는 너무 쉽다. 

“죽어도 대학에 가야 한다”는 것은 보통의 게임규칙이다. 학생들은 왜 대학에 가야 하는지 모르는 채 ‘룰’에 따라 악착같이 대학에 간다. 그런데 어떤 학생이 아버지에게 <대학에 가지 않겠다> 하면서 등록금을 적금 들어달라고 하면서 고졸 취업을 했다가 나중에 창업을 하면 “게임을 바꾼” 것이다. 미국 IT 삼총사인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크 저크버그가 일류대학을 중퇴한 것도 “게임을 바꾼” 것이다.

정치(政治)야말로 “게임 바꾸기”가 절실하게 필요한 분야다. 우리 정치가 잘 되고 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정치의 “게임” 자체를 뒤집어 엎어야 한다. 미국의 협상학자 윌리암 유리는 <NO를 넘어서>라는 책에서 특히 상대가 막가파일 경우, 상대의 방식대로 해서는 협상이 불가능하다고 하면서 “게임 자체를 바꿀 것”을 권고한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그러면 어떻게 게임 규칙을 바꾸느냐? “국민이 결정 한다”가 새로운 게임규칙이 되어야 한다. 국정의 주요한 문제를 “정당이나 국회가 아니라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결정 한다”는 것을 게임 규칙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 하에서 우리의 ‘정치 시스템’을 백지에서 재검토 하는 것이다. 사실 “국민이 결정 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이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민중은 오랫동안 기득권 정치의 노예로 살면서 정치에 무관심해졌다. 정치의 쇄신을 위해서는 민중의 정치에 대한 관심을 되살려야 한다. 스테판 에셀은 저서에서 “분노하라”고 악을 썼지만 분노하는 한국인은 거의 없다. 분노를 잊었다. 이것을 바꾸어서 한국인이 분노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분노할 기회, 즉 민중이 정치에 참여하는 기회를 최대한 자주 주기 위해서는 ‘직접민주정치’를 최대한 부활시키고 국회의 권한을 약화시켜야 한다. 정당도 약화시켜야 한다. 정치를 ‘재밌게’ 만들고 ‘정치 신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이렇게 조성된 ‘민중의 바람’으로 구시대적 정치 괴물들을 제압해야 한다.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서용현, Jose

 30년 외교관 생활 (반기문 前 UN사무총장 speech writer 등 역임) 후,

 10년간 전북대  로스쿨 교수로 재직

 저서 <시저의 귀환>, <소통은 마음으로 한다> 등. 

[‘서용현, Jose’는 한국이름 서용현과 Sir Jose라는 스페인어 이름의 합성이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