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과 졸업하고 인사업무 전문가 인류학 전공 60세 컴퓨터 코딩

대학가 모습=ytn유튜브 뉴스 영상캡쳐
대학가 모습=ytn유튜브 뉴스 영상캡쳐

 

박내석 전 U&I상무=오피니언타임스
박내석 전 U&I상무=오피니언타임스

 

[오피니언타임스=박내석 소방기술사] 코끼리와 말뚝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아마도 한 번 이상은 들어봤을 만한 이야기다.

덩치가 산 만큼 큰 코끼리들이 작은 말뚝에 순하게 길들어져 있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자란 코끼리라면 얼마든지 쉽게 뽑을 수 있을 만큼 굵지도 않고 깊게 박히지도 않은 말뚝이다.

하지만 코끼리는 자신을 구속하는 밧줄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물론 애시당초 어렸을 적의 힘없는 코끼리에게 말뚝과 밧줄은 그리 약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린 코끼리는 수도 없이 그 말뚝에서 벗어나려 했을 테고 그때마다 좌절을 경험했을 것이다. 좌절이 거듭되며 말뚝을 뽑겠다는 자신의 노력은 결코 성공할 수도 없고 힘만 드는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도 깨달았겠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아마도 지신의 덩치가 자라는 속도보다도 더 빠르게 강해졌을 것이다.비단 코끼리만 그럴까?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나와 상대를 그 안에 가두는 각종의 프레임과 편견 그리고 생각의 한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중의 하나로 ‘나는 문과생이고 너는 이과생’이라는 프레임을 이야기하고 싶다. 대학 동창 몇십 명이 모여 있는 단톡방이 있다. 원래는 페이스북에서 생각의 결이 비슷한 친구들이 그룹으로 모여 있었던 것인데 수다 떨기에 편한 카톡방으로 옮겨온 것이다.

그 방에서 심심찮게 나오는 표현 중의 하나가 바로 ‘나는 공대 출신 혹은 나는 인문대 출신이라 그런 것 잘 몰라’라는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한계에 대한 적절한 변명으로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대학은 불과 4년을 다녔을 뿐이고 졸업 후 각자의 영역에서 전문성을 키워 온 기간은 30년이 더 넘는다. 기계과를 졸업하고 인사업무 전문가가 된 지인도 있고 인류학을 전공하고 60이 가까운 나이에도 여전히 컴퓨터 프로그램을 코딩하고 있는 친구도 있다. 이 두 사람 중에 과연 누가 더 문과적이고 누가 더 이과적일까?

사실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때에는 군사독재정권에 치열하게 저항했던 시절이라 전공이라 해도 지금의 대학생들처럼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고 공부하는 학생들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이수 학점이라고 해서 다 전공과 관련된 것도 아니다. 어쩌면 인생 경험의 전체에서 봤을 때 전공 경험은 매우 짧은 기간이다. 

마치 코끼리에게 자신의 힘보다 더 강한 말뚝을 경험한 기간이 어릴 적에 그다지 길지 않았던 것과 같은 것이다. 

필자 역시 역사학을 전공했지만 대학 후 직장은 IT회사였다. 현재는 소방기술사로 활동하고 주말이면 학원에서 소방기술사자격을 취득하고자 하는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다.

사실 적지 않은 수입이 있음에도 정년이 따로 없는 소방기술사는 노후의 경제 활동을 걱정하는 많은 중년들에게 매력 있는 자격증 중 하나다. 도전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문과 출신이지만 IT쪽에 종사하는 필자의 지인들이 적지 않다. 취업문이 상대적으로 넓지 않은 문과 출신들과 90년대 이후 인력 수요가 급격하게 증가한 IT 산업이 만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50이 넘어가며 그중 적잖은 친구들은 조기 은퇴를 했고 아직 남아 있는 친구들이라 해도 몇 년 이내에 떠나야 할 처지를 걱정하고 있다.

나는 그런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소방기술사에 도전해보라고 권한다. IT는 소방의 유관산업이라서 그 경력자들에게 응시자격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우선 나오는 말은 내가 문과 출신인데 그런 공부를 어떻게 하냐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너는 IT출신이지 문과 출신이 아니라’고 답하여 준다. 그러면 그 다음 한결같이 하는 말이 본인은 암기에 너무 약해서 이젠 공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나의 답은 암기에 자신 있다고 하는 경쟁자는 한 명도 없으니까 걱정할 것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암기 잘하면 무슨 공부할 필요가 있겠냐고 이야기하면 비로소 수긍은 한다. 

그렇다고 해서 곧바로 자신감을 얻고 도전의 마음을 갖게 되는 사람들 또한 그다지 많지 않다. 생각의 습관을 극복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라고 느끼게 되는 지점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거기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또한 새로운 것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고도 말하고 싶다.

비단 문이과 프레임이 아니라 하더라도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또 다른 무엇은 없는지 자신을 한번 훑어보면 어떨까? 의외의 곳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만날지도 모른다. 
어느 책의 제목처럼 비로소 보이는 것이다.

 

[저자약력]
서울대 동양사학과 졸업 
소방기술사
한국기술사회 통일준비위원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 기술평가위원
한국교통안전공단 기술평가위원
㈜하나기술단 전무(현)
현대유엔아이(주)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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