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YTN 유튜브 뉴스 영상캡쳐
사진=YTN 유튜브 뉴스 영상캡쳐

 

[오피니언타임스=칼럼니스트 석혜탁] 8천만 쌍, 즉 1억 6천만 명. 전 세계적으로 불임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사람들의 대략적인 규모다. 대한민국 인구의 3배에 달한다. 

필자 주변에도 아기를 갖기 위해 노력하는 커플이 적지 않다. ‘노력’이라는 단어로는 그들의 고민, 눈물, 걱정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그들은 오늘도 긴장된 몸과 마음으로 병원에 간다. 그리고 의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재보선이 다가오니 정치판이 시끄럽다. 서울시장, 부산시장 자리를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 내년 대선의 판도가 달라질 것이라는 정치평론가들의 말이 곳곳에서 쏟아진다. 중요한 선거에 뜨거운 관심이 쏠리는 것이야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며칠 전 한 지상파 채널의 라디오 방송을 우연히 들었다. 진행자는 야권 유력 정치인에게 질문을 던졌다. 제1 야당 후보가 단일화 논의에서 승자가 되지 못하면 ‘불임 정당’이 되지 않겠냐는 취지의 물음이었다. ‘후보를 내지 못하는 정당’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표현이었다. 

지상파에서 이런 분별없는 표현을 듣게 되다니. 또 그 진행자는 사실 평소 꽤나 진보적이고 합리적인 저널리스트로 평가받는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씁쓸했다. 물론 표현 하나를 가지고, 그가 그동안 보여준 분석력과 냉철함 등을 평가절하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실망스러운 감정이 든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예쁜 아기를 갖는 꿈을 이루기 위해 고생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저 표현이 어떻게 들릴까? 최신 기사를 검색해보니, 안타깝게도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는 저 표현은 다른 매체에서도 관용어처럼 왕왕 쓰이고 있었다. 

정치권에서 유통되는 언어가 특히 선거 국면에서 다소 자극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찬성은 못 해도 이해는 할 수 있다. 다만 그 언어가 누군가의 아픔을 더욱 배가시키는 못된 역할을 한다면, 비판받아 마땅하며 다른 표현으로 하루빨리 대체되어야 한다. 

정당에서는 후보를 못 내는 것이 불명예스러운 일이고 존립 자체에 타격을 주는 일일 수 있겠다. 한데 ‘불임 정당’이라는 표현을 이런 맥락의 연장선에서 사용하면 ‘불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불임으로 진료를 받은 사람의 수는 109만 명을 상회한다. 유권자의 선택을 받고자 하는 정치인이라면, 아무리 비유적 표현이라고 하더라도 언어 구사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불임은 불명예도 아니고 누군가의 잘못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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