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여권 동서 갈등이나 빈부 갈등을 한결 더 복잡하게

 

kbs기자가 해외 나라들의 백신여권 발급관련 뉴스를 전하고 있다=kbs유튜브 뉴스 영상캡쳐
kbs기자가 해외 나라들의 백신여권 발급관련 뉴스를 전하고 있다=kbs유튜브 뉴스 영상캡쳐

[오피니언타임스=양평 칼럼니스트] 인류의 역사를 지금까지의 BC(Before Christ)와 AD(Anno Domini)로 나누는 것과는 별도로 BC(Before Corona)와 AC(After Corona)로 나눠야 한다는 말이 나온 지도 꽤 됐다. 그것은 코로나가 사라져도 세계는 코로나 이전의 세계로 돌아 갈 수 없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어딘지 과장된 듯해서 실감이 나지 않는 말이지만 바로 올해, 즉 AC 1년에 등장한 ‘백신 여권’이란 말은 새삼 그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 같다.

아직 백신 여권이 실용화되지는 않았으나 그것이 지구촌의 구석구석에서 어떤 모습으로라도 사용되리라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중국은 지난 8일 중국판 백신여권인 ‘국제여행건강증명’을 출시했다.이스라엘과 그리스는 이미 지난달 상호백신여행협정에 서명했고 스페인과 포르투갈, 오스트랄리아와 뉴질랜드도 명칭과 상관없이 백신 여권의 도입을 협의 중이라는 소식이다.

유럽에서는 그리스 포르투갈 그리고 스페인처럼 관광산업 비중이 높은 나라들이 백신여권에 적극적인 반면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중심 국가들이 신중한 반응이어서 이목을 끌기도 한다.

그 결과가 어찌 됐건 그것은 태고 시대부터 전염병에 시달려온 인류역사에서 하나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모습이다.

옛날 인류가 전염병으로부터 면역됐다는 증명 즉 백신 증명은 신체에 나타났었다. 오랜 세월 가장 무서운 전염병인 천연두의 백신 증명은 얼굴의 마마자국이었다.

그 마마자국은 흔히 ‘빠꾸’ 또는 ‘곰보’라는 놀림거리가 됐으나 그것은 천연두 백신이 등장한 이후였다.

천연두는 빈부도 계급도 가리지 않아 백신이 나오기 전에는 귀족은 물론 황제도 희생양이 됐다.

청나라가 중국을 석권한 이후 최초의 황제인 순치제(順治帝)가 불과 23세에 천연두로 죽는 과정에서 일어난 소용돌이는 특히 유명하다.

당시 황실은 그처럼 젊은 황제의 죽음을 인정하기 어려워 그가 불문에 들어갔다는 등의 이야기를 지어내 장황하게 퍼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순치제의 어머니로써 후계자를 지명해야 하는 효장태황태후는 원래 이성적이면서도 현명한 성품이었다. 당시의 중국 황실이 그렇듯 그에게도 그만 그만한 나이의 손자들이 많았는데 태황태후는 그 가운데 마마자국이 있는 손자를 황제로 점찍었다.

여권(passport)이 중세에 서양에서 성문(porti)을 통과(pass)하는 허가증에서 기원한 것이고 보면 그 마마자국은 제위에 오르는 여권이 된 셈이었다.

그렇게 제위에 오른 강희제(康熙帝)가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군이 됐으니 그의 마마자국은 중국을 위해 행운이었다.

그처럼 황제가 되는 경우는 논외로 치고도 마마자국은 한 두 세기 전만 해도 자랑스러운 자격증 같은 데가 있었다.

당시는 천연두가 워낙 무서워 마마자국이 있는 총각이 좋은 신랑감으로 꼽히는 식이었다.실은 백범 김구 선생도 마마자국을 지니고 있었으나 그로 인해 괴로워했다는 흔적은 없다.마마자국은 총각 동네에서 신랑 동네로 갈 수 있는 여권인 셈이었다.

마마자국과는 다르지만 서양사에서는 또 다른 ‘흉터 여권’이 행세한 적이 있다.결투가 유행하던 시절에는 얼굴에 흉터가 없으면 결투를 못하는 남자로 결혼이 힘들 정도였다. 결투야 천연두 같은 질병은 아니지만 당시 유럽 사회는 결투에 미친 분위기였으니 유행병이자 전염병 같은 것이기도 했다.

그 마당에 결투는 두려워서 언감생심인 남자들이 장가를 가기 위해 자해로 얼굴에 흉터를 내기도 했다. 그것은 총각동네에서 기혼 동네에 가기 위해 위조 백신여권을 만든 셈이었다.

그처럼 몸으로 보여주던 백신 효과를 이제 디지털 여권으로 보여주게 된 것은 진일보이나 그것이 혼란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우선 백신 자체가 여러 가지로 성능이 다른 데다 백신의 면역효과가 얼마나 완전한가, 그리고 효능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가 미지수여서 자칫 세계 전반의 코로나 전선에 혼선을 줄 수도 있어서다.그래서 세계보건기구(WHO)는 백신 여권을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로 세계가 정지되다시피 한 이 상황에서 백신이 준 혜택을 외면할 수는 없기에 그것의 사용은 필연일 수밖에 없다.

백신 여권이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그것이 오늘날 세계의 동서 갈등이나 빈부 갈등을 한결 더 복잡하게 하리라는 점이다.

우선 여러 백신들의 성능이 제각각이어서 백신의 종류에 따라 다른 백신 여권이 통용되기 마련이다.

현재 백신의 제조국들은 서방 국가들과 중국·러시아 등으로 나뉘어 있어 자칫 세력권에 따라 다른 백신여권이 등장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런 것을 떠나서 ‘백신 여권’이라는 발상은 코로나가 사라진 뒤에도 다른 분야에서 여러 형태의 ‘통행증’ 같은 것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새삼 코로나가 사라져도 세상은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 갈 수 없다는 말이 실감난다. 

[저자약력]

양 평

한국일보 문화부 차장

서울경제 문화부장 겸 부국장

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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