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의 확산으로 프랑스에서 동양인에 대한 혐오가 확산되고 있다는 관련 뉴스=ytn뉴스  유튜브 영상캡쳐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프랑스에서 동양인에 대한 혐오가 확산되고 있다는 관련 뉴스=ytn뉴스 유튜브 영상캡쳐

[오피니언타임스=양평 칼럼니스트] 미국에서 4명의 한국인을 포함한 6명의 아시아인이 원한도 없는 미국인에게 피살됐다는 뉴스에 접하는 순간 떠오르는 것은 ‘황화론(黃禍論)’이라는 단어였다.   

왜 두 세기 전에 나와서 이제는 별로 쓰이지도 않은 그 말이 떠올랐을까?그 말은 자주 쓰이지는 않지만 아시아인, 특히 황인종과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에게 잠재해 있을 수 있는 감정이어서 다.

하지만 그 근원을 따져보면 그것은 다른 ‘인종’의 사람들이 섞여 살다 보면 반드시 생겨나기 마련인 잠재적 감정으로 한국인들도 그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다.

한국인도 흑인은 물론 동남아인들에 대해서도 경멸감 같은 것이 잠재해 있지 않는가.문제는 그런 속성을 이용해 먹는 세력이 있어서 다.

‘황화론’이란 말이 생겨난 것도 그런 것이다. 그 말은 훗날 1차 대전의 당사자가 된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1895년에 만들어 낸 것이다.

그것은 물론 턱없는 이론이다. 당시는 황인종의 본바닥인 중국이 다른 인종들에게 화를 주기는커녕 거꾸로 해를 당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5년 뒤에는 의화단 사건으로 중국이 마치 병든 고래가 상어 떼에게 뜯어 먹히듯 서양의 8개국에게 약탈을 당했다.

그런 마당에 왜 빌헬름 2세는 ‘황화론’이란 말을 꺼냈을까?그것은 동부 유럽에서 게르만 족과 세력다툼을 벌이던 러시아에게 동양에 신경을 쓰도록 유도한 것이었다. 그래서 러시아가 동방에 주력하게 되면 자기네들은 동유럽에서 세력을 확산시키려는 속셈이었다.

빌헬름 2세가 러시아의 차르 니콜라이 2세에게 보낸 ‘황화(Die gelbe Gefahr)’라는 그림에는 독일을 상징하는 대천사 미카엘이 유럽 국가들에게 용(중국)을 타고 날아오는 부처(일본)를 경계하는 듯 한 손짓으로 가리키고 있다.

‘황화’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이 그림은 청일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일본의 위협을 상기시킨 것이었다.그로부터 10년 뒤 러시아가 일본과 싸워서 패했으니 황화론은 얼핏 모양새를 갖춘 셈이었다.

하지만  아득한 옛날 서양이 황인종에게 가장 혼쭐났을 때는 그런 말도 없었다.예를 들어 4세기에는 훈족이 유럽에 쳐들어가자 그들에게 내쫓긴 게르만족이 이동함으로써 결국 로마는 멸망하고 말았다.

다만 그 훈족은 중국 주변의 흉노나 몽골계라는 설도 있고 터키계라는 설도 있긴 하다.그러나 13세기에 동유럽을 침공한 몽골군은 어김없는 황인종인데도 ‘황인’이란 말은 없었다.

훈족에 관해 기술한 그리스의 역사가 조시모스는 “피부색은 어둡고, 눈은 없는 듯 작고 검은 구멍 같은 것이 두 개 있고, 코는 납작하고, 뺨에 상처가 난 얼굴은 형태 없는 덩어리였다”고 했으나 노랗다는 말은 쓰지도 않았다.

황인종이니 흑인종이니 하는 식으로 인종이 분류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로 서양의 제국주의가 본격화됐을 때 그것을 합리화하는 진화론의 영향으로 생겨났다.

그 뒤 잊혀진 듯 했던 황화론이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살아난 셈이다. 구미에서 동아시아인들이 중국인으로 몰려 수난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황화론’이라고는 하지 않고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욕을 하지만 같은 맥락이다.

그것이 미국에서는 정치적 이유로 더욱 가중되고 있다.중국을 극도로 혐오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로 때를 만났다는 듯이 중국을 몰아 부쳐서 다.

하지만 요즘 미국인들이 아시아인 혐오하는 심리에는 코로나 외의 요인도 있다. 거기에는 황인종들이 백인들의 경쟁상대로 언젠가 그들을 제압할 수도 있다는 말 그대로의 ‘황화론적’ 감정이 숨어 있는 것이다.

우선 중국이 미국과 대등하게 맞서는 상황은 처음 겪는 일이다. 여기에다 불원 중국이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도 미국을 능가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런 마당에서는 아시아 국가들이 서양보다 코로나를 더 잘 통제해 황인종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수록  그들의 황화론을 잠재우기 보다는 더 악화시키는 면이 있다.

이번 사태에서는 특히 한국인들이 눈여겨 봐야할 대목이 있다.이번의 한국인 피살사건은 물론 그 밖의 아시아인 폭행 사건에서도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을 중국인으로 오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인들 가운데 상당수는 코로나가 중국에서 발원했다는 트럼프의 주장에 맞장구 침으로써 제 발등을 찧는 듯한 모양새가 된 것이다.

주로 보수적 성향의 한국인들이 미국인들보다 더 요란하게 ‘우한 폐렴’이란 말을 즐겨왔다. 그리고 중국인들이 박쥐요리를 좋아한다는 등의 글로 혐오감을 조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인들이 혐오식품을 즐긴다고 떠드는 한국인들이 서양 사람들의 눈에게 어떻게 보일까?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는 박쥐 요리에 밀려 개고기 시비가 잠잠하지만 그들에게 동아시아인들은 오랜 동안 개고기를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는 동아시아인들의 민족적 국경은 흐릿한 채 그들의 식성은 초록이 동색인 셈이다.

[저자약력]

양 평

한국일보 문화부 차장

서울경제 문화부장 겸 부국장

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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