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내석 소방기술사=오피니언타임스
박내석 소방기술사=오피니언타임스

 

[오피니언타임스=박내석 소방기술사] 역사 이야기를 좀 하고자 한다. 학생들이 요즘 힘들어하는 과목 중의 하나는 한국사다. 벌써 수년 전 이야기다. 소방기술사 시험 준비를 하던 당시 생활비라도 보태고자 서울 교대역 근처 교습소에서 1년 남짓 한국사를 가르친 적이 있다. 대학 때 역사를 전공했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아이들이 힘들어했던 것 중 제일은 우리말 같으면서도 우리말 같지 않은 낯선 용어들이다. 다음으로는 지도위의 한반도와 주변에서 펼쳐지는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약한 지리 지식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한국사는 내용을 그냥 암기하는 과목이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수업의 대부분은 한자어로 된 명사들의 뜻을 풀어서 설명해주는 일이고 또 지도를 놓고 무슨 일이 어디에서 일어났는지를 같이 확인하는 것이었다.  도감(都監)은 고려.조선시대 역사에서 심심찮게 만나는 이해하기 어려운 명사 중 하나다. 

고려 말 공민왕 때 전민변정도감(田民辨整都監)을 기억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글을 풀면 밭과 민을 구분하고 정리하는 도감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당시 공민왕에게 개혁의 대상이었던 권문세족들이 부당하게 빼앗은 토지와 노비를 본래의 소유주에게 돌려주거나 양민으로 해방하는 일을 하기 위한 도감이다.

그러면 도감은 또 무엇이냐.도감(都監)을 풀어보면 都는 우두머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監은 감독의 의미이니 지휘하고 감독하는 최고 기관쯤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고려·조선 때 국가의 중대사를 관장하기 위해 수시로 설립한 기관들이다. 

그림과 사진 등을 담아 식물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식물도감(圖鑑)과는 다름을 알려주는 것도 필요했다.역사 교과서에는 다뤄지지 않은 내용이지만 조선 세종 8년에는 금화도감(禁火都監)이란 기관이 만들어졌다. 화재를 막는 조직으로 해석된다. 그러니까 우리 역사 상 최초의 소방관서다. 당시 한성부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가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소방 업무가 그리 많지 않았던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성을 보수하는 부서와 통폐합한다. 수성금화도감으로 명칭이 바뀌어 유지되다가 임진왜란 이후에는 이마저 유명무실해진다. 사실 재난이란 문명 발전의 부수물이며 과학 기술과 건축술이 발전하기 이전인 조선시대에는 제대로 된 소방조직이 존재할 이유가 크지 않았다.

그러다가 1894년 갑오개혁 때에 이르러 근대적인 여러 직제 중 하나로 경무청이 만들어지고 경찰업무와 함께 소방업무도 관장토록 하였다. 이때 만들어진 경무청 처무세칙에서 “수화(水火), 소방(消防)은 난파선 및 출화(出火) 홍수(洪水)등에 관계하는 구호에 관한 사항”으로 성격 지웠는데 소방이란 용어가 역사상 처음 등장하였다.

화재보험은 1906년에 일본인이 한국 내에 화재보험회사 대리점을 설치한 것에서 시작하고 1908년에는 일본 통감부가 우리나라 최초 화재보험 회사를 설립하였다. 처음엔 주로 일본인을 상대한 것이지만 일제 강점기 동안에 사회 전반으로 널리 보급되었다.

일제 강점기 동안의 소방 기본조직은 소방조(消防組)였다. 도시발달, 인구 밀집화로 소방수요가 늘어나고 화재발생이 증가함에 따라서 상비 소방대원이 배치되고 소방관서가 설치되게 된 것이다. 당시 자료가 없어 정확한 시행연도는 알 수 없으나 1900년대 무렵부터 소방조 소속의 상비 소방수가 임명된 것으로 보여지며 1918년말 조선총감부 통계에 의하면 150명 수준이라고 한다.

최초의 소방서는 1925년도 종로에 세워진 경성소방서가 되겠다.대한민국 정부 설립과 함께 요즘과 같은 모습의 소방 조직이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하였다. 소방에 관한 사항을 총괄하는 법의 제정은 이보다 다소 늦은 1958년이다.안타깝게도 소방의 발전은 재난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다.

2003년 대구 지하철 방화사건은 한 단계 발전된 소방체계를 만들었다. 소방법은 4개의 분법으로 발전하고 화재 안전을 위한 많은 조항들이 제정되고 개정되었다.이 외에도 부산 해운대 초고층건축물에서의 화재, 장성 노인요양병원 화재, 의정부 필로티 건축물의 화재 등은 소홀하였던 부분, 취약한 부분들에 대한 법적 기준을 강화하도록 만든 재난들이다.

우리 사회가 이 모습 그대로 머무르지 않는 한 지금까지는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재난은 꾸준하게 나타날 것이다. 얼마 전 마포 아현동 지하구 화재로 신용카드 결제 업무가 마비되어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피해를 입었던 것이 좋은 예가 될 것 같다. 

우리는 이러한 재난이 발생하기 전에 최대한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맞이했다면 유사 사례 재발을 위해 신속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장의 소방인력들 외에도 학문, 국가 정책과 입법, 제품과 기술 연구등 여러 분야에서 꾸준한 투자와 관심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이야기다.

 

[저자약력]
서울대 동양사학과 졸업 
소방기술사
한국기술사회 통일준비위원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 기술평가위원
한국교통안전공단 기술평가위원
㈜하나기술단 전무(현)
현대유엔아이(주)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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