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흑인의 범죄가 늘고 있다. 사진은 관련 보도ⓒYTN 유튜브 캡처
미국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흑인의 범죄가 늘고 있다. 사진은 관련 보도ⓒYTN 유튜브 캡처

[오피니언타임스=칼럼니스트 양 평] 한동안 뜸하다 싶었던 미국 흑인들의 아시아인에 대한 폭력이 재연됐다.

지난 30일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유모차를 끌고 가던 30대의 아시아인을 시드니 해먼드라는 흑인(26)이 마구 폭행했다.

브루스라는 이름의 이 아시아인이 쓰러지자 해먼드는 13대나 더 때렸고 그 바람에 한 살 먹은 아기를 태운 유모차가 주인을 잃은 채 굴러가자 폭행당하던 브루스가 쫓아가 붙들었다. 물론 브루스와 해먼드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지난 2일 뉴욕에서는 대만 여성 테레사(31)가 흑인 여성에게 망치로 얻어맞았다.

친구와 웨스트42번가를 걷고 있던 테레사의 뒤에서 한 흑인 여성이 나타나 “마스크를 벗어라”고 위협해도 응하지 않자 이 흑인은 손에 든 망치를 테레사에게 휘두른 것이다.

그래서 테레사는 병원에서 7바늘을 꿰매야 했으나 보다 큰 타격은 그의 인생행로가 뒤틀린 것이다.

패션 전문가를 지망해 2019년 미국에 온 테레사는 뉴욕주립 대 산하의 패션 전문대학인 피트((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석사과정을 밟던 중 봉변을 당한 것이다.

그는 “부모님이 미국에서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증오 범죄가 많이 일어난다며 걱정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났다”며 대만으로 돌아가서 안정이나 취하겠다고 했다.

최근 들어 미국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흑인들의 폭력행위가 빈발한 것은 이제 하나하나 들추기도 지겨울 정도다.

흑인들은 마치 아시아인들을 총으로 사살하지 않는 대신 죽일 듯이 행패를 부리는 역할을 떠맡은 듯한 모양새다.

지난 4월에는 대낮에 뉴욕 72번가와 렉싱턴가 사이에서 거구의 흑인 남성이 지나가던 아시아인 남성을 넘어뜨리고 피해자가 도망가자 쫓아가던 것을 주변 사람들이 말리자 “한 놈 걸리면 죽여버리겠다”고 소리치기도 했다.

그 밖에도 흑인이 아시아인의 편의점에 들어가 물건을 훔치다 들키자 여성 점원을 때리면서 “중국 X이라고 욕을 했다거나 지하철에서 거구의 흑인이 보통 몸집의 아시아인을 실신하도록 구타했다던가 하는 등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흑인들의 그런 모습은 백인들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우선 흑인들이 오늘날의 아시아인 공격에 가세하는 것이 놀랍다.

지금까지 미국에서 인종갈등이라면 백인과 유색인종인 흑인의 갈등이었는데 이제 그 유색인종이 백인종과 합세해 다른 유색인종의 공격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바로 1년 전인 지난해 5월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에게 목이 눌려 사망했을 때 많은 아시아인이 동정과 분노를 보냈던 기억이 생생하기에 더욱 어이없다.

마치 ”숨 쉴 수 없다“고 더듬거리다 죽은 플로이드가 갑자기 엉뚱하고 무서운 가해자로 환생한 듯한 모습이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흑인 차별이라는 인류사의 비극과는 또 다른 차원의 보다 심원한 비극이다. 그 피해자는 아시아인들이지만 인류 전반의 사악한 본성을 확인한 셈이다.

그것은 박해받은 자들의 내면에도 도사리고 있는 인류의 보편적인 악한 심성을 보여준 것이어서다.

우리의 심리에는 해리엇 비처 스토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처럼 흑인 노예들에게 동정적인 문학의 영향으로 차별의 희생자들은 착하다는 편견 같은 것이 깔려 있는 셈이다.

소설 같은 데서 흑인들은 대체로 참담한 노예 생활을 견디어 내고 가족이 찢겨 팔려나가도 눈물로 헤어지는 순하디 순한 사람들이었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이따금 암흑가 흑인들의 끔찍한 범죄 사건이 일어나도 흑인들이 가난하고 못 배운 탓으로 보고 오히려 백인사회에 그 허물을 돌리는 심리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과거의 역사를 조금만 더듬어 보면 그것과는 전혀 딴판의 흑인들이 비친다.

미국에서 해방시킨 노예들을 도와서 아프리카에 건국한 라이베리아의 역사가 좋은 예다.

나라 이름부터 ‘해방’을 뜻하는 ‘라이베리아(Liberia)’로 정한 이 나라는 정확히 200년 전인 1821년 미국에서 뜻이 있는 인사들의 모임인 미국 식민협회 주도로 건국돼 1847년에는 독립도 달성했다.

식민협회가 서아프리카의 땅을 사들여 해방 노예들을 이주시킨 그곳에는 토착민들도 살고 있어 그들은 공존하게 됐다.

그것은 얼핏 이상적인 나라의 모양새였다. 오랫동안 잠자듯 살아온 토착민과 해방의 감격에다 선진문화를 갖춘 아메리코 라이베리아인들이 서로 협력하면 얼마나 활력이 넘치는 나라가 될까...

하지만 그것은 턱없는 기대였다.

아메리코들은 처음부터 토착민들을 영어도 모르는 노예, 다시 말해 미국 흑인 노예들보다 몇 단계 떨어진 노예로 취급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아메리코들은 토착민들 가운데 어리숙한 사람들을 속여 아직도 노예제가 실시되고 있던 미국이나 남미에 노예로 팔아먹기도 했다.

그들의 콧대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의 흑인들을 무시하는 것은 물론 유럽의 식민 관료들도 한 수 접고 보려 들기도 했다.

그래서 라이베리아는 해방 노예의 새 안식처가 아니라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폭력 국가가 되고 말았다. 물론 지난 200년간 아프리카에서 조용한 곳은 없었으나 라이베리아는 그 가운데서도 극심한 편이었다.

여기에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는 없는 아메리코들의 턱없는 오만이라는 요소가 개입돼 다른 지역의 갈등이 2차 함수라면 그곳은 3차나 4차 함수로 복잡하게 꼬이게 됐고 그래서 국민들은 모두 미국 흑인 노예들처럼 참담하던 시대를 겪었다.

그 참상은 국경없는의사회의 보고서에서 잘 드러났다.

<총을 든 소년들은 마약에 취해 풀린 눈으로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거리를 쏘다니다 보이는 것마다 약탈하고 소녀들을 강간하여 임신시켰다>

<수만 명이 한꺼번에 음식과 숨을 곳을 찾아 몰려다니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하지만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총알과 폭탄 아니면 강간과 콜레라뿐이다>

그래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흑인 노예 상인들의 원조도 흑인들이었다. 아직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되기 전에도 이슬람 세계는 노예를 필요로 했고 아프리카는 좋은 공급처였다.

아직 식인의 풍습이 남아 있던 아프리카에는 300개의 언어가 난립했고 그러다 보니 강한 종족이 허약한 종족을 사냥해서 먹거나 팔거나 하는 것은 다반사였다.

물론 그 노하우는 훗날 미국 흑인 노예들의 공급에 전수됐다.

최근 일부 미국 흑인들이 아시아인들을 대하는 모습은 라이베리아 건국 초기 아메리코들이 토착 흑인들을 보았던 시선을 떠올리게 한다. 황인종들은 백인들처럼 무섭지 않은 데다 그들이 무서워하던 백인들이 미워하니 얼마나 만만한 상대인가.

우리는 그들이 아시아인들을 공격한다고 미워하기 전에 그들이 그 오랜 세월을 억제해야만 했던 인간에 대한 증오의 공격심리를 떠올려 볼 수도 있다. 나아가 그 험한 증오의 심리가 우리의 내면에는 없는지 성찰하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양 평. 

한국일보 문화부 차장 

서울경제 문화부장 겸 부국장

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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