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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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타임스=박내석 소방기술사]한국소방마이스터고등학교에 강의 차 매주 강원도 영월을 찾는다.제천을 거쳐 가는 길에는 아주 오래된 기억을 소환하는 이정표 하나를 만나게 된다.그것은 바로 삼한시대에 만들어진 인공저수지, “의림지”를 안내하는 것으로 “천수답”이라는 단어까지 기억은 연결된다.

천수답은 댐, 저수지 또는 지하수, 펌프 등의 관개 시설이 없어, 오로지 빗물에만 의존하여 농사를 짓는 논을 말한다. 현대에 접어들며 대형 인공저수지인 댐들이 건설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자주 비교 인용되던 시절과는 달리 요즘에는 좀처럼 듣기 힘들어진 단어 중 하나다. 

천수답과 인공저수지는 물을 통한 자연의 지배와 이에 대한 인간 저항의 상징이기도 하다.신석기 농경 사회 이래 인간은 자연을 극복하기 위해 그 힘을 꾸준히 키워왔지만 어디까지나 사람의 생각이지 자연의 힘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한 모습으로 도도하게 우리를 지배한다. 마치 나름대로 한참 덩치를 키운 컨테이너 상선과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은 체 묵묵히 그 상선을 흘려보내는 망망대해와도 같은 관계이다.

실생활에서 아주 쉽게 접하는 흔하디흔한 물질 중 하나가 바로 물이다. 그래서 가끔은 돈을 주고 산다는 게 어색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물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 물이 가지고 있는 특별함으로 자연은 생명을 지배한다.

수소결합은 물 분자들이 모이는 방식인데 그 특별함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수소 2개와 산소 하나가 모여 물 분자 하나를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각각의 물 분자들 사이에는 서로 잡아끄는 인력이 작용하여 분자들이 뭉치게 되는데 그것을 “수소결합”이라고 한다. 분자들 사이에는 물질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인력이 존재하는데 그중에서 가장 강한 것이 수소결합이다.

여타 물질의 분자들은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대충 손을 잡는 둥 마는 둥 하는 반면 물 분자들은 서로 팔짱을 끼고서 어지간한 외부의 교란에는 무너지지 않을 공고한 대오를 이룬다. 이것이 수소 결합한 물 분자의 모습이다.

수소결합은 여러 현상으로 나타나는데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물의 표면장력이다. 여름날의 이른 아침 들녘의 풀잎에 맺힌 청초한 이슬방울들은 표면장력 때문이다. 즉 물 분자들이 단단히 뭉쳐있는 모습인 것이다.

수소결합으로 인한 또 다른 중요한 현상은 물의 높은 비열이다. 물질들이 갖는 열에 대한 속성 중 대표적인 것이 비열이다. 1g의 어떤 물질 온도를 1도 올릴 때 필요한 양의 열을 의미한다. 비열이 크다는 말에는 열로인한 온도 변화가 크지 않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온도는 분자들의 들뜬 정도로 이해해도 되겠다.

수소결합한 물은 어지간한 열에는 결합이 흔들리지 않는다. 비열이 아주 크다는 의미다. 즉 어지간한 열량으로는 1도를 올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물의 비열은 1 칼로리다. 원래 칼로리의 정의가 1g의 물의 온도를 1도 올릴 때 필요한 열량이기 때문이다.

다른 물질들은 1 칼로리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이렇게 높은 비열은 불을 쉽게 끄는데 일등 공신이다. 열은 높은 온도에서 낮은 온도로 흐른다. 물은 온도가 쉽게 오르지 않는다. 따라서 뜨거운 불에서 아직 차가운 물 쪽으로 열은 부지런히 이동한다. 

태양으로부터 따뜻한 볕을 받은 대지는 쉽게 달궈지는 반면 바닷물은 여간해서 온도가 오르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따뜻한 대지의 공기는 위로 상승하고 헐거워진 자리로는 차가운 바다의 공기가 밀고 들어온다. 그래서 낮에는 육지 쪽으로 해풍이 분다. 반면 밤이 되면 육지의 땅은 쉽게도 식는다. 즉 열을 조금만 빼앗겨도 온도는 성큼 내려가는 것이다.

반면에 바닷물은 어지간하게도 식지 않는다. 이제는 낮과는 반대로 밤이 되면 상대적으로 따뜻한 바다 쪽으로 육풍이 불게 된다. 결국 수소결합이라는 물의 화학적 성질이 바람의 흐름을 결정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물은 얼게 되면 부피가 커진다. 그 역시 수소결합 때문이다. 수많은 분자들이 팔짱을 낀 채 그대로 굳어버리기 때문이다. 대부분 물질은 온도가 내려갈 때 분자의 움직임이 줄어들고 분자 간의 공간이 좁혀져서 동결 시에 부피가 축소되는 것과는 다르다.

이처럼 물은 수소결합이라는 가장 강한 결합을 갖는 매우 특별한 물질이다.그럼에도 물을 물질 중의 물질로 만드는 것은 그 무독성과 풍부함이 아닐까 싶다.세상 어디에 물처럼 먹어도 먹어도 탈이 없고 사용하고 사용해도 줄지 않는 물질이 또 있을까? 그래서 물은 흔하기에 더욱 특별하다. 흔하고도 가까이 있기에 그 고마움을 잊어버리는 가족처럼,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 우리의 지구처럼 말이다.

 

박내석 기술사=오피니언타임스
박내석 소방 기술사=오피니언타임스

 

[저자약력]
서울대 동양사학과 졸업 
소방기술사
한국기술사회 통일준비위원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 기술평가위원
한국교통안전공단 기술평가위원
㈜하나기술단 전무(현)
현대유엔아이(주)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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