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여성가족부가 자녀에게 엄마성을 따를수 있게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고 발표한 내용을 채널A에서 보도하고 있다=채널A 유튜브 영상캡쳐
지난해 1월 여성가족부가 자녀에게 엄마성을 따를수 있게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고 발표한 내용을 채널A에서 보도하고 있다=채널A 유튜브 영상캡쳐

[오피니언타임스=김봉성 청년칼럼니스트]나는 김해 김 씨다. 가장 흔해빠진 성 씨다. 족보상으로는 김수로 왕 72대 손이라고 하지만 믿지 않는다. 부계 친인척의 학식이나 직업을 미뤄보면 내 조상은 잘 쳐줘봐야 경상남도 소작농이므로 족보가 있을 리 없다. 우리 집안은 내가 최초의 4년제 대학 입학자일 정도로 비천하다.

안동 김 씨처럼 양반 성 씨를 가진 학생을 가르칠 때는 격세지감이 들었다. 100년 전만 해도 나는 학생들을 아씨, 도련님이라 부르며 굽신거려야 했을 것이다. 아니, 내가 선생질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아씨와 도련님뿐만 아니라 주인마님도 내게 예를 차리는 세상이다. 나는 내가 비천하다고 생각한 적 없다.

성 씨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고리타분 일이다. 반려자의 성 씨가 무리를 일으키는 시대는 갔다. 성 씨에 대한 고정관념이 남아있는지도 의문이다. 만약 있다면, 어이없는 맞춤법처럼 틀린 일이다. 특히 여자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왜 자신이 배 아파 낳은 아이에게 반려자의 성 씨를 부여해야 하는가?. 지금껏 우리사회에 내려온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제도에 대해 다시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애초에 성은 양반의 전유물이었다. 조선 초기 양반 비율은 10%를 넘지 않았다고 한다. 성 씨는 양반의 증명이자 권위였고 한 인간은 그 권위 안에서 설명되었다. 개인이 어떤 사람인지보다 어떤 집안인지가 중요했다. 자아실현이 아니라 가문의 영광을 지키는 것이 미덕인 시대였다.

알다시피 가문은 가부장문화의 산물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문의 계보학에서 여성은 소외되었다. 근력 중심의 생산 체제에서 남성 중심 문화는 공리를 위해 효율적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정보 혹은 오락 중심의 생산 체제에서 남성은 해체되어 가는 중이다. 양성평등은 이제 누구나 인정하는 사회 정의다. 호주제 폐지를 시작으로 여성 차별적 문화가 개선되어 왔다. 이제 남은 것은 금녀의 구역, 성 씨다.

부모의 성 두 개를 모두 쓰는 방안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머니의 성을 쓰지 못했던 시대에 대한 분풀이일 뿐이어서 유치했다. 세대가 거듭될수록 성이 2배수로 늘어나 여섯 세대만 지나도 성이 “김수한무거북이와두루미삼천갑자동방삭치치카포사리사리센타워리워리세브리깡무두셀라구름이허리케인에담벼락담벼락에서생원서생원에고양” 같은 개그가 된다. 또한 부계와 모계의 순서에 규칙이 정해지면 한 쪽 성은 후순위가 될 수밖에 없어 불평등의 근원을 해결을 못하고, 순서에 자율성을 부가하면 성의 순서를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 번거로움까지 발생한다.

지난 4월 부모의 성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법 개정에 나섰다는 뉴스가 있었다. 선택권을 남녀 모두에게 준 듯하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어머니의 성을 따르려면 사회 통념에 맞서는 소소한 각오가 필요하다. 자식이 아버지와 성이 다를 경우, 아직은 아버지를 새아버지로 인식하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그러므로 굳이 이름에 부연 설명이 매달기보다는 통념대로 아버지의 성을 따르기 십상이다. 물론 시간이 걸리면 결국은 바뀌겠지만, 변화 속도가 여성 인권 향상 속도에 보조를 맞출 수 있을지 의문이다.

빠르게 바뀐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성 씨는 본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다. 성 씨는 이름과 별개로 가문이라는 짙고 두꺼운 기의를 담았다. 가부장문화의 불평등에 기반했지만 부계 성만 따름으로써 개인을 가문으로 설명하는 나름의 체계와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부모의 성을 선택하는 것이 거듭되면, 양반이든, 평민이든 가문이라고 믿을 만한 것이 사라진다. 성 씨는 꼬리뼈처럼 흔적기관이 되어 가부장의 역사의 흔적만 담은 기표로만 기능하는 것이다.

대체 성 씨를 써야 하는 이유는 뭘까? 내가 모르는 높으신 분들은 아직 가문을 따를지 모르겠지만, 대중적으로 인식되는 가문은 삼성가(家), 현대가(家) 같은 ‘현재’ 재벌들이다. 같은 맥락에서 요즘은 타워펠리스재희, 자이지원, 휴먼시아진서처럼 아파트 이름이 실질적인 ‘家’의 기의가 되고 있다.

가족의 의미가 변화하고 있다. 대가족 붕괴를 넘어 핵가족조차 쪼개져 1인 가구가 늘고 있다.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의 표준은 다문화 사회를 넘어 애완동물이 식구로 편입되는 다양한 가족 형태도 담지 못한다. 성 씨는 이미 불구다. 나는 나로서만 설명되므로 이름에서 성 씨를 빼도 되는 시대다.

너무 급진적이라면 최소한 자녀의 성을 선택할 때 부모의 성이 아니라 성 씨를 쓰지 않는 선택지도 추가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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