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오피니언타임스=박내석 소방기술사]뚱딴지같은 이야기다. 어둠 속에 붉은 장미는 없다고 한다.사실이다.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색을 보지 못한다. 다만 흑백의 명암만을 구분할 뿐이다.따지고 보면 특별할 것도 없는 이야기다.

태양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전자기파를 빛이라고 한다. 전자기파들은 각각의 파장에 따라 우리 눈에 보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눈에 보이는 빛을 가시광선이라고 한다. 그리고 가시광선들은 파장의 길이에 따라 제각각의 색깔을 갖는다.빨주노초파남보 일곱 색깔 무지개는 공기 중 잔뜩 머금은 수증기에 빛들이 반사되어 나타나는 아름다운 장면이다. 물체들이 뽐내며 보이는 색깔이라는 것은 빛의 작용이다. 빨간 장미는 태양으로 받은 수많은 파장의 빛 중에서 빨간색의 파장만을 반사할 뿐이다.

어떤 물체가 특정 색깔을 띠었다는 것은 그 색깔의 파장만을 반사하기 때문이다.따라서 빛이 사라지며 어둠이 깔려오면 형형색색의 물체들은 색깔을 잃기 시작하는 것이다.물론 밤새 빛이 사라지지 않는 대도시에서 색깔 잃은 장미꽃을 보는 일은 흔치 않다.더욱이 인간의 뇌는 경솔하기 짝이 없다. 형체만 보고서도 낮에 보았던 색깔이 있겠거니 지레 짐작하여 버린다.그래서 마치 우리는 어둠 속에서 붉은 장미를 보았다고 착각하기 쉽다.

우리 망막세포에는 추상체와 간상체라는 것이 있다.추상체는 색깔을, 간상체는 흑백으로 밝음과 어두움 즉 명암을 인식한다고 한다. 그런데 추상체는 빛의 반사가 약해지면 현저하게 기능이 떨어져 밝은 곳에서만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반면에 간상체는 이와 달리 희미한 빛의 반사도 식별할 수 있다. 덕분에 어두운 곳에서 우리는 비록 흑백이지만 어느 정도의 물체 식별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추상체는 긴 파장의 빛을 더 선명하게 인식한다. 빨주노초파남보 가시광선의 파장 길이는 빨간색에서 보라색으로 갈수록 짧아진다. 밝은 곳에서 붉은 계통이 눈에 잘 띄는 것은 이러한 과학적인 근거에 기반하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간상체는 긴 파장보다는 에너지가 더 강한 짧은 파장의 명암을 더욱 선명하게 인식한다. 그래서 붉은색보다는 파란색 계열의 물체가 어둠 속에서는 더 잘 보인다. 

이러한 과학적 현상을 이용한 것이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피난 유도등이다. 유도등의 색깔은 백색 바탕에 녹색의 상징으로 되어있다. 화재 시에는 연기로 인해 빛이 약해진다. 따라서 어차피 제 역할을 하지 못할 추상체보다는 그나마 어느 정도 역할을 할 수 있는 간상체를 배려한 것이다.이런 것을 보면 세상에 어떤 것 하나도 대충 만들어지는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절대적인 선은 없다고 비웃기라도 하듯 반전이 있다. 미국에서의 유도등은 붉은색이다. 과학적 지식이 없어 그리 만들지는 않았을 터인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추상체가 아예 기능조차 하지 못할 시점은 이미 피난할 수 있는 시기가 지났다고 보기 때문이다.피난할 수 있을 때 제대로 신속하게 하자는 것이다. 듣고 보면 일면 설득력이 있는 말이다.동서양 사람들이 판단하는 방식의 차이일 수도 있겠다.그런데 한편으로는 어떤 사실로 쉽게 감동하고 결론짓는다는 것이 얼마나 경솔한지를 새삼 생각하게 한다. 

나아가 객관적 진실이라는 것이라도 그것이 인용될 때는 결국은 어느 한 방향으로 하고픈 말들을 합리화해주는 도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학문적으로 충분히 검증된 과학이론이라도 말이다. 

그런 점에서 언론이 전하는 뉴스를 읽거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그 안의 사실보다는 왜 그 이야기를 선택했는지 먼저 주목하는 것은 판단의 경솔함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는 독자와 청자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사진=박내석 소방기술사
사진=박내석 소방기술사

 

[저자약력]
서울대 동양사학과 졸업 
소방기술사
한국기술사회 통일준비위원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 기술평가위원
한국교통안전공단 기술평가위원
㈜하나기술단 전무(현)
현대유엔아이(주) 상무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