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신임 대표.ⓒ출처=더팩트
이준석 국민의힘 신임 대표.ⓒ출처=더팩트

[오피니언타임스=칼럼니스트 양 평] 30대의 이준석이 마침내 제1야당 대표가 됐다. 그 파장은 이준석 자신도 정확히 윤곽을 그려낼 수 없을 것이다. 다만 그가 선거운동 과정에서 내세운 ‘정치인 자격시험’은 뚜렷한 실체로 다가온다.

필자의 경우 그 말을 처음 접했을 때 당장 떠오르는 것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는 사자성어였다. 한국에서 정치인들의 자질이 나름대로 개선된 뒤에, 다시 말해 그런 자격시험이 필요 없어 보이는 시점에 그런 말이 튀어나온 듯해서다. 그것은 그런 말이 전혀 없었던 지난날 정치인들의 자질이 너무 미약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국민을 지도해야 함에도 국민의 평균 수준에도 미달해 보이는 정치인들이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거수기 정치’로 악명 높았던 자유당 집권 시기에는 무식한 정치인들의 화제도 무성했다.

한 의원은 의회 연설에서 “연민(憐憫)의 정을 금할 수 없다”는 말을 그만 “인민의 정을 금할 수 없다”고 해서 그야말로 ‘인민(人民)’의 정을 듬뿍 받았다. 다만 그 정이란 ‘동정’보다는 무식한 거수기(擧手機) 의원에 대한 분노의 격정이었다.

따라서 다른 어떤 의원이 “…여론(與論)이 분분하다”를 “흥론(興論)이 분분하다”고 했을 때도 비웃음과 함께 분노의 감정이 뒤섞였다. 신문이 한문투성이이던 시절의 그런 해프닝은 보좌관이 써준 연설문도 제대로 읽지 못해서다.

그 의원의 보좌관에게도 잘못은 있었다. 그는 의원의  대본 작가로 자족할 것이 아니라 무대감독으로써 의원에게 연설 리허설을 해야 했던 것이다.

그런 해프닝들을 뒤로 한 채 한국 정치인들의 수준은 국민의 학력 상승과 함께 꾸준히 상승했다. 그래서 이제는 한국의 정치인들이 외국 정치인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 시점에 하버드 출신 정치인이 꺼낸 ‘정치인 자격시험’이란 화두는 심상치 않다.

그는 대변인 채용과 관련 경쟁을 언급했으나 거기에 머물지 않고 그 위로 끝없이 대상을 넓힐 것 같은 예감이다. 그 대상에서는 대통령도 예외가 아닐 것 같다. 아니, ‘대통령 자격시험’이야 말로 이준석이 그런 말을 꺼낸 궁극적 목표처럼 비친다.

다시 말해 이준석의 정치적 최종목표는 당대표 당선이 아니라 청와대 입성이고 청와대까지의 달리기 시합에 학과시험 경쟁 같은 요소가 반영되기를 바라는 것으로 비친다.

하버드 영어를 갖춘 그로서는 세계화 시대에 통역 없이 외국 원수들과 어울릴 수 있는 대통령의 능력을 검증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지도자들의 지식수준과 통치능력의 관계를 더듬어 보면 너무 복잡하다. 역사상 지도자들의 지적 수준은 물론 그들의 업적도 대부분 안개 속이어서다.

집권자들 가운데는 오토 폰 비스마르크처럼 지식이 뛰어나 복잡한 유럽의 정세를 바둑판처럼 꿰뚫어 보고 거기서 독일 통일을 위한 맥을 찾아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자신의 안목인지 주위 사람들의 안목인지 불명확한 경우가 많다.

무식한 유방이 장자방의 도움으로 통일의 대업을 이루는 식도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김영삼도 곧잘 “머리를 빌린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했다. 통치자는 자신의 머리에 못지않게 아랫사람들이 일을 잘하도록 보살피는 능력도 중요하다는 식이다.

천하의 미국 대통령 가운데도 그 비슷한 사례가 있다. 미국의 34대 대통령이었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잘 알려지다시피 직업군인으로 평생을 보낸 뒤 정계에 들어갔다.

그런 아이젠하워에게 복잡한 예산안 토의가 머리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래서 백악관에서 각료들과 그런 문제를 논의할 때는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그런 대통령이지만 인기는 좋아서 35대 대통령에 재선되기도 했다. 아이젠하워의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는 워낙 유명해 ‘아이젠하워 미소’란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물론 그런 특혜를 아무나 누릴 수는 없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이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여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거기서 2차 대전 승리라는 감격을 느끼며 환호했던 것이다. 그런 바탕도 없이 각의에서 졸기나 하는 대통령이 미소를 자주 보이면 주위 사람들은 정신이상을 걱정했을 것이다.

원수급 정치가들은 아랫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나 때로는 밑천을 드러내 자신은 물론 나라까지 망신을 시키기도 한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수상이 2005년 한 잡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포츠담 선언을 모르고 있음을 드러낸 게 그런 것이다. 그는 미국이 원폭을 투하해 일본에 참상을 안긴 뒤 연합국이 일본에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포츠담 선언을 발표했다고 말했다. 그것은 포츠담 선언과 원폭투하의 선후를 거꾸로 본 것이었다.

포츠담 선언은 독일이 패망한 뒤인 1945년 7월26일 미 영 중 세 나라 수뇌가 일본에 무조건 항복을 요구한 것이고 일본이 응하지 않자 8월6일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됐던 것이다.

물론 수상이라고 역사를 달달 외울 수는 없다. 하지만 포츠담 선언과 원폭투하는 일본 역사에서 너무 중요한 사건들로써 수상이 아니라도 일본에서 지식인 행세를 하려면 외면할 수 없는 상식이다.

그래서 새삼 다시 보면 일본 역사상 최장기 집권(3265일)을 한 아베는 집안도 일본 최고의 명문 집안이지만 그 자신은 예외적인 데가 있다. 

그는 도쿄 대 일색인 집안 분위기와는 달리 소학교에 입학하면 계열학교까지 자동으로 입학하는 사립학교인 세이케이(成蹊) 소학교, 세이케이 중학교, 세이케이 고교를 거쳐 세이케이 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물론 그런 학벌이 그런 착오와 일치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 수상이 포츠담 선언을 제대로 몰랐다는 것은 그의 지적인 한계를 보여준 셈이다.

그러나 막상 “정치지도자는 지식이 뛰어나 겉보기에도 영민함이 광채를 띄어야 할까?” 하는 의문에 부딪히면 선뜻 답이 나오지 않는다.

사업가로 출발해 대통령이 돼서도 사업가 같은 분위기를 풍겼던 도널드 트럼프를 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영민한 지도자의 인상보다는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 같은 풍모의 앙겔라 메르켈 같은 지도자를 보면 그렇지 않은 것도 같다.

사진= 양평 칼럼니스트
사진= 양평 칼럼니스트

양평 저자소개

한국일보 문화부 차장 

서울경제 문화부장 겸 부국장

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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