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분열까지 초래한 도쿄 올림픽을 본 이런 저런 생각들

도쿄올림픽 개막식= mbc 유튜브 영상캡쳐
도쿄올림픽 개막식= mbc 유튜브 영상캡쳐

[오피니언타임스= 이계홍 작가·칼럼니스트]도쿄올림픽은 당혹감과 우려 가운데서 점차 경기의 열기로 빠져들어가는 양상이다. 그중 우리 선수들이 선전하고 있는 것이 자랑스럽다. 양궁, 수영, 배구, 체조, 육상 등에서 의외로 좋은 성적을 내며 대회 중반으로 달려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를 당혹케 한 것은 대회 연호다. 2021년 7월 23일 제32회 도쿄올림픽 개막식이 펼쳐졌는데, 명칭은 ‘2020 도쿄 올림픽’이다. 신종 코로나 19로 인해 1년 연기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대회가 열린 것은 분명 2021년 7월 23일부터 약 보름간이다.

그렇다면 사실대로 ‘2021 도쿄올림픽’으로 명명해야 하지 않을까. 코로나 19 때문에 연기된 것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모든 기록은 2021년 7월 23일을 기점으로 매겨진다. 기록이 2020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기록이라는 것은 1년 전과 1년 후가 다르다. 100년 후, 혹은 200년 후 2020 올림픽을 돌아볼때, 2021 기록을 2020 기록으로 인지하게 되면, 착오 투성이가 되지 않을까. 매 기록마다 ‘2021년에 치른 경기’라고 사족을 달지 않는 한 사람들은 2020 기록으로 인식할 것이다. 

그러나 매 기록을 2021년에 치른 경기라고 붙이지 못하는 수도 있다. 그래서 2021년에 치른 경기를 2020년의 기록으로 판단할 개연성도 있다. 기록의 불명확성과 불투명성을 드러내는 우를 범하게 되는 셈이다.   

올림픽 기록이란 시간과 장소와 날짜에 따라 차이가 난다. 하물며 1년후의 기록의 차이는 클 것이다. 결국 스포츠 과학이 중시하는 통계를 스스로 파괴하는 셈이다. 따라서 있는 사실 그대로 ‘2021 도쿄 올림픽’으로 명명해야 했다. 정 어렵다면 괄호 안에 ‘2020’을 넣어주어야 사실에 충실하다. 즉, ‘2021(2020)도쿄 올림픽’, 반대로 ‘2020(2021) 도쿄 올림픽‘이라고 명명하는 것이 바른 명칭이라고 본다.

‘2020 도쿄 올림픽’을 고집한 것은 도쿄도(都)의 방침 때문이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지난해 "2021년에 도쿄 올림픽이 열려도 공식 명칭은 그대로 2020 도쿄 올림픽으로 간다"고 선언했다. 그 이유에 대해 설득력있게 설명하지 않았지만 영국 매체 가디언은 "2021 도쿄 올림픽이 아니라 2020 도쿄 올림픽을 유지하는 이유는 비용 절감 차원"이라고 보도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약 5000개의 올림픽 메달을 비롯해 자켓, 바지, 샤쓰, 운동화, 모자, 벨트를 비롯한 각종 장신구와 기념품 등 많은 제품들이 2020 도쿄 올림픽 문구와 엠블럼이 박혀서 제작됐다. 만일 대회 명칭이 바뀌어 새 제품을 만들게 될 경우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고, 그에따라 환경 파괴 문제도 있다. 이래저래 손해가 막심한데, 손실을 조금이나마 줄이고자 ‘2020 올림픽’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메달만이 아니라 해외에 보낸 모든 홍보물, 팸플릿 등도 새로 제작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했듯, 연호의 불확실성이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지불할 것으로 보인다. 명칭을 바꾸는 것보다 2020을 고수하는 것이 차후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도대체 기록이 1년 전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오늘의 기록이 1년전의 기록으로 둔갑된다는 것, 이 혼란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막는 유일한 길은 일일이 기록을 쫓아가 그것은 ‘2020’ 때의 일이 아니라 ‘2021’ 기록이라고 설명하고 주석을 달아주어야 하는데, 그 수고와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100년 후, 혹은 200년 후 사람들을 과연 이해시킬 수 있을까.

연호의 불확실성과 별도로 도쿄 올림픽이 역대 올림픽 중 가장 탈도 많고 말도 많은 것 같다. 각국 선수단이 선수촌에 입촌했으나 침대가 골판지 박스로 만들어졌다느니, 룸의 천장이 형편없이 낮아 선수들이 고개를 젖히고 지내야 한다느니, 화장실, 냉장고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불편하다느니, 지진으로 파괴된 원자력 발전소의 유해물질이 우려되는 후쿠시마산 식자재 반입, 악취 나는 수영경기장 등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다.  

여기에 역대 올림픽 중 가장 무더운 올림픽을 치르고 있다. 컨테이너를 연결해 만든 사이타마현 아사카 사격장은 실내 온도가 36도였다고 한다. 냉방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찜통 속에서 경기를 치렀으니 더위에 약한 선수들이 손해를 보았을 것은 당연한 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른 경기장도 마찬가지였다고 전해진다. 

실패를 예견했는지 최소 비용으로 대회를 치르겠다는 계산으로 투자를 하지 않은 결과다. 그 때문에 동네 체육관의 면모를 갖추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예의 바르고 준비성 있는 일본이 이로 인해 불성실하고 준비성 없는 나라의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었다. 

국민 분열도 심한 것 같다. 무관중·무재미·무감동이라는 3무 대회를 치르느니 주최를 반납하자는 국민 의견이 대다수였다. 이런 항의로 투자도, 준비도 게을리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1년이나 연기된 상황이었으니 준비할 시간도 충분했겠지만, 일본 여론 60% 이상이 반납을 주장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에서 대회를 치르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인지 TV 화면상으로 본 도쿄 시내의 올림픽 선전탑·선전물도 찾아보기 힘들다. 일본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영상도 보기 어렵다. 올림픽 개최국 거리 곳곳에는 몇 개월 전부터 홍보 영상, 선전탑과 플래카드, 홍보물이 거리에 넘쳐나는데 도쿄 시내는 올림픽을 하는지 안 하는지 모를 정도로 조용하고, 시민들의 관심도 없다고 한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무관중 대회라는 점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19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라지만 전 종목에 걸쳐 무관중 대회로 치른 것은 참으로 아픈 대목이다. 도쿄 올림픽조직위는 당초 약 6만5천 장씩의 개막식·폐막식 입장권일 비롯해 각 경기장마다 연 수 만장의 입장권을 판매하기로 했다. 

100m 육상경기, 축구 준결승, 결승전, 마라톤, 체조경기 등은 올림픽에서 언제나 수만 관중을 불러모았다. 그런데 극히 제한된 인원만 받고 있다. 이래서 흥행은 한마디로 죽을 쒀버렸다. 도쿄 올림픽조직위는 이미 해외 관광객을 대상으로 65만장의 입장권을 판매했다. 그러나 무관중 결정으로 모두 환불했다. 대회를 계기로 세계의 관광객을 끌어모아 올림픽 특수를 누릴 요량이었는데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도쿄 올림픽이 2012년 터진 후쿠시마 대지진보다 더 큰 타격을 주었다고 말한다. 일본군이 2차대전 패배를 자초한 인도·버마 국경의 임팔작전에서 연합군에 대패한 상황과도 비교한다.

1944년 3월 인도 북부와 버마 국경선에 있던 임팔 전쟁에서 일본군은 연합군의 공격보다 악천후에 대패해 동남아·태평양제도 전쟁에 밀리는 단초를 제공했다.

일본과 사이가 좋지 못한 우리 처지에서도 죽 쑤는 도쿄올림픽을 보고 걱정과 함께 위로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30년 경제 후진의 불명예를 씻고 재기해보겠다는 의욕으로 출발한 도쿄 올림픽이 도리어 일본 경제의 침체를 가속화시키는 치욕의 올림픽으로 갈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진단이고 보면, 이웃 나라의 국민으로서 가슴 아프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필자 주변에서는 썩 그렇게 우호적이거나 동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일본이 그동안 우리에게 보여준 경제적 갑질의 오만과, 식민지 범죄에 대한 사과나 종군 위안부, 강제 징용자에 대한 진정어린 사죄와 보상이 없기 때문에 괘씸하던 차 오히려 잘되었다는 식으로 냉소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우리는 ‘일본의 침몰’을 책으로, 또는 만화로 본 적이 있다. 지진 등의 자연의 재앙으로 일본 열도가 침몰한다고 하지만, 그에 앞서 국수주의적 정체성이 몰락의 위기에 몰렸다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사람들은 2차대전 두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의 예를 많이 든다. 독일은 분단 체제하에서도 동서독 화해와 협력의 정신을 확대했고, 대내적으로는 민주 제도를 다지고, 대외적으로는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과 평화와 배려를 통해 주변국과의 선린 우호를 증대해왔다. 그래서 이제는 경계와 배척이 아니라 함께 할 수 있다 하여 미영불소 강대국들이 독일 통일을 양해했다.

독일이란 나라는 부강해지면 반드시 주변국의 희생을 강요하는 ‘나쁜 침략국가’라는 낙인이 찍혀왔다. 그래서 강제 분단 이후 한반도 통일보다 독일 통일이 더 어렵다고 모든 학자들이 분석했다. 그런데 이를 배반이라도 하듯 한반도보다 먼저 통일한 뒤, 지금 유럽의 지도국이 되고, 어느새 세계 문명국의 리더가 되었다.  

반면에 일본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있다. 천황제를 신주단지 모시듯 하며 일제강점기와 2차 대전의 패악을 감추고 지우는 데 열중이다. 전후 경제부흥으로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며, 이웃 나라를 깔보고 경멸해왔다. 이러니 주변국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었겠는가.  

잘 나갈 때 조심하라는 말은 동서고금의 명언이다. 잘 나갈수록 배려하고 양보하는 덕목이 결국은 그 자신을 높이는 길이다. 일본에게 권하고 싶은 레토릭이다.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올림픽 정신을 다시 새길 때가 되었다. 올림픽 정신의 사전적 의미는 “스포츠에 의한 인간의 완성과 경기를 통한 국제평화의 증진”이다. 승리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으며, 참가를 통하여 우정과 배려와 우호와 선린을 나누는 데 있다.  

과연 일본이 이 정신에 충실해 왔는가. 이웃 나라에서부터 존경을 받을만큼 올림픽을 주최할 자격이 있었는가. 초라해져버린 도쿄 올림픽이 주는 교훈은 새로운 각성과 함께 진정한 올림픽 정신이 무엇인가를 주최국 일본 자신에게 묻고 있다. 

 

이계홍

현 세종포스트 주필

동아일보 문화부 차장, 여론독자부 차장

서울신문 수석편집부국장 통일문제연구소장

용인대 겸임교수, 동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객원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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