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청년 이미지=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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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타임스=김봉성 청년칼럼니스트] 교장 선생님. ‘꼰대’를 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직업군이다. 월요일 아침마다 운동장에 모여 훈화를 듣는 일은 고역이었다. 운동장으로 오가는 일이 귀찮았고, 선 채로 가만히 있어야 해서 지루했다. 그 시절, 누가 그 말을 귀담아 들었을까? 우리는 교장 선생님의 위세를 인증하는 풍경화 속 병풍이었다. 누구도 원하지 않는 말을 일방적으로 쏟아낼 수 있는 권력, 꼰대였다.

90년대생이 진격해 오고 MZ세대가 주목 받으며 꼰대는 힘을 잃어가는 듯했다. M세대에 간신히 한 다리 걸치고 있는 나조차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과정에 나의 학창 시절을 이야기할 때면 내용과 상관없이 ‘라떼’가 생각나 뜨끔했다. 이 경험이 반복되다 보니 모든 ‘라떼’를 자체 검열할 지경이었다. 꼰대를 부적처럼 부쳐대는 통에 상급자가 되었을 때 입에 자물쇠를 물리는 분위기 속에서도 강강한 꼰대가 있었으니, 그들이야말로 꼰대의 ‘찐’이었다.

최근 모 유튜버가 금융권 사원 경험을 하는 예능 계열의 영상을 업로드 했다. 그는 회의 중에 상급자의 견해에 반대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상급자는 해결 방안도 제시할 거냐고 물었다. 그가 나름의 대답을 하자, 상급자는 퇴근하기 전에 결과물을 만들어 오라고 했다. 유튜브에 올릴 영상을 촬영하는 자리에서 벌어진 자충수를 그들만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그것이 실제 회사 분위기라면 말할 것도 없고, 연기라고 하더라도 유튜브 시청자 연령대를 감안하면 꼰대문화에 문제의식이 없는 것이다. 현재 95만 남짓한 조회수의 영상에 이를 비판하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젊은 인재들이 왜 이런 곳에서 일하지 않으려고 하는지 잘 보여준다고 했다. 카카오뱅크가 금융권 대장주로 등극한 것이 우연이 아닌 셈이었다.

올림픽 선수단 입국 기념 촬영 현장에서 1열에 선 것은 누군지도 모를 어르신들이었다. 아마도 무슨무슨 직책을 나눠 가지신 분들이었을 것이다.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뿐, 조직을 이끄는 책임자들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훈화 말씀 같은 네 개의 소감은 지나쳤다. 체면을 차릴 형식이 필요하다면, 어차피 그들의 개별성은 구분되지 않으므로 한 명만 대표로 간략하게 발표해도 상관없었다. 대중은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의 소감에는 관심 없었다. 대중의 관심은 올림픽 영웅이었을 텐데, 김연경은 배구 포상금을 누가 주는지 밝히는 도구로 활용되었을 뿐이다.

체육 관련 각종 ‘협회’의 실체가 어떤지는 몰라도 대중에게 유통되는 이미지는 교장 선생님들로 똘똘 뭉친 집단이다. 양복 곱게 차려 입은 늙은 남성들이 학연, 지연, 혈연의 갑옷을 두르고 에헴, 위신을 내세운다. 대중은 그들이 자신의 직책 보존에 힘쓸 뿐, 해당 종목의 발전을 도모한다고는 믿지 않는다. 이런 분위기라면 올림픽 선수단 입국에서 발생한 네 개의 훈화 말씀과 병풍이 된 선수들이 설명된다.

요즘은 좀 나아졌다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복싱 타이틀 매치를 알리는 포스터에 양복 입은 무슨무슨 ‘~장’들 얼굴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또한 아직까지도 영화 시작 전에 투자자들의 이름을 올리며 관객의 1-2초를 강탈한다. 조금 더 선을 넘어보자면, 운동 경기나 회의 전의 국민의례도 꼰대 문화의 연장선에서 이해된다. 국가 대항전도 아니고, 국가 조직의 회의가 아님에도 국민의례를 하는 것은 체면과 형식의 수직 문화가 투영된 것이다.

꼰대는 라떼로 집약되는 농담이 아니다. 당신들은 자신의 말을 일방적으로 할 수 있는 권력자들이다. 상대의 생각을 들을 필요가 없는 권력은 민주화, 개인화에 익숙한 세대에게는 불편하다. 촛불혁명 이후, 이 불편마저도 무시할 수도 있는 권력이 사라지는 것 같았지만, 기업, 체육, 영화 등 사회 곳곳에 ‘판’을 이끄는 권력은 잔불처럼 남아 있다.

권력에서 물러나라는 말이 아니다. 양국협회 ‘어르신’들은 선수들의 필요에 귀기울였다. 선수들이 경기에 최선을 다하고 최고의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투명하고 전폭적으로 지원하는데 그들의 힘을 썼다. 힘을 쓰되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았다. 당신들도 부디 아래쪽에 몸을 웅크린 말들을 들어주면서 부디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 주는 선진 어르신이 되어 달라는 것이다. 선진, 이건 당신네들이 좋아하는 단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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