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깃발.ⓒ출처=더팩트
삼성 깃발.ⓒ출처=더팩트

[오피니언타임스=정성록 칼럼니스트] 1968년이었다. 그 당시 현장에서 삼성의 인재 제일, 기술 중시의 경영 이념을 몸소 체험했던 사람이다. 

필자는 최근 세계시장의 재고 부족으로 혼란이 일어난 최첨단 반도체 기술자가 아니다. 53년 전 당장 먹을 식량과 석유 수입용 달러를 벌기 위해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서 수출하는 것 외엔 다른 방도가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대한민국 수출 1위가 가발이었고 수출 2위가 홀치기였다. 

홀치기는 누에고치에서 명주실을 뽑아서 짠 실크 천에 꽃무늬나 여러 가지 문양으로 점을 찍어 나무로 만든 홀치기 틀에 구멍 난 쇳때 속으로 송진을 끊어 붙인 코바늘처럼 꼬부라진 작은 바늘에 천을 걸어 실로 두 번 이상 감쳐 만든다.

염색한 후 실을 뜯어내면 점이 찍힌 모양대로 무늬가 나타난다. 실로 홀쳐진 부분은 염색이 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색으로 물들일 수 있어 아름다운 디자인이 된다. 

홀치기로 일본 여자들의 전통 옷인 기모노를 만든다. 한국 여자들은 솜씨가 좋은 데 비해 일본보다 인건비가 월등히 싸다. 그 이유로 한국에서 가공을 주로 했다. 동경 올림픽을 계기로 일본과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홀치기 사업도 날개를 달았다. 

대구에 있는 중소 직물 공장인 중원상사, 동해물산, 삼경물산, 남선물산 등 여러 회사가 홀치기 사업을 했다. 그 후 대기업들도 시보리 사업에 눈을 돌렸다. 삼성물산은 물론 코오롱상사 이원만 회장님도 홀치기 사업 관계로 이모부와 만났었다. 태광산업 등 큰 회사들도 자회사나 하청 업체를 두고 후발 주자로 뛰어들었다. 

필자의 이모부는 이병철 회장님의 삼성상회 시절부터 사업을 같이했다. 삼성물산에서 새로 시작한 시보리 사업도 협력사 차원에서 같이 하게 되었다. 경북 성주에서 홀치기 가공 사업을 일찍부터 크게 하시는 이모부를 돕던 이종사촌 언니가 수녀원으로 들어갔다. 그 언니가 하던 홀치기 배부와 임금 지급, 대구 본사 납품 등 주요 업무를 필자가 맡아서 하게 되었다. 

이런 관계로 필자는 한 달에 두세 번 성주에서 가공한 홀치기 제품을 대구 북구 침산동 소재 제일모직 공장 안에 삼성물산 시보리 사업부로 가서 납품하는 일을 했다. 

선적 기일에 맞추어 잘못된 가공품을 하자 없이 수정하여 납품하느라 난 옆을 돌아볼 시간도 없이 일했다. 그때 이병철 회장님께서 소장과 임원들을 대동하고  납품현장을 둘러보고 가셨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다음 납품 일에 맞추어 제일모직 안에 삼성물산 시보리 사업부에 갔다. 납품 일을 마치고 난 후 시보리 사업부 소장이 나를 좀 보자고 했다. 

그는 “이 회장님이 고향인 경남 의령군 사람들에게 홀치기를 가르쳐 잘 살게 하고 싶어 하신다”는 말과 함께 “거기에서 홀치기를 가르칠 사람이 필요하다”며 현재 봉급의 두 배 반을 제시했다. 

솔직히 소태 같은 이모부에게 정당한 임금을 받아보지 못한 나는 귀가 솔깃했다. 그 당시는 대구를 중심으로 홀치기 사업이 많이 발달하였다. 홀치기 가공비는 웬만한 공무원 봉급보다 낫고, 심지어 대학나무라고 할 정도로 돈이 되었다. 

의령 쪽은 홀치기가 보급되지 않아 농가 소득이 무척 낮았다. 홀치기를 보급하여 고향을 더 잘살게 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필자를 정식으로 스카우트한 것 같았다.

시보리 사업부 소장과 대리가 중앙일보사 지프를 타고 성주까지 왔다. 의령에 도착하여 오후부터 사무실로 출근을 했다. 깨끗하게 정리된 사무실엔 홀치기를 검사할 수 있는 작업대가 있었다. 깜짝 놀랐다. 일의 능률을 계산하여 만든 것을 보고 역시 사람을 중시하는 분위기 있는 회사라고 직감했다. 

다음날 아침부터 의령과 가까운 경남 가례면부터 아녀자들에게 홀치기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차로 아침에 출근하면 점심시간에 맞추어 차가 데리러 온다. 점심이 끝나면 다시 차로 현장에 데려다주고 일이 끝나는 퇴근 시간에 맞추어 다시 차가 와서 사무실로 데리고 오는 일정이다. 필자에게 전용차가 배차된 듯했다. 일종의 전문 ‘기능사’ 대우를 받고 있었다. 

이 회장님의 끝없는 애향심이 배려는 회사 안팎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이곳에서 출퇴근할 때마다 홀치기 엮는 기술과 수정하는 솜씨가 남달리 뛰어난 필자를 믿어주며 상상도 못 할 대접을 받아 행복에 젖어 일했다.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큰 회사에서 인정받는 뿌듯함을 느낀 것도 잊지 못 할 일이다. 

특히 인재 중시의 소중함을 간직하신 이병철 회장님의 고향에 대한 사랑을 눈앞에서 바라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좋은 추억이 아닐 수 없다.

삼성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사람 중시 철학을 오래전부터 가지신 故 이병철 회장님을 뵙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시보리: 홀치기를 일본말로 시보리로 부름

[필자 소개]

지방공무원으로 퇴직했고 문학연수원을 수료했다. 현재 강남 문협 회원과 천수 문학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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