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일몰 모습=오피니언타임스
서울의 일몰 모습=오피니언타임스

[오피니언타임스=신재훈 칼럼니스트]일출과 일몰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지평선 혹은 수평선을 기준으로 태양이 뜨고 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보통 해가 바다 위로 뜨고 지는 것으로 통용된다.많은 방해물이 있는 지평선 보다는 아무런 방해물 없이 온전히 뜨고 지는 해를 볼 수 있는 바다가 훨씬 더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방송이 다 끝나고 나오는 애국가의 첫 장면이 동해 바다로 떠오르는 일출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우리가 지금까지 봐왔던 익숙한 일출, 일몰 장면들은 대부분 바다를 배경으로 한 것들이다. 그 결과 일출, 일몰을 보기 위해 바다로 가는 것이 당연시 되었다.

우리는 왜 유독 연말, 연초가 되면 일출, 일몰에 집착하는 것일까?자연 현상으로서의 일출, 일몰은 연말연시나 연중이나 아무런 차이가 없다. 단지 계절에 따라 뜨고 지는 시간과 방향이 조금 다를 뿐이다.그러나 일출, 일몰이 가지는 상징과 의미에서는 많은 차이가 있다.연말과 연초에 찾는 일출과 일몰은 멋진 장관을 본다는 시각적 체험의 의미보다는 한 해를 보내
거나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의식(儀式)”의 의미가 더 강하다.

떠오르는 둥근 해 보다는 앞사람의 둥근 머리를 볼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랜 시간 힘
들게 운전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새해 첫날이면 어김없이 정동진, 호미곶 등 동해의 주요 일출 명소로 몰려간다. 그것은 아마도 떠오르는 해를 보며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을 보다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집단 의식에 동참하기 위함일 것이다. 마치 2002년 월드컵 길거리 응원처럼 말이다.

그러나 나는 언젠가부터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는 새해 첫 일출을 보러 가지 않는다.또한 아침 일찍 일어나야만 하는 일출도 별로 즐기지 않는다.대신 사람들이 별로 없는 평일에 느긋하게 일몰을 즐긴다. 

내가 일출보다 일몰을 더 좋아하는 현실적인 이유는 이렇다.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는 시간과 확률의 차이다.일출은 떠오르는 해 자체를 보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적으로 매우 짧은 찰나다. 
또한 맑은 날이 아니면 제대로 된 일출을 볼 수도 없다.일출의 꽃이라 불리는 일명 오메가(그리스 알파벳의 마지막 글자로서 생긴 모양이 수평선에 걸쳐진 해의 모양과 닮았다고 하여 완벽한 일출을 부르는 말로 통용된다)를 볼 수 있는 날은 그리 많지 않다. 3대가 덕을 쌓아야 오메가를 볼 수 있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말이다.

수도권 거주자라면 일출을 보기 위해 동해바다까지 이른 새벽에 출발하거나 숙박을 해야만 한다.그렇게 힘들게 찾아가서 맞이한 일출임에도 어느 순간 해가 훅 떠오르고 나면 그냥 날이 밝아 버리고 마는 허탈감을 느껴야만 한다. 반면 일몰(Sun set)은 일출과 달리 지는 해 자체만이 아니라 붉게 물든 하늘과 바다 전체를 보는 것이기 때문에 더 오랫동안 즐길 수 있다. 또한 날씨가 좋지 않아 해가 구름에 가리더라도 완전한 먹구름만 아니라면 별 문제 되지 않는다. 

오히려 구름이 만들어내는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인해 더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다.서양에서 일출보다 일몰이 더 선호되고, 일출 명소보다 일몰명소가 더 많은 이유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내가 일몰을 더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붉게 물든 노을이 만들어내는 낭만적인 분위기가 나를 로맨티스트로 만들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붉게 물든 선셋을 보며 무기력한 은퇴인에서 생기 넘치는 로맨티스트로 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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