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화구획 설치가 안돼 대형화재로 번졌던 쿠팡물류센터 화재모습을 kbs뉴스가 보도하고 있다.=kbs뉴스 유튜브 영상캡쳐
방화구획 설치가 안돼 대형화재로 번졌던 쿠팡물류센터 화재모습을 kbs뉴스가 보도하고 있다.=kbs뉴스 유튜브 영상캡쳐

[오피니언타임스=박내석 소방기술사]뭐 눈에는 뭐만 보인댔다. 지금 지하철 좌석에 앉아서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는 내 눈의 시야 범위로 들어오는 것들이 몇 가지 종류가 되는지 셀 수가 있을까? 하지만 그 많은 것들의 대부분은 비록 눈에는 찍히지만 의식되지 않고 무시된다. 뇌의 시각정보 처리 기능에서 선택적으로 수용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으로 찍는 한 컷의 사진 속에 담긴 수많은 대상에 나의 관심 영역과 관련된 것이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은 매우 높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자신의 관심사의 것들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약간의 이동과 눈 돌림으로 어디에서나 볼 수가 있을 터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가진 관심사는 유달리 주변 어디에도 그 대상이 존재하는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민망한 일이다. 아마도 일상 속에 만나는 상냥한 이성이 나에게만 그런 줄 아는 것과 같을지 모르겠다. 

암튼, 단연 내 눈에는 소방과 관련된 것들이 보인다. 어디에서든 눈을 드는 순간 화재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는 수많은 것들을 어김없이 볼 수 있다. 보통 사람들에게도 매우 익숙한 소화기나 옥내소화전, 피난유도등은 두말할 것 없이 그 밖의 다양한 설비들이 각자의 역할을 가지고 곳곳을 지키고 있다.소방에서 화재 안전을 위한 다양한 노력은 수동적 또는 능동적 대책으로 구분된다. 계단과 같은 구조물은 수동적 대책이라 하고 스프링클러와 같이 어떠한 장치들을 사용하는 것들을 능동적이라고 한다. 

수동적인 대책이라 함은 화재에 버티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불에 타거나 녹아내리지 않는 건물구조를 내화구조라 하는데 이 역시 수동적 대책이다. 반면 능동적 대책이라면 불을 꺼거나(소화) 연기를 배출하거나 대피 경고 방송을 날리는 등을 위해 다양한 설비들을 배치하는 것들이다. 화재 시 외부로 연기를 배출하는데 만약 창문을 이용한다면 수동적 대책이고 환풍기를 이용하면 능동적 대책이다.

일반적으로 능동적 대책보다는 수동적 대책이 더 믿을만하다고 한다. 예를 들면 화재 발생 시 건물이 고온에 붕괴되지 않도록 물을 뿌려주는 장치를 갖추는 것보다는 어지간한 온도에도 버티는 튼튼한 재료를 사용하는 것의 신뢰도가 더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화재와 같이 건물 생애 동안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설비들의 경우에는 정작 필요할 때 준비된 설비가 작동하는 것을 보장하기 쉽지 않다.

더구나 화재에서는 일상과는 전혀 다른 매우 특별한 조건들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장치들의 경우는 그것을 구성하는 많은 것들 중 어떤 하나도 실패하지 않을 때 정상적으로 기능한다. 정전이 되었을 때에서는 비상용 발전기가 즉시 가동되어야 하고 펌프로부터 그 공간까지 물이 전송되는 경로 어떠한 지점의 밸브도 잠긴 곳이 있어서는 안된다. 

이런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능동적 설비라 하여도 가급적 단순함과 원시성을 추구한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것 중에는 천장에 달린 스프링클러 설비가 있다. 불이 나면 헤드가 열려서 물이 쏟아져야 한다. 이 때 헤드를 여는 것은 어떤 전기 장치도 아니다. 적당한 온도에서 녹아 내리는 물질이 헤드를 막고 있다가 화재 시에 자연스럽게 녹으며 열리는 방식이다.매우 원시적이 않은가? 그런데 사실은 원시적일수록 신뢰도는 높다. 실패할 가능성이 제일 작은 피난 방법이란 계단을 통해 걸어서 내려가는 것이라는 점도 한 예이다.

대표적인 수동적인 대책으로는 방화구획이란 것이 있다. 어느 공간의 화재를 고립시키는 것이다. 아파트 같은 것은 세대별로 방화구획이 매우 잘된 경우이다. 대형마트라든지 공항, 또는 대형 창고들처럼 공간을 구획하기 어려운 곳에서는 방화구획을 할 벽이 천장에 숨어있다가 화재 시에는 내려온다.

이것을 방화셔터라고 하는데 초기 연기가 발생하는 단계에서는 천장으로부터 약간만 내려와서 천장쪽으로 올라가는 연기가 옆 공간으로 이동하지 못하도록 막다가 어느 정도 뜨거워지면 바닥까지 완전히 내려와 공간을 구획한다. 구획된 공간으로부터 다른 곳으로 연결되는 배관과 벽 틈새 역시 불에 충분히 견디는 물질들도 밀실하게 채운다. 환기를 위한 덕트(공기가 지나가는 일종의 배관) 역시 댐퍼라는 차단장치가 내려와서 옆 공간으로의 화염 전파를 차단한다.
 
지난 여름에 아까운 소방구조대원의 인명을 앗아가 아픈 기억으로 남은 쿠팡 물류센터는 화재 시에 대비한 방화구획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는 말이 있다. 정확한 원인은 조사 결과가 나와야겠지만 컨베이어 등의 설비를 사용 시 방화구획을 면제하는 조항이 있는데 이로 인해 많은 경우 창고 등에서는 방화구획이 면제될 수 있다,

각종 능동적 소방설비들에 비해 신뢰도가 높은 수동적 설비로서 방화구획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매우 안타까운 점이다. 

박내석  소방기술사= 오피니언타임스
박내석 소방기술사= 오피니언타임스

 

[저자약력]
서울대 동양사학과 졸업 
소방기술사
한국기술사회 통일준비위원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 기술평가위원
한국교통안전공단 기술평가위원
㈜하나기술단 전무(현)
현대유엔아이(주)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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