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마켓=홈페이지
당근마켓=홈페이지

[오피니언타임스=김봉성 청년칼럼니스트]비현실적이지만 원컨대, 소개팅 자리에서 서로의 당근마켓 이용 내역을 교환하고 싶다. 내가 고용주라면 피고용자들의 것들도 확인하고 싶다. 익명성에 기반 한 실물의 거래 내역은 해석 가능한 일상의 지문이다. 이보다 솔직한 인간 됨됨이의 정직한 이력서도 없을 것이다.

김영하의 모 단편에서 이웃의 쓰레기를 뒤지는 인물이 등장한다. 쓰레기는 쓰레기를 버린 사람의 삶을 가감 없이 설명했다. 중고 물건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물건을 산 이유와 파는 이유에는 거짓이 가미될지 몰라도, 매매 물건들이 누적된 기록은 이용자의 생활 습관, 취향을 비롯한 아비투스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판매 목록에 자기 계발서가 가득하면 그는 의욕만 앞선 게으른 사람일 것 같고, 눈에 익은 베스트셀러만 전시되어 있으면 그럭저럭 유행에 따르는 사람 같다. 그리고 옷을 주기적으로 파는 사람은 마음에 드는 것을 일단 샀다가 ‘중고로 팔면 저렴하게 소비의 다양성을 만끽할 수 있다’고 합리화 하는 소비지상주의 성향의 사람일 것 같고, 인스턴트식품을 집중적으로 구매하는 사람은 자기 관리에 실패한 비루한 자취생일 것 같다.

이 중 ‘비루한 자취생’은 나였다. 반 년 전까지만 해도 반값에 준하는 라면과 3분 카레, 참치, 믹스커피를 매집했다. 특히 지난 추석에는 스팸을 30개가량 모아 지금까지 먹고 있다. 모든 거래처까지 도보나 자전거로 움직였지만 소모되는 칼로리보다 쌓이는 칼로리가 더 많았다. 그러다 요즘은 각종 즙과 정관장의 기록이 쌓이는 중이다. 믹스커피는 더 싼 값에 되팔았다. 더 이상 인스턴트식품을 견디지 못하는 몸이 되어버린 것이다.

물건 설명 또한 그 사람의 일부를 드러낸다. 사람에 따라 물건 정보만 나열하기도 하고, 물결이나 눈웃음뿐만 아니라 이모티콘으로 친절을 가시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소위, MBTI식의 T와 F의 구분인 셈이다. F가 친절해 보이지만, T도 괜찮다. 애초에 이웃 간의 풋풋한 정을 나누려는 게 아니라 거래를 통한 상호 이익 증진이 목적이므로 깔끔한 정보 전달은 효율적이다. 나쁜 것은 거짓과 자기중심적 무지성이다.

나눔이라 적어 놓고 클릭하면 가격이 명시되어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여러 물건을 팔면서 가장 낮은 가격을 대푯값으로 설정해 둘 수는 있지만, 명시된 가격과 실제 가격이 아예 다른 것은 명백한 거짓말이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 소소한 거짓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사람은 별로다. 그리고 불충분한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도 별로다.

도라지배즙을 팔면서 ‘1박스’라고만 명시하는 식이다. 몇 팩이 들어 있고, 한 팩에 몇 ml인지 설명이 없는 것은 그 글을 읽을 사람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배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F가 덕지덕지 묻어 있는 경우는 최악이다. 그런 부류와 갈등이 생길 때, 자신의 친절을 자신의 착함으로 굳게 믿어 ‘나는 이타적이므로 이 갈등은 원인은 너의 이기성에 있다.’로 귀결되는 경우가 종종 말이 통하지 않았다.

당근마켓을 통한 사람 읽기의 백미는 매너온도다. 당근마켓에서는 거래 후, 거래 상대의 평가로 이용자의 매너온도를 누적한다. 36.5도에서 시작해 좋은 평가를 받으면 올라가고 나쁜 평가를 받으면 내려가는 식이다. 처음에는 매너온도를 거래 경험치 정도로 생각하고 무시했다. 오히려 매너온도가 높은 사람을 보면 중고거래 중독자로 여겼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만약 누군가의 매너온도가 36.5도가 안 된다면, 거래는 물론 상종도 하기 싫다.

‘좋은 평가’를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은 초등학교 바른 생활에 나올 법한 인간관계의 기본을 준수하는 정도다. 발화 순서에 맞춰 상대와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거짓말하지 않고, 약속을 지키는 단순한 사회 규칙 말이다. 이 정도를 지키지 않으면 일상에서 꽤 많은 갈등을 겪게 될 텐데, 익명성 때문일까. 무례하고, 무모한 사람들이 종종 걸렸다.

구매할 때는 잘 몰랐다. 파는 쪽이 을이어서 그런지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게 이뤄졌었다. 판매자들은 대체로 약속 시간을 지켰고, 늦어지거나 바뀌면 미리 연락을 취하며 사과도 했다. 그러나 판매를 해보니 그동안 판매자들이 왜 내게 친절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인사 없이 불쑥 톡을 보내오는 것은 예사였고, 흥정하지 않겠다고 명시했음에도 다짜고짜 흥정을 시도하는 것도 애교였다. 대화중에 돌연 잠수를 탔고, 약속 시간이 되어도 연락이 안 되고, 약속 장소에 아예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한 번은 거래 장소를 조금씩 바꾸더니 지하철 개찰구 쪽으로 내려와 달라고 요청했다. 자기는 거래만 하고 바로 가야 하니 지하철 요금을 내지 않도록 양해 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도 어차피 지하철을 탈 테니 그러겠다고 하자 답이 없었다. 노골적이고 시시한 사기 방법에 어이가 없었다. 며칠 후 그는 탈퇴한 회원으로 드러났다. 생필품도 아닌 고작 5,000원짜리 물건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은 소비로 자신을 증명한다.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시대의 코기토가 된지 오래다. 과소비조차 플렉스(Flex)가 되었다. 개인은 시민이라기보다는 익명의 소비자에 가까워졌다. 자아실현에 ‘실패한 나’는 소비하는 한, 상품으로 성취를 대체하는 누군가일 수 있다. 그 누구도 장래희망이 소비자는 아니었을 것이다.

당근마켓에는 소비자를 초월한 자신이 있다. 당근마켓은 반자본주의적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축적으로 희소성을 제도화 하여 소비와 공급의 수레바퀴를 끝없이 굴린다. 그러나 당근마켓에는 축적이 아니라 교환이 있다. 소비자와 공급자의 경계도 허물어진다.

자본주의 선단(先端)의 소비자가 아니라 주체로서의 이용자로 존재할 수 있는 곳, 익명성이 보장되되 지역성을 껴입어 현실의 내가 호명될 수밖에 없는 곳, 당근마켓이다. 이곳에서 모든 거래는 자신의 인간 됨됨이 보증서를 채워가는 일이다.

부디 초등학교 2학년 수준의 바른생활로 주체로서의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기를. 그렇게 자신에게 먼저 친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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