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 = 칼럼니스트 석혜탁] 이달 초 종로구 소격동에 위치한 학고재 갤러리에 들렸다. <’에이도스(eidos)’를 찾아서: 한국 추상화가 7인>이라는 이름의 기획전을 보기 위해서다.

천병근의 무제=석혜탁
천병근의 무제=석혜탁

초현실주의 조형 양식의 영향이 배어 있는 천병근의 1957년 작품 <무제(無題)>에 눈길이 간다. 극사실적으로 표현된 저 갈색 눈은 그림 속 인물을 보는 것일까, 연초부터 잡다한 생각에 빠져 있는 나를 보고 있는 것일까. 

이 작품은 제1회 조선일보 현대작가초대미술전 출품작으로도 익히 알려져 있다. 초현실주의 화가 호안 미로(Joan Miro)의 ‘결’도 감지된다. 그러면서도 특유의 향토적 냄새가 보는 이의 공감각을 자극한다. 천병근보다 10여 살이나 많은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김환기는 우리가 세계미술에 들고 가야 할 것으로 천병근의 향토성을 지목한 바 있다.  

천병근의 <무제>와 같은 해 작품인 강용운의 <예술가>. 색과 선이 강렬하다. 천병근처럼 일본 유학생활을 했던 강용운은 호남지역의 추상미술을 개척했으며, 야수파적 색채를 선보여왔다. (물론 지역작가로 그를 국한하는 것에는 찬동하기 어렵다.) 강용운 역시 현대작가초대미술전과 인연이 깊었다. 다만 천병근, 강용운 모두 중앙 화단과 거리가 있었던지라 작가적 위상이 평가절하된 감이 있다. 

불교적 세계관이 묻어나는 하인두의 작품 <만다라>. 이 작품은 그가 작고하기 2년 전에 만들어졌다. 일곱 살 때부터 화가를 꿈꿨던 하인두가 60대가 되어 선보였던 그림이다. 기하학적 색면추상의 선구자였던 그는 최근 들어서는 하태임의 아버지로도 자주 호명되곤 한다. 

별생각 없이 재워줬던 친구가 알고 보니 북한에서 내려왔다는 사실 때문에 국가보안법 불고지죄로 반년 여의 시간 동안 영어의 몸이 된 적이 있던 하인두. 교단에서도 물러나야 했고, 해외 전시의 길도 막혔던 그의 신산했던 삶을 떠올려본다.

이 전시를 기획한 김복기 경기대학교 교수(아트인컬처 대표)는 한국적 흙냄새가 나는 것을 이 전시의 특징 중 하나로 꼽은 바 있다. ‘한국적 흙냄새’를 맡고 2월을 ‘꽉 차게’ 보낸 것 같아 기쁘다.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한국의 단색화(Dansaekhwa), 그 이후 ‘K-아트’ 시대를 견인하게 될 요소는 무엇일까? 7인의 작고 작가에게 지혜를 빌려보자.
  
석혜탁sbizconomy@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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