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의 피난민들이 파괴된 시내를 걸어 대피하고 있다=kbs뉴스 유튜브 영상캡쳐
우크라이나의 피난민들이 파괴된 시내를 걸어 대피하고 있다=kbs뉴스 유튜브 영상캡쳐

 

[오피니언타임스=칼럼니스트 양 평] 전 세계 매스컴이 온통 우크라이나 사태로 도배돼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근 전 대위가 의용군으로 싸우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입국한 것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그가 전사했다는 가짜뉴스가 나돌아서 다들 놀라는가 하면 그가 여행금지 지역인 우크라이나에 무단입국 한 것으로 외교부가 그를 경찰에 고발한 것을 두고는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한국 매스컴들의 그런 열기를 보면 갑자기 시간이 냉전시대로 돌아가 러시아가 ‘소련’이 된 느낌이다.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냉전시절 세계 곳곳에서 혁명을 부추긴 소련의 모습이니 두말할 것도 없는 악이고 

그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는 자유세계의 선봉으로 선의 대명사가 돼 있는 것이다.그들이 지키려는 것은 서방세계의 자산인 자유고 그래서 휴머니즘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서구 매스컴의 그 열기에 휩쓸려 그 밑바닥의 또 다른 어두운 측면은 거의 묻히거나 외면되고 있다.폴란드나 헝가리 등 이웃 국가들이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한 가족처럼 돕는 모습을 대서특필하다보니 그 나라들이 어느새 인도주의 천국처럼 비치는 것이 그렇다. 

그 나라들이 2015년 이후 유럽에 몰려온 시리아 난민들을 냉대하다 못해 적대하다시피 했던 사실은 까맣게 잊히고 있다.그처럼 여러 해 전의 사태를 들먹일 것도 없다. 이번 사태의 혼란 속에서도 그런 인종차별 현상은 어김없이 드러났다.우크라이나에서 폴란드 등으로 국경을 넘어가는 과정에서 백인들은 우선적으로 입국이 허용됐지만 아프리카나 중동 또는 인도인들은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던 것이다.

그것은 가는 과정에서의 문제일 뿐 그들이 인접국으로 가고 나서 정착을 하는 과정에서 겪을 인종차별은 뻔한 일이다. 그들이 우크라이나에서 겨우 자리 잡을 때까지 겪었던 고난의 과정을 반복해야 하거나 그보다 더 심할 가능성이 크다.

백인 난민들이 몰려와 그렇지 않아도 골치 아픈 판에 원래부터 달갑지 않은 존재인 유색인 난민까지 끼어있으니 얼마나 귀찮은 존재인가. 하지만 그런 정도의 인종갈등은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표피적인 것들이다. 

역사학자들은 아예 이번 갈등 자체가 하나의 인종갈등 같은 측면이 있다고 주장한다.물론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주장은 엉뚱한 소리로 비칠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말할 것 없고 러시아도 백인 국가이자 유럽 국가여서다.러시아의 오랜 역사적 수도로 현재의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이우는 물론이고 그 뒤에 수도가 됐던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도 유럽에 소재해 있다.

종교도 기독교다.그럼에도 러시아 전 국토의 73%는 아시아에 있으니 이 나라는 그 큰 몸통을 아시아에 둔 채 유럽에는 얼굴만 내밀고 있는 형국이기도 하다. 더욱이 아시아 쪽에는 이슬람교를 비롯해 이단의 종교를 신봉하는 소수민족들도 많다.하지만 러시아와 유럽의 심리적 장벽에서 그런 무슬림들의 존재는 하찮은 셈이다. 가장 큰 장벽은 오히려 기독교, 정확히 말하면 ‘러시아의 기독교’ 자체에 있다.

우리 동아시아인들에게 ‘동방정교’나 ‘그리스정교’ 또는 ‘러시아 정교’라는 명칭은 ‘서방정교’라 할 수 있는 로마가톨릭교나 거기서 파생된 개신교와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그러나 기독교의 역사를 더듬어 올라갈수록 그들의 사이에는 심연처럼 깊은 장벽 같은 것이 비친다.다만 우리는 주로 서방, 즉 로마 기독교 세계와 접해서 그 세계의 눈으로만 기독교 세계를 보다시피 했다. 

중국 등 동아시아에 기독교를 전파한 것도 로마 교황청 산하의 포르투갈 사제들이었고 그 뒤 동양을 지배하다시피 한 기독교 국가도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와 미국 등 서방교회 산하였다.동방교회 세력으로는 러시아가 20세기 초에 동아시아에 진출하려 했으나 동양국가인 일본에게도 제지당하는 식이었다.

그러다가 냉전 시대까지 거치는 동안 우리에게 동방정교는 역사책에서나 존재하는 종교처럼 비쳤다.그러다보니 우리는 서방측, 즉 서유럽과 미국 등의 매스컴을 통해서만 역사를 보다시피 했다.로마교황청이 주도하고 서유럽 국가들이 참가한 십자군이 세계 역사상 가장 성스러운 군대로 우리의 의식에 자리 잡고 있는 것도 그런 것이다.

그래서 십자군이 얼마나 어두운 발자취를 남겼는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이집트를 공략하러 간다던 4차 십자군이 엉뚱하게 동로마의 수도, 즉 동방정교의 중심인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해서 살인과 약탈 및 강간의 만행을 저질렀던 사실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십자군과 관련된 문예물이라면 그저 ‘사자왕 리처드’와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의 대결이나 떠올리는 정도다.

기독교를 위해 일어났다는 십자군이 기독교 도시를 반달족보다 더 야만적으로 짓밟았으니 그것은 살라딘 이야기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만큼 엄청난 서사임에도 그것을 소재로 한 서구의 문학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저 마지못해 역사책에 간략히 기록된 정도다.그런 반작용으로 러시아가 서방 기독교들을 탄압하고 있다는 사실도 우리에게는 먼 곳의 희미한 소식으로 전해진 정도다.

 

소련의 몰락 직후 집권한 보리스 옐친은 서방 교회와 선교사들의 정부 등록을 의무화하고 이들의 활동을 제한한 1997년 연방법을 제정했고 그것을 푸틴이 2001년에 더욱 강화해 개신교 개종을 금지하는 것을 명시했던 것이 그 시작이다.하지만 오늘날 서구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는 '루소포비아(러시아 혐오·Russophobia)‘의 원인은 그런 종교적인 요소만이 아니다. 종교를 떠나서도 유라시아 대륙을 넓게 차지하고 있는 러시아의 그 방대한 넓이에 유럽은 위압감을 느낀다. 더욱이 그 방대한 국토가 아시아권에 주로 퍼져 있어 인종적인 이질감도 심하다.

실제로 징기스칸의 몽골제국에서 그 주무대는 오늘날 러시아에 해당하는 지역이라 할 수 있다.한마디로 인종도 수상한 인간들의 대국이 이웃해 있으니 유럽인들에게는 어딘지 꺼림칙하고 두려움을 주는 나라인 셈이다. 그런 심리는 러시아가 나폴레옹 군을 물리치면서 가중됐다. 나폴레옹 전쟁이라면 프랑스를 상대로 전 유럽이 싸운 셈이고 거기서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이 러시아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러시아의 그런 공적은 이상한 공포로 다가온 셈이다.그래선지 나폴레옹을 몰락시키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러시아의 미하일 쿠투조프 장군의 존재는 우리에게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그보다는 고작 한나절의 싸움인 워털루 전쟁에 참가했던 여러 나라 장군의 하나일 뿐인 영국의 아서 웰즐리 웰링턴의 이름은 너무 익숙하다.

그 루소포비아는 소련의 공산주의 혁명으로 20세기를 그늘지게 해서 더욱 가중됐지만 그런 이데올로기의 문제는 아주 심각한 것은 아니다.20세기에는 공산주의와 대척점에 있는 나치즘도 세계를 뒤흔들었다. 러시아의 공산주의가 세계를 얼어붙게만 했다면 나치즘은 아예 유럽을 초토화시켰다.

더욱이 나치즘이 연합군과의 싸움에서 베를린 함락이라는 끝장까지 이어졌다면 소련은 저절로 무너졌으니 이데올로기 싸움이랄 것도 없다시피 됐다.하지만 나치가 무너진 뒤의 동서독은 별 거부반응이 없이 각각 동서 유럽사회에 적응했다.하지만 소련은 힘없이 무너졌으나 러시아는 유럽사회에 적응하기가 어렵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는 사라지고 소련 시절의 국토도 많이 떨어져 나가 옛모습이 아니지만 아직도 유라시아 대륙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그 나라에는 유럽인들과는 DNA가 다른듯한 인종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따라서 우크라이나 사태가 어떤 식으로 결말을 보던 루소포비아에는 결말이 없으리라는 시각에서 이번 사태를 보아야 할 일이다.
 

 

양평 전 서울경제 부국장= 오피니언타임스
양평 전 서울경제 부국장= 오피니언타임스

 

양평 저자소개

한국일보 문화부 차장 

서울경제 문화부장 겸 부국장

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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