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욱 더불어 민주당 의원이 한동훈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엉뚱한 질의를 하면서  누리꾼들로부터 질타를 받게 됐다=Jtbc뉴스 유튜브 영상 캡쳐
최강욱 더불어 민주당 의원이 한동훈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엉뚱한 질의를 하면서 누리꾼들로부터 질타를 받게 됐다=Jtbc뉴스 유튜브 영상 캡쳐

[오피니언타임스=김봉성 청년칼럼니스트]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 장롱 뒤편에 쌓이는 생활 먼지까지 용납하지 못하는 것은 강박이다. 법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모두 규정하지 못하므로 생활인이라면 나의 먼지와 너의 먼지를 적당히 눈감아 주는 융통성도 필요하다. 나와 너 사이에 실바람이 불어 날아갈 먼지를 일일이 지적하면 인생이 삭막해진다.

고위공직자 청문회를 볼 때마다 이 속담이 생각난다. 아니, 몇몇 사람들이 이 속담을 들먹이니 상기할 수밖에 없다. 적당한 허물은 덮고 넘어가야지 대체 어디까지 파헤쳐야 직성이 풀리겠느냐고 이맛살을 찌푸린다. 내 비록 털면 먼지 날 사람이지만, 그런 사람들을 보면 이맛살이 찌푸려진다. 똥 묻은 국민이라도 겨 묻은 고위공직자 나무라야 한다. 우리는 똑같은 인간이 아니다. 그들은 털어서 먼지 덜 나야 한다.

공자와 플라톤, 동서양을 막론한 미덕 중 하나가 중용이다. 이 중용은 평균값도, 중앙값도, 최빈값도 아니다. 본질에 걸맞은 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영화 [스파이더맨]의 명대사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힘을 가진 사람의 중용인 셈이다. 고위공직자는 사적 개인이 아니라 전 국민의 생활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공인이므로 이들에게 더 큰 책임을 묻는 것은 타당하다.

혹자는 무능한 도덕성보다 유능한 비도덕성이 낫다고 한다. 이는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법치를 무시한 생각이다. 현대 사회는 법이라는 시스템에 의해 민주적으로 운영된다. 그러므로 시스템을 투명하고 원활하게 관리할 수 있는 도덕성이야말로 능력이다. 어차피 고위공직자 후보군에 오르는 사람 정도면 sky급의 인재들이다.

청문회가 열릴 때마다 터지는 부패 관련 뉴스를 보면 기가 막힌다. 우선 우리 사회에서 적당한 부패는 능력의 충분조건인 것처럼 보인다.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며 이익을 나눠 먹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뒷골목의 도덕성이 없는 한, 권력에 접근 가능성이 낮은 것이다.

간혹 천재가 등장하긴 하지만, 엘리트들도 결국은 고만고만해서 결국은 줄이다. 끌어주고 밀어주는 ‘형님들’의 논리가 법을 쥐고 흔들 힘이 있으면 정치가 되는 것이고, 힘이 없으면 깡패가 되는 것이다. 고위공직자 후보에 오를 정도의 낭중지추가 되려면 그 논리에 얼마나 충실해야 했는가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대체 엘리트 집단은 얼마나 부패해 있을지를 가늠하게 된다. 능력 있는 사람들 중에 그나마 도덕적으로 깨끗한 사람을 골라 후보로 올렸을 텐데도 우리가 경험하는 것들은 그들이다. 그들 세계에서 겨 묻은 개가 그 정도면 대체 똥통의 깊이는 얼마나 될지 짐작할 수도 없다. 하물며 청문회에 나서지 않았다면 우리는 결코 그들의 부패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권력 욕심만 내지 않았다면 형님-동생의 카르텔 속에서 그들은 유유자적 만수무강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부패가 얼마나 일상화 되었는지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그들에게 청문회는 예상된 귀찮음이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청문회에서 물어 뜯겨 넝마가 된 사람들을 봐 왔으므로 당사자는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나름 자신이 있었을 테니 청문회를 수락했을 것이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 보면 난리도 아니다.

이는 자신이 살아온 날의 부패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도둑도 제 발이 저리는데, 그 똑똑한 사람들이 자신의 부패를 인지했다면 청문회를 수락했을까? 대체 부패가 얼마나 일상적이었으면 부패가 부패인지도 몰랐을까? 아니면 힘으로 부패를 무마시킬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섰을까? 전자든 후자든 암울하기는 매한가지다.

물론, 가짜 뉴스나 과장으로 왜곡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할 텐데, 언론은 이념이 아니라 진영에 갇혀 있다. 일정한 잣대가 없다. 보수라면 보수적 관점에서 검증하고, 진보라면 진보적 관점에서 검증해야 할 텐데, 검증은 ‘우리 식구’ 챙기기에 가까워진다. 하긴 언론도 부패 카르텔의 한 축이다. 다언론 시대라지만 여전히 프레임을 짜고 아젠다를 키핑하는 것은 메이저 언론이다.

일제 강점기, 6.25 전쟁, IMF 때처럼, 우리 국민은 작은 힘에 큰 책임을 져 왔다. 일제 강점기 때는 국민이 지도자를 뽑을 수 없었고, 6.25 때의 백성은 선거를 치를 만한 지성이 부족했고, IMF는 문민정부가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는 변명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정보화로 마음먹으면 개개인이 정보를 검증해 볼 수 있는 21세기, 도덕천재를 뽑아내지 못하는 것은 결국 국민의 책임이다.

청문회를 본다. 제대로 털고 있는지, 날리는 것은 먼지인지, 악의적 의도인지 가려낼 지성의 눈이 필요하다. 먼지 알레르기랍시고 창문을 닫는다면, 창밖의 부패가 신날 뿐이다. 작은 힘에 따른 최소한의 책임, 관심이 필요할 때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