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령  전국노래자랑 사회자를 맡아왔던 송해 선생의 생전모습 =채널A
최고령 전국노래자랑 사회자를 맡아왔던 송해 선생의 생전모습 =채널A

 

[오피니언타임스 = 칼럼니스트 석혜탁] 어렸을 때부터 힘차게 주말 아침의 시작을 알리던 송해 할아버지. 늘 정정한 모습 때문이었는지, 그의 건강을 언제부터인가 ‘상수’로 인식했던 것 같다. 1927년생 최고령 현역 연예인의 존재 자체를 너무도 간편하게 당연시했던 것이다. 

영원할 줄 알았던 그의 음성, 몸짓, 그리고 웃음. 많은 대중들에게 감동과 추억을 선사했던 그는 이제 ‘전국노래자랑’의 마이크를 내려놓게 됐다. 그의 ‘선창(전국~)’에 관객들의 ‘후창(노래자랑~)’으로 개시되던 경쾌한 노래 경연. 대국민 참여형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류(源流).

그 중심엔 평범한 동네 주민들이 있었다. 아직 말이 서툰 꼬마부터 백발의 어르신들까지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열린 무대’였다. 무대의 진입장벽을 다른 방송 프로그램처럼 높게 두지 않았다. 그것이 전국노래자랑이 국내 최장수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무대에 오른 경험이 많지 않은 우리네 이웃들이 신명 나게 춤을 추고, 편안하게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해 줬던 사람, 송해 할아버지.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이젠 그를 보내줘야 할 때다. 

그는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전국노래자랑의 진행자로 발탁되었다. 그때 이미 환갑이 넘은 나이였다. 그리고 30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지금까지 그가 만난 사람만 서울시 인구와 맞먹는다. 송가인, 임영웅, 박상철 등 걸출한 스타들에게 이 무대는 성장의 씨앗이었다.

그의 본명은 송복희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상륙함에 실려 망망대해를 헤매게 되는 과정에 그의 이름은 바뀌게 된다. ‘바다 해(海)’가 그의 이름이 된 것이다. 당시 그는 20대 중반의 청년이었다. 그 후 ‘송해’가 주민등록상 본명이 되었다.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정말 이름 그대로 바다 같은 사람이었다. 넓은 품으로 자신을 낮춰가며 주변 사람들에게 기쁨을 나누어 주었던 아티스트였다.

“저는 후배들을 선배같이 생각할 적이 많습니다. 사람이 세월이 흘렀다고 다 된 게 아닙니다. 세 살 먹은 아이한테도 배울 게 있어요. 그리고 새로 만나는 사람이나 같은 자리에 늘 있었던 사람에게도 서로 다른 점들이 많이 있거든요.”

대한민국연예예술상 특별공로상, KBS 연예대상 공로상, 백상예술대상 공로상, 한국방송대상 공로상,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등을 받으며 방송인으로서 커리어의 정점을 찍은 바 있는 성공한 MC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세 살 먹은 아이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고 말한 ‘진짜 어른’ 송해. 그의 존재가치는 연예계에 한정되지 않는다.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Oldest TV music talent show host)’로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로 쉼 없이 무대에 서서 전국 방방곡곡의 시민들과 소통했던 ‘일요일의 남자’ 송해. “송해 할아버지!”라고 친근하게 부르고 싶은 한국 대중문화계의 대들보. 그동안 수고 많으셨고, 감사했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삼가 고인이 명복을 빕니다.

석혜탁sbizconomy@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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