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요양병원등의  면회제한이 자체적으로 인원수를 정할수 있게 됐다.=mbc뉴스 유튜브 영상캡쳐
코로나19로 요양병원등의 면회제한이 자체적으로 인원수를 정할수 있게 됐다.=mbc뉴스 유튜브 영상캡쳐

[오피니언타임스=박정애 칼럼니스트] 드디어 엄마가 집으로 오게 되었다. 15개월 만의 귀향이었다. 비록 단 하루 허락된 외박이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외출은커녕 단 십분 간의 비대면 면회도 수시로 금지되어 온 암담했던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감회가 더 새로웠다. 

올해로 구순을 맞이하는 엄마는 3년 전에 고향 근처 요양병원에 들어가셨다. 차례대로 찾아오는 이런저런 노환으로 자식들 집에 머물기도 하고 자식들이 돌아가며 고향 집에 함께 머물기도 한 지 8년 만에 내린 결정이었다.

고향을 떠나기 싫어하는 엄마를 위해 우리 육 남매 모두 서울 경기권에 사는데도 일부러 고향 근처에 머물게 해 드린 것이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육 남매가 돌아가며 한 주도 거르지 않고 면회를 했다. 갈 때마다 외출이나 외박을 신청해서 반드시 고향 집에 모시고 가곤 했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면회가 수시로 금지되게 된 것이다. ‘이러다 말겠지, 몇 개월이나 가려고?’ 하며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렸던 격리의 기간이 길어지면서 엄마가 너무 외롭거나 혹은 버림받았다는 슬픔에 빠져 상태가 더 나빠지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걱정이 현실이라는 것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엄마가 자정이나 새벽에도 수시로 전화를 걸어오는 것이었다. 거의 감금당하듯이 병실에서만 지내다 보니 밤낮 구분이 어려워진 모양이었다. 

면회를 못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고향 집에 대한 그리움도 사무치는 듯했다. 자꾸 집에 가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여전히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 상황에서 면역력이 약한 노인을 모시고 나오기로 결심하기도 쉽지 않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다가는 엄마가 고독사를 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커져서 작년 3월에, 하던 일을 접고 과감히 퇴원 절차를 밟아 엄마를 모시고 고향 집으로 향했다. 외박이나 외출은커녕 대면 면회도 안 되던 때라 퇴원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향 집에 돌아온 엄마는 그동안 쌓인 그리움을 채우기라도 하듯이 온 힘을 다해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이제 살 것 같다.’라고 하셨다. 나한테 ‘너는 며칠만 있다 가거라. 나는 여기서 혼자라도 살겠다.’라고도 하셨다. 그동안 얼마나 고향 집을 그리워하셨을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퇴원을 시켜 같이 고향 집에 내려오기를 잘했다 싶었다. 

하지만 엄마의 고향행은 채 일주일을 채우지 못하고 끝났다. 갑자기 각혈이 심해져서 종합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다시 요양병원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또 계속되는 거리두기…. 다시 병원에서 나오지 못하는 신세가 된 엄마가 얼마나 외롭고 힘들지를 알면서도 이제는 퇴원을 시킬 엄두도 못 내고 그저 단 십분 간의 비대면 면회나 하며 15개월의 시간을 견뎌온 것이다. 

긴 시간을 견디고 드디어 고향 집에서 구순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건만, 그 사이 엄마는 혼자 힘으로는 한 발짝도 걷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작년에만 해도 보행기를 밀며 산책을 할 수 있었는데 오랜 시간 거의 누워지내다시피 하면서 걷는 것이 힘들어지신 것이다.

코로나 여파로 고독감이나 소외감 같은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고, 근력이 떨어지는 것을 비롯한 각종 건강상의 문제가 악화한 노인이 비단 내 엄마뿐만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한 노인 상담센터가 실시한 ‘코로나 시기 어르신의 사회심리적 변화와 욕구에 대한 조사’ 결과 총응답자 968명 중 92.7%에 해당하는 어르신들이 답답함, 우울감, 외로움, 소외감 같은 심리적 어려움을 호소했다고 한다. 

엄마는 이제는 고향 집에 자기 혼자서라도 살겠다고 말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하룻밤만 자고 집(요양병원)으로 들어가겠다고 했다. 스스로 한 발짝도 떼지 못하는 상태가 된 이상 이제 본인의 집은 고향 집이 아닌 요양병원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신 것 같았다. 우리 육 남매 역시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어쩌면 이번이 엄마의 마지막 고향 방문이 아닐까, 묵묵히 인정하고 있었던 것 같다.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고 그래서 자식들이 꾸준히 면회하러 오고 매주 고향 집에 갈 수 있었더라도 시간의 힘 앞에 엄마는 점점 더 기력을 잃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설명해주어도 코로나가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늙고 연약한 노인이 코로나의 피해를 가장 크게 본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 

자연재해든 인재든 재해로 인한 피해의 정점에는 항상 사회적 약자들이 놓이게 된다. 점점 더 극심해지는 기후 위기로 인해 지금은 코로나지만 앞으로 또 어떤 질병 재해가 우리의 지구를 강타할지 모른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부디, 노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대책이 미리미리 논의되고 마련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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