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대통령으로 재 당선된 롤라가 당선인사를 하고 있다=kbs뉴스 유튜브 영상캡쳐
브라질 대통령으로 재 당선된 롤라가 당선인사를 하고 있다=kbs뉴스 유튜브 영상캡쳐

[오피니언타임스=양평 칼럼니스트 ]지난달 30일의 브라질 대선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와중에 열려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한 셈이었다.

하지만 그 선거결과 극우파 자이르 보우소나루에게 남미 좌파의 대부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가 승리한 것은 국토 면적 세계 5위, 인구 세계 7위, 경제규모 세계 12위 국가인 브라질에 좌파정권이 들어서게 된 것 이상의 파장이 예상된다.

그것으로 라틴아메리카에서 굵직한 나라들이 모두 좌경화한 셈이 됐다.그 비슷한 ‘핑크 타이드’가 전에도 없지는 않았다.

1990년대에 베네수엘라와 도미니카공화국 등을 시작으로 2010년대 초까지 중남미 전반에 걸쳐 많은 좌파정권이 들어섰고 브라질에서도 바로 룰라가 집권했었지만 좌파 정권이 전역을 누빈 것은 아니다.

우선 라틴아메리카에서 3번 째 대국(인구 5200만)인 콜롬비아는 확고한 친미세력으로 남아 있었다.그랬던 콜롬비아도 지난 6월 좌경 정권이 들어서 중남미 대륙에 온통 핑크타이드가 넘치게 됐다.

하필이면 그 시점도 먼로 독트린이 선포된 지 정확히 200년째인 해에 그런 일이 벌어져 너무 공교로운 느낌이다.

미국의 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가 1823년 의회에서 연두교서로 발표한 먼로 독트린(혹은 먼로주의)은 미국의 외교정책 선언이었다.

그 요지는 유럽 열강이 아메리카 대륙에 새로운 식민지를 만들려 하지 말 것, 신생 독립국에 대해 유럽이 간섭하지 말 것, 그리고 미국이 유럽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관여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만일 유럽 국가가 미 대륙의 국가들을 식민지화 하려고 하거나 전쟁을 일으키려 하면 이를 미국에 대한 전쟁으로 규정하고 대응하겠다는 엄포가 뒤따랐다.

그것은 얼핏 독립전쟁을 거쳐 건국된 신생 독립국이 미주 대륙의 독립을 지키겠다는 비장한 결의 같이 보이지만 이상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자기네 나라의 독립을 쟁취했으면 그만이지 왜 미주대륙 전체를 두고 그런 선언을 한단 말인가?> 하는 느낌과 함께 <자기들이 뭐 길래?>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그것은 미국이 신대륙의 종주국으로써 <아메리카는 미국의 영역이니 유럽은 꺼져> 라는 선언으로 비치기 마련이었다.

그럼에도 먼로 독트린이 당시 큰 파문을 일으키지 않았던 것은 미국의 힘이 워낙 강해서 라기 보다는 아직 허약한 신생 국가로써 유럽 강대국들의 눈에 크게 띄지 않아서 라고도 볼 수 있다.

그 선언이 발표되기 불과 8년 전에 일어난 미영전쟁(1812~15년)에서 미국은 영국군에게 백악관이 점령당하는 수난을 겪기도 했었다.

그래서 유럽의 열강들은 이 선언을 비웃었을 뿐 유럽 자체 상황이 나폴레옹 전쟁의 뒤치다꺼리에 바빠서 거들떠보지도 않다시피 했다.

따라서 영국과 러시아는 북아메리카 진출을 계속했다. 그러다 먼로 독트린이 나온 지 40여년이나 지난 1867년에 러시아가 알래스카(러시아령 아메리카)를 720만 달러의 헐값으로 미국에 팔아치우고 미주 대륙에서 물러난 것도 미국의 위세에 눌려서는 아니었다.

러시아는 당시 캐나다에 군대를 주둔한 영국의 육해군을 두려워했고 그 앙숙에게 어차피 뺏기느니 차라리 미국에 팔아치운 셈이었다.

그럼에도 이 선언은 미국인들의 사고에 자리 잡은 채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났다. 특히 나폴레옹 전쟁으로 쑥밭이 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국력이 쇠약해져 중남미에서 독립운동도 활발해 그 타이밍도 좋았다.

그러다 남북전쟁 이후에는 미국이 인구에서나 산업에서나 강대국의 면모를 보이면서 그 선언은 어느 나라도 무시할 수 없는 위력을 떨치기 시작했다.

그처럼 강한 나라가 지켜준다니 미주의 국가들은 이를 환영했을까?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유럽에 있던 식민국가들 대신에 같은 대륙의 새 강대국을 모셔야 했다. 특히 중남미 대륙의 가톨릭 국가들이 신교를 믿는 어르신을 두게 된 것은 또 다른 아픔이었다.

아무튼 라틴아메리카는 갈수록 미국의 뒷마당 같은 존재가 돼갔다.

따라서 그 보호란 자유당 시절 유명한 조폭인 이정재 패거리들이 동대문 상인들을 ‘보호’하는 것을 떠올리게도 한다.

그런 보호에는 ‘보호세’가 따르기 마련이다.

물론 미국은 그런 식으로 보호세를 받지는 않았다. 대신 막강한 미국의 위세를 업고 경제진출을 했으니 어찌 보면 알 카포네가 자신의 ‘영토’인 시카고에서 주류사업을 벌였던 것을 연상케 한다.

여기에 저항이 없을 수 없었다. 하지만 미국은 군사개입과 점령 그리고 정권교체로 응수했다. 미군은 중남미에서 수천 번 군사개입을 해서 수십 차례 점령했다, 특히 2차 대전이후에는 이념을 앞세워 중남미 33개국 가운데 19개국에서 정권교체를 시도했다.

1970년 칠레에서 쿠데타가 아닌 합법적인 대선으로 당선된 살바도르 아옌데의 좌파 정권이 3년만에 무너진 것은 상징적이다. 아옌데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군부 쿠데타 병력이 쳐들어오자 카스트로가 그의 당선기념으로 선물했던 소총을 들고 저항하다 죽었다.

그럴 때마다 미국이 대내외적으로 곧잘 내세운 명분이 먼로 독트린이었다.그래서 먼로 독트린은 시국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모해왔다. 아니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정부의 존 케리 국무장관은 “먼로 독트린 시대는 끝났다”고 했으나 바로 다음 대통령 시절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먼로 독트린은 살아있다”고 선언했다.

죽었다 살아난 먼로 독트린은 더욱 매서워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의 좌파 정권이 심각한 존립의 위기를 겪어야 했다.

하지만 아메리카 주민들의 의식수준도 날로 높아지면서 그런 강대국의 제약에 대한 견제 심리도 상승하기 마련이었다.

더욱이 먼로 독트린이 선언될 당시에는 상상도 못했던 중국이라는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 아편전쟁이 일어나기 약 20년 전인 당시의 중국은 그 존재도 희미했을 뿐 아니라 강대국은커녕 제국주의의 희생양이 되기 전이었다.

그러던 중국이 미국과 쌍벽을 겨루는 강대국이 돼서 미주에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제 다른 대륙 국가가 함부로 미주의 일에 끼어들면 미국은 이를 미국에 대한 전쟁으로 규정하고 대응하겠다는 엄포가 무색해진 셈이다.

여기에다 오래전에 북미에서 떠났던 러시아가 이제는 남미 쪽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먼로 독트린과는 무관한 일이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그런 추세를 거들고 있다. 전쟁으로 석유 값이 오르자 미국이 앙숙으로 여기던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재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베네수엘라로써는 올들어 동서 양쪽에 자리 잡고 있던 친미 대국들이 사라진데다 또 다른 전기를 맞이한 셈이다.

물론 먼로 독트린이 사라졌다고 해서 미주에서 미국의 그 막강한 영향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아직도 미국은 최강의 대국으로써 라틴아메리카를 뒷마당 취급을 하고 있다. 그 뒷마당의 배고픈 인파가 ‘앞마당’에 들어가려고 미국의 남부국경에 몰려오는 광경이 언제 끝날지는 기약이 없다.

그럼에도 미국을 중남미의 터줏대감으로 자리매김한 먼로 독트린은 사라져 가고 있다. 그것이 올해로 정확히 200년을 채운 것은 그런대로 좋은 모양새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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