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의 길거리에서 팔리는 겨울 군고구마와 옥수수=KOTRA TV 유튜브 공개 영상캡쳐
라오스의 길거리에서 팔리는 겨울 군고구마와 옥수수=KOTRA TV 유튜브 공개 영상캡쳐

 

[ 오피니언타임스 = 한성규 청년 칼럼니스트 ] 믿기 힘들겠지만 여기 라오스도 춥다. 12월 달부터는 두 손을 공손하게 모으고 머리를 숙이는 불교식 합장인사가 나오, 즉 춥다 라는 인사로 대체되었다. 놀랍겠지만 여기서도 패딩을 입는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심지어 방한장갑까지 낀다. 목도리는 기본이다. 12월 기온은 최저 17도에서 최고 27도를 오간다. 연중 최저로 떨어지면 14도다. 이 나라를 떠나지 않는 한 죽을 때까지 눈은 구경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춥다고 한다. 모든 게 상대적이라는 사실이 몸에 와 닿는다. 

한창 더울 때는 아침부터 30도를 치고 올라가 40도까지 치솟는 날씨가 이어졌다. 그러다 겨울이 되어 14도까지 떨어지면 사람들은 추워서 어쩔 줄 모른다. 인도나 동남아시아에서 얼어 죽는 경우가 왕왕 생기는 이유다. 사람의 추위를 결정하는 것은 절대기온이 아니다. 40빼기 14인 26도라는 기온차가 추위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한국도 30도까지 치솟는 여름날씨에서 영하로 떨어지면 그 30도차이가 추위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마이너스 20도까지 막 떨어지는 나라에 사는 남자들이 겨울에 반팔로 집밖에 나가는 모습을 TV에서 봤을 것이다. 러시아에서는 마이너스 30도의 날씨에 얼음을 깨고 수영을 하기도 한다. 사람은 적응만 하면 날씨 때문에 죽지 않는다.

잘 먹고 잘사는 삶을 포기한지 4년이 넘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못 사는 나라에서 일하며 못 먹고 못사는 것 같지만 나는 인생의 어느 시기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다. 적응하기 나름이다. 

연말이다. 춥다. 12월 밖에 안됐는데 진짜 춥다. 크리스마스도 지나갔다. 더 추워질 거 같다. 숫자가 12에서 1로 바뀔 뿐인데 이맘때가 되면 생각이 많아진다. 1에서 31까지, 또 1에서 12까지 채워진 숫자들에 대해서 생각한다.

내가 2022년 1월에 어떤 생각을 했지? 1이 2,3,4을 지나 12까지 채워질 동안 무엇을 했지? 흘려버린 시간에 대한 반성을 하는 시간이 어김없이 돌아왔다. 매년 오피니언 타임즈에 신년 계획과 연말에 이 계획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올렸다. 올해도 초에 세운 계획을 보면서 같이 반성 한 번 해보려고 한다.        

먼저 아무도 공부하지 않을 것 같은 라오스어를 공부하기로 결심했었다.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루었다. 지금은 라오스 루앙프라방의 교육대학에서 IT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두 번째는 나에게 맡겨진 일을 열심히 하기로 결심했었다. 글 쓰는 일이든, 학생들 가르치는 일이든 주어진 일에 집중하고 있다. 딴 짓 안하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만하고 있다. 이것도 성공했다. 

세 번째로 남들보다 앞서가지 않겠다며 남들을 뒤따라가면 뒤통수를 맞을 일이 없어질 것이다라는 예언을 했다. 같은 나이 한국 사람들 보다 훨씬 뒤쳐진 삶을 살고 있다. 차도 없고 절도 없다. 자산이든 능력이든 지위든 권력이든 모든 게 뒤쳐져 있다. 그래서인지 뒤따라오는 사람들도 없었고 당연히 뒤통수를 맞을 일도 없었다.   

네 번째로 차를 끓이든 명상을 하든 나만의 의식을 만들어 생활의 속도를 늦출 결심을 했다. 뭐든지 빨리 하려고 커피를 끓이는 시간에 서류를 보고, 밥을 먹으면서 일을 하는 등 올리기만한 속도가 많이 내려갔다. 일하는 중간 중간에 학교 주변 산책도 한다. 저녁에도 1시간씩 슬렁슬렁 마을을 산책한다. 희한한 사실은 하루의 결과물은 비슷한데 여유는 많이 생겼다는 사실이다.   

다섯 번째로 지치면 무조건 쉴 것이라는 맹세를 했다. 나처럼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들, 특히 한국 사람들은 쉬는 것을 잘 못한다. 아직은 서툴다. 하지만 대중에게 맹세을 한 탓인지 전 우주가 도와 나를 쉬게 했다. 피트니스 센터에서 하루도 안 쉬고 운동하다 발목을 다쳐서 며칠 강제로 쉬었으며 항상 뛰어다니다 교통사고가 나 2주 강제로 쉬었다. 이제 조금이라도 무리가 갈 것 같으면 무조건 쉬고 본다. 죽고 싶지 않아서이다.   

마지막으로 돈이라는 교환가치를 가진 물건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결심을 했는데 이것도 우주가 도왔다. 예전 월급과 비교하면 10분의 1이 될까 말까 한 월급을 받으며 주식이나 펀드에 한 가닥 희망을 걸었는데 완벽하게 나를 배신했다. 마이너스, 마이너스 투성이다. 그래서 가진 것을 많이 잃어 교환할 게 없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물질에 자연스러워졌다. 1년 동안 한 번도 옷을 사지 않았고 외식이나 배달음식은 생각도 않는다. 덕분에 햇빛에 마르면 온기를 머금고 뽀송뽀송해지는 헌옷의 즐거움을 알게 됐으며 요리의 즐거움 또한 배웠다.       

연초에 거들먹거리며 이런 말을 내뱉었다. 식은 커피를 마시다가 뜨거운 커피를 마시려면 잔에 남은 식은 커피를 완전히 따라내야 한다. 식은 커피가 아깝다고 첨잔을 한다면 절대로 뜨거운 커피를 마실 수가 없다. 아직까지 남아 있는 알량한 자부심이나 거들먹거림, 남에게 보이기 위한 자존심, 허세나 거짓을 완전히 비워내야겠다.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 데 가장 큰 장애물은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새해에는 주위 사람들이나 내가 처한 상황을 비난하기보다는 나의 잘못부터 비워내야겠다 라는 말을 내뱉었다. 

아직 자신을 덜 비웠다는 느낌이다. 2023년에도 맡은 일을 열심히 하고, 천천히 갈 생각이다. 지치면 쉬고 돈이나 자존심 허세에서 자유로워질 생각이다. 아직 죽기에는 너무 일찍 이고 갈 길은 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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