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무료컨텐츠
사진=픽사베이 무료컨텐츠

 

[오피니언타임스=김봉성 청년칼럼니스트]나만의 불매 리스트가 있다. 혼자 하는 불매는 힘이 없지만, 꿈틀했다는 기분에 소소하게 실천 중이다. 내가 감상 중인 콘텐츠를 오염시킨 광고는 불매로 되돌려 준다. 콘텐츠 무료 시청 비용으로서의 광고는 수용 임계점을 넘었다. 거슬리고, 지긋지긋하다.

광고는 ‘데이터 스모그(Data Smog)’의 주범이었다. 1997년, ‘데이터 스모그’라는 용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의 광고가 봄날의 황사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미세먼지 그 이상이다. 보다 촘촘해지고 치밀해졌기에 마스크를 쓰듯 불매로 대응한다. 불필요한 정보들이 필요한 정보에 섞여드는 정도가 아니라 섞이면 안 되는 정보에도 적극적으로 침투했다. 내 불매는 짓밟힌 시청권에 대한 정당방위다.

콘텐츠 시장은 ‘작품’을 감상하고 싶은 시청자와 ‘상품’을 생산해야 하는 제작자의 산수가 합산되는 것이 아니다. 시장에서는 돈을 쓰기 싫은 ‘소비자’와 돈을 벌고 싶은 ‘생산자’의 상반된 이해관계가 충돌할 뿐이다. 소비자와 생산자의 제로섬 게임을 기적적으로 타협해 내는 마법, 광고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소비자 쪽 손실이 커지는 듯하다.

예능과 드라마의 PPL은 문제 지적이 식상할 정도로 오래되었다. [미생]의 사무용품들만큼 극 중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광고가 드물었다. PPL은 극의 흐름을 깨며 반복되었다. PPL이 적립해둔 짜증이 만만찮아 PPL임을 노골적으로 밟힘으로써 유머러스하게 승화시키는 전략도 이제는 날을 세우며 보게 되었다.

내가 즐거우려고 소비하는 콘텐츠에서 불쾌감을 느끼는 모순을 참지 않기로 했다. 지렁이보다는 나은 인간이고자, PPL로 등장하는 샌드위치, 떡볶이, 치킨 등을 불매 중이다.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호들갑 떨수록 광고 대상이 된 상품이 강하게 각인되어 효과적으로 불매할 수 있었다.

동영상 플랫폼 광고 역시 마찬가지다. 광고는 플랫폼의 태생적 생태이자 산소였다. 포노사피엔스(phono sapiens) 세대들은 동영상 플랫폼에서 콘텐츠 소비 대가를 광고 시청으로 지불했다. ‘구독, 좋아요, 알림 설정’은 산소 호흡기였다. 그런데 플랫폼이 독과점 되면서 광고가 길어지고 잦아졌다.

광고비용이 얼마가 적정한지 몰라도 독과점 이후 해당 플랫폼 기업 영업 이익이 상승일로에 놓인 것을 보면, 소비자는 보다 저렴하게 이익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긴 것임이 틀림없었다. 가상공간의 사용자 기반 광고는 보다 구체적으로 욕구를 자극했기에 더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애초에 게임을 하지 않아 저질의 게임 광고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지만, 과장된 아이디어 상품에 혹할 경우 ‘가능하면’ 경쟁사 상품을 구매했다.

TV나 동영상 플랫폼을 통해 유통되는 콘텐츠는 변명의 여지라도 있지만, 극장은 뻔뻔했다. 제값 치르고 10여 분 간 광고를 봐야 하는 시간 낭비는 어처구니없었다. 광고 시간 10분을 지레짐작하고 10분 늦게 가기는 영 찜찜했다. 광고가 다양하면 최소한의 보는 맛이라도 있겠지만, 그 시간을 채울 광고를 영업하지도 못했는지 같은 광고가 몇 번씩 반복되었다.

물론, 사회적 거리두기, 스트리밍 서비스와의 경쟁에서 적자를 넘나드는 시장의 생존 전략이겠지만, 소비자로서 알 바 아니다. 2010년 이후 4년 주기로 1,000원씩 인상하던 표 값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 2년 사이 20%가 오른 것은 심리적으로 수용이 안 되었다. 경제적 책임을 다한 선택에 끼어든 광고라니, 관련 상품들은 ‘반드시’, 내가 구매하는 상품군이 아니라면 계열사 상품이라도 찾아서라도 ‘필사적’으로 불매했다.

내가 옹졸해 보인다면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나는 여러 사람들에게 함께 옹졸해지기를 권하고 싶다. 불매는 기업을 향한 갑질로서 정확한 의미의 보복 소비고, 보복은 [이기적 유전자]에 의하면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에 속한다. 자기 이익만 취하려는 상대에게 보복해야 상대가 협력해 와서 상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복하지 않으면 호구 되는 경험은 치킨 값을 통해서 몇 년째 진행 중이다. 필수 소비재가 아닌 한, 구매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행동하지 않는 권리는 보호 받지 못한다. 시장은 보다 적극적으로 나타났다. 약간의 귀찮음을 참아 온 결과 스모그여야 할 것이 본질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상품 구매 시 최저가를 비교한다면, 가성비가 중요하다면, 스모그에 비용을 지불하는 습성을 되돌아 볼 때다. 우리의 옹졸함이 모일 때, 결과는 웅장해질 것이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