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임종건 칼럼니스트] 북한의 비핵화에 대응하기 위한 방법으로 미국의 전술핵 한국 재배치와 한국의 자체 핵무장이 거론되고 있다. 두 가지 주장은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제기되고 있지만 미국 내에서는 아직 의회, 행정부 및 전문가 그룹의 소수 의견에 불과한 반면, 한국 내에서는 상당한 여론의 지지를 업고 논의가 확장되어 가는 추세다.

두 가지 방법 모두 미국의 적극적인 협조가 없이는 실현이 불가하다는 점에서 아직은 한국의 희망사항 수준에 머물고 있다. 전술핵 재배치는 핵무기 자체가 미국의 것이므로 아무리 우리가 원한다 해도 미국이 반대하면 안 되는 일이다.

그에 비해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의 국방부 업무보고 자리에서의 발언으로 촉발된 한국의 자체핵무장 방안은 우리의 기술력으로 가능한 일이지만 국제사회, 특히 미국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지난한 과제로 인해 전술핵 재배치보다 실현 가능성은 더 낮다고 할 수 있다.

사진 KBS 관련뉴스 화면 캡쳐
사진 KBS 관련뉴스 화면 캡쳐

원자력발전소 하나도 없이 실험용 원자로 하나로 북한은 핵보유국이 됐다. 원전을 24개나 가동하고 있는 한국은 핵무기의 원료가 되는 사용후 핵연료를 다량 보유하고 있다. 개발에 착수한다면 2~3년 안에 북한을 능가할 수준의 핵무기를 확보할 수도 있고, 그것은 요란스레 핵실험을 하지 않고서도 가능한 일이다.

어느 방향으로 이 논의를 끌어갈 것인가는 한국의 핵무장이 필요한 특수한 사정에 대한 국제사회의 이해와 호응을 얻는데 매우 중요하다. 한국이 가장 역점을 둬야 할 부분은 자체핵무장이 결코 핵확산이 아니라 핵확산금지를 위한 것이라는 이율배반적인 목적을 설명하는 것이다.

한국이 보유하게 될 핵무기는 북한 이외에 다른 어느 나라도 공격대상이 아니고, 북한의 비핵화가 달성되는 시점에서 지체 없이 폐기될 무기라는 점을 설득시켜야 하는 것이다. 어느 나라든 핵무기는 일단 개발하고 나면 포기될 수 없는 무기라고 한다. 한국이 핵무기 개발 후 포기를 실행한다면 핵무기감축 역사에 획기적인 사건이 된다.

전술핵 재배치와 자체 핵무장의 논리적 근거도 새삼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 한국은 1991년 남북한 간의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에 따라 핵무기 개발을 하지 않기로 했고, 당시 한국에 배치돼 있던 미군의 전술핵 철거에 동의했다. 아울러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 시절까지 은밀하게 지속됐던 핵개발 의지와 계획도 완전 포기했다.

반면 북한의 김일성 주석도 북한은 핵무기를 가질 의사도 능력도 없다면서 비핵화선언에 서명했으나 김정일 김정은 시대를 거치면서 핵무기는 물론 수소폭탄까지 개발했다고 선전하고 있다. 단순히 개발 보유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선제공격용으로 쓰겠다는 내용의 법을 만들어 선포했고, 남한 전역을 사정거리로 삼는 미사일 도발을 일삼는다.

한반도 비핵화선언은 휴지 조각이 됐다. 우리는 지켰으나 북한은 어겼고 속였다. 한반도 비핵화선언 이전으로의 회귀는 한국으로서는 당연한 요구다. 그러나 미국은 핵비확산조약(NPT) 체제가 와해될 것을 우려해 전술핵 재배치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한국에 대해서는 핵우산보호와 확장억제로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겠다는 약속만 되풀이 한다.

북한의 핵무기가 한 개라도 휴전선에서 40여Km밖에 떨어지지 않은 한국의 수도 서울에 떨어지면 엄청난 인명과 재산의 피해는 불가피하다. 한국으로부터 동시에 핵보복을 당할 수 있는 상황이라야만 북한의 핵사용 유혹은 억제될 수 있다. 한국이 미국에 대해 전술핵 재배치를 요구하는 배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것이 자체핵무장 방안이다. 이 방안은 가져올 파장이 너무 복잡 미묘하다. 무엇보다 한국이 관리의 주체가 되는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은 미영불중러의 5대 핵카르텔 국가들에게 위협으로 간주될 것이다.

이들은 한국의 핵무장이 일본의 핵무장이라는 핵도미노를 초래하게 될지를 우려하게 될 것이다. 한미 미사일협정 폐지로 사정거리제한과 탄두중량제한이 해제된 한국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이 일본으로선 자국 안보에 불안요인으로 여길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전범국으로 세계 유일의 핵폭탄 피폭국이지만 한국과 마찬가지로 북한의 공격대상국인 일본은 한국의 핵무장을 반대하기보다, 한국처럼 자체핵무장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있고, 미국은 일본의 그런 요구를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세계 경제력 3위의 일본과 10위인 한국의 핵무장은 핵카르텔의 지각변경을 의미한다. 북한 외에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이 ‘사실상’ 핵보유국 행세를 하고 있으나,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은 그것을 넘어 5대 핵보유국에서 7대 핵보유국으로의 재편을 의미한다.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을 수용할 수 없다면 그것이 더 큰 이유일 수 있다.

한국의 핵무장이 미국에 도움이 되는 점도 있다. NPT체제는 5대 핵보유국 중에서 미국만이 감독자 역할을 해온 체제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개발 초기 중국과 러시아의 기술적 지원과, 유엔의 대 북한 제재에 대한 두 나라의 방관 및 훼방에 힘입은 것이다. 그런 태도는 지금도 여전하다.

그 결과가 한국 또는 일본의 핵무장이라면 중국과 러시아로 하여금 뒤늦게나마 북한의 비핵화에 보다 적극적인 영향력 행사하도록 자극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것은 미국에서도 낯선 주장만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대통령 후보 시절 북핵문제는 한일의 핵무장으로 대응하는 것이 맞다는 의견을 피력했었다.

핵보유국들은 ‘핵 없는 시대’를 말하면서도 핵무기 성능강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핵보유국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하면서 핵무기를 쓰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핵무장 후 핵포기’를 단행한다면 핵무기 감축 역사에 이정표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미국은 한국의 핵무장을 보다 긍정적으로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필자 약력]
한국일보 서울경제 기자 및 부장/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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