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고라니] 벌써 5년 전인가. 

첫 소개팅 때 아내와 난 서로의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초등학생 때부터 같이 자란 누구,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 누구, 군시절과 직장 친구들을 알려줬다. 둘 다 발이 넓은 편은 아니어도 깊게 사귀는 편인 것 같다며 공감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만 해도 인생의 중요한 것들을 공유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기쁜 일은 같이 기뻐하고, 힘든 일은 나눴다. 서로의 진로와 연애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주기도 했다. 이들이 내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지금은 기쁜 일은 감추고, 힘든 일은 티 내지 않는다. 적당히 안전한 이야기를 고르다 김빠진 콜라만 마시고 헤어지는 느낌이랄까. 내가 하는 이야기가 상대에게 상처가 되거나, 내게 상처로 돌아올까 걱정돼서다.

 사진 오피니언타임스 DB
 사진 오피니언타임스 DB

 

얼마나 좋아하는지와 무관하게, 서로의 생애주기가 다르다는 사실은 거리를 만든다. 

내겐 아내와의 관계가 세상 심각한 문제이지만, 매주 선을 보는 친구에겐 부부싸움조차 부러울 수 있다. 이미 아이를 둘이나 낳고 매일 육아전쟁을 치르는 친구가 보기엔 신혼의 갈등은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다. 그러니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경험을 하는 친구들과 연락이 잦아지는 게 자연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생애주기와 무관하게 우리의 마음에 여유가 없어진 것도 사실이다. 각자의 현생을 사는 데 바빠 타인의 이야기를 담을 공간이 부족하다. 작년에 갑상선암 수술을 앞두고 친구 몇 명에게만 알렸는데, 한 명을 제외하곤 연락이 오지 않아 서운한 적이 있다.

생각해보니 A는 이민 후 새로운 나라에 적응하느라, B는 태어난 지 100일밖에 안 된 젖먹이를 재우느라, C는 이직 후 팀장에게 깨지느라 각자의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만약 반대로 친구가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면 난 기억해 두었다가 안부를 물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내 소중한 시절을 함께 한 친구를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 사이에 생긴 거리를 인정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서운할 일이 아니다. 너에게 실망했거나, 나에게 화가 나 멀어진 게 아니므로,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다 가끔 만나 사는 이야기나 나누면 될 일이다. 그러니 우리 서로 담담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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