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이주호 청년칼럼니스트] 2021년, 수 십 번의 탈락 이후에 처음 정규직에 합격했다. 충청도에 있는 제약 회사였다. 입사하기 전까지 근무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꼭 중요한 건 산업이었고, 두 번째는 직무였다. 그리고 그 기준에 정확히 부합한 회사였다.

합격 소식에 “야호” 하고 소리 낼 만큼 좋은 회사는 아니었지만, 계약직으로 고용되던 시스템에서 벗어나 어딘가 소속된다는 기분에 안락했다. 첫 출근까지 3주간의 시간이 있었다. 차분하고 여유롭게 승리를 만끽했다. 그리고 첫 출근을 위해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오는 날 깨닫게 됐다. 아뿔싸. 어쩌면 이거 승리가 아닐 수 있겠구나. 

직장은 충북에 있었다. 충북. 유럽은 배낭여행이라도 한 번 다녀와봤지만, 일 평생을 인천에만 살아온 내게 충북은 낯선 곳이었다. 그렇게 충청도 생활이 시작됐다. 평생을 인천에 살다가 지방에 근무하면서 느낀 점을 몇 글자 적는다. 지방 소멸화 같은 큰 담론은 아니다. 

사진 오피니언타임스 DB
사진 오피니언타임스 DB

1. 스타벅스의 부재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스타벅스까지는 차로 꼬박 30분이 걸린다. 물론 스타벅스 커피 좀 안 마신다고 어떻게 되는 건 아니다. 다만, 스타벅스까지 차로 30분 걸린다는 건, 스타벅스를 소비하는 사람들과 딱 그 정도 거리만큼 이격돼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동네에 스타벅스가 있다는 건 언제든 스타벅스를 마실 수 있다는 것보다 많은 걸 상징한다. 그것은 스타벅스라는 브랜드를 소비한다는 것, 그리고 그 정도의 구매력을 갖춘 사람들과 이웃이라는 것을 뜻한다.   

2. 로드킬  

생각보다, 많은 로드킬 사체를 목격한다. '윗동네'에서 운전하고 다닐 때는 한 번도 사체를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충청도에서 운전하고 다니면 많은 사체를 목격한다. 이것은 절대적인 숫자의 차이로도 생각할 수 있다. 수도권보다는, 지방에 동물이 더 많다. 그러니까 수도권 보다, 지방에서 도로 위 로드킬 된 사체를 볼 확률도 높다는 가설이다. 

다만, 나는 민첩성의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만약 서울 한복판에 로드킬 된 사체가 있다면? 그건 오래 지나지 않아 치워질 거다. 한 시간? 아무리 길어봤자 반나절? 비싼 수도권 땅 위에서, 죽은 고라니를 위한 차선은 없다. 반면 충청도에서는 일주일이 지나도 치워지지 않는 사체들이 있다. 나는 그것이 수도권에 비해 지방 도시가 얼마나 재난에 기민하게 반응하지 못하는지, 혹은 민첩성의 차이를 가지는지 나타내는 지표라고 읽고 싶다. 

3. 직장 동료의 푸념 

이것을 지방 근무 문제 중 한 꼭지로 다룰 수 있을까. 동료의 푸념은 지방, 수도권, 글로벌할 것 없는 국경 없는 문제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나는 동료가 수시로 내뱉는 “내가 더 잘 났으면 여길 안 왔겠지...”란 푸념을 지방 근무의 문제 중 하나로 다룰 수 있다고 믿는다. 동료가 말하는 “여기”가 회사가 아니라 위치를 말하는 거라면. 

전혀 몰랐지만, 직장 내에선 일종의 “인서울 직장에서 낙오한 사람들”과 같은 종류의 느슨한 열등감이 있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발현되지는 않지만 동료들은 무의식적으로 아주 빈번히 회사의 위치와 지역을 자조했다. 그건 정말이지 동료들의 사기를 팍팍 떨어트리는 말임에도, 딱히 손을 들어서 “그건 틀린 말이야, 나는 못나서가 아니라 이 일을 하고 싶어서 온 거라고~” 말할 수도 없는 일이다. 나 역시 같은 일이라면 서울에서 하는 게 훨씬 좋았을 테니까...

결론적으로 그 동료가 자조한 말처럼 “더 잘 났다면” 우린 모두 여기에 없었을 거다. 우린 무언가 서울에서 일하는 것보다 살짝 부족했기에, 이 곳에 모이게 됐다.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는 이 좌절감은 서로가 서로의 자존감을 갉아 먹는다.  (물론 스스로 선택해서 위치를 선택한 사람도 있으니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이 회사에서도 벌써 2년 차다. 조금씩 이직을 생각 중에 있다. 처음 회사를 선택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게 산업과 직무였다면 이제는 근무지 하나다. 두 번째 우선순위는 무엇이 와도 괜찮다.  

높으신 나랏 분들이 지방 불균형을 걱정한다. 나도 인천 살 땐 그랬다. 마치 그것을 해소하는 게 도덕적으로 “선”하다는 것처럼. 다만 인천에서 생각만 했을 때와, 직접 살아본 경험은 차이가 크다.  

오늘도 나는 안전한 선 안에서만 정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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