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임종건 칼럼니스트] 지금 시대의 화두는 단연 인공지능(AI)이고, 최근 그것에 바탕한 대화의 도구로 GPT가 등장해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챗GPT는 유사 이래 지구상에 존재했던 인류가 남긴 많은 지식을 섭렵한 뒤, 인간이 던지는 질문에 전지전능자(Almighty)처럼 답변합니다.

그것이 내보이는 지식의 수준은 보편적인 인간의 지식수준을 뛰어넘는 것 같습니다. 인간이 AI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육체노동을 수반하는 직업의 상당부분을 로봇에게 빼앗긴 인간이 이제 정신노동 분야의 직업마저 빼앗길 운명인 것입니다.

AI는 어떤 위대한 연설, 탁월한 학설도 대신할 수 있습니다. 인간만의 독창적인 영역으로 인식되어온 문학과 예술분야에서도 시와 소설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드는 등 인간을 능가할 듯이 흉내 내고 있습니다.

사진 KBS 관련뉴스 화면캡쳐
사진 KBS 관련뉴스 화면캡쳐

 

필자는 챗GPT가 하느님의 말씀도 대신하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내가 다니는 서울 은평구 가톨릭 불광동 성당의 주임신부는 서울 대교구에서도 손꼽히는 인터넷 전문가입니다. 2월 셋째 주일 미사 복음은 마태복음 5장 38절~48절의 말씀이었습니다.

신부님은 3분짜리 강론을 챗GPT에 의뢰했다고 했습니다. ‘오른쪽 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대라’는 유명한 구절로 인해 신·구교를 막론하고 수많은 주옥같은 설교와 강론이 있었습니다. 다음은 신부께서 읽어 준 챗GPT가 작성한 강론의 일부입니다.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저는 예수의 가장 도전적인 가르침 중 하나인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마태복음 5장 44절에서 예수님은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중략) 이 구절은 우리가 잘못을 당했을 때 보복하거나 복수하려는 우리의 자연스러운 성향에 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우리의 적을 용납하거나 무시하지 말라고 제안하지 않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그들을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이런 사랑은 쉽지 않지만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에겐 필수적입니다.(중략) 왜 원수를 사랑해야 합니까? 첫째 예수님께서 친히 주신 계명입니다. 둘째 세상에 대한 강력한 증거입니다. 미움에 사랑으로 대할 때 그리스도의 변화시키는 힘을 입증합니다. 셋째 원수를 사랑하면 화해와 용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하략)”

나의 귀에도 쏙 들어오는 강론이었습니다. 신부께서도 같은 느낌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신도들에게 느낌을 물었고, 나를 포함한 신도들은 박수로 화답했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 꺼림칙했습니다. 챗GPT의 강론과 신부의 강론은 같은가, 다른가? 내가 듣고 싶은 강론은 어떤 것인가?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이 얼른 떠오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경쟁사회에서 인간의 능력을 평가하는 제도가 각종의 시험입니다. 그 시험에 AI가 개입하게 되면 시험은 무용지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방치할 경우 제도의 교란으로 인한 사회혼란이 극심해 질 수 있습니다. AI시대에 우선적으로 마련돼야 할 대책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AI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이중적입니다. 두려워하면서도 신뢰합니다. 의사도 판·검사도 교사도 기자도 AI가 더 공정하게 잘 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습니다. 이같은 인간의 인간에 대한, 제도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AI의 제도교란방지책을 마련하기는 더욱 어려울 겁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지식은 오랜 세월 수많은 선현들이 쌓아올린 연구의 결과입니다. 그 지식 모두를 섭렵하는 것은 어느 천재보다 AI에게 더 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그 지식을 논리적으로 연결시켜 추론할 능력까지 갖춘다면 인간이 AI를 따라갈 수가 있을까요?

이번에 등장한 챗GPT는 매개변수 1,750억 개로 그같은 대화능력을 보여주었다는데, 인간의 두뇌처럼 100조 개의 매개변수로 작동시킨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인류의 멸종을 초래할 괴물이 될지 모른다는 종말론적 비관론이 제기되는 근거입니다.

그러나 AI의 세상을 비관만 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인류는 신기술이 나타날 때마다 공포를 느꼈으나, 고통을 겪으며 적응해 역사를 발전시켰습니다. 산업혁명기에 나타난 증기기관이나 방적기가 고용의 감소가 아니라 고용과 생산의 획기적인 증가를 가져왔듯이, AI가 더 많은 새로운 고용을 창출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프랑켄슈타인 같은 괴물을 만들지 모른다고 두려워했던 유전자 기술은 질병퇴치와 범죄자를 잡는 기술로 기여하고 있습니다. 사진 기술이 탄생했을 때 사실주의 미술은 끝났다고 했으나, 미술의 표현방식은 더욱 풍성해졌고, TV기술이 등장했을 때 신문과 라디오 시대는 끝났다고 했으나, 세 종류의 미디어는 공생공영에 성공했습니다.

AI의 지능이 아무리 깊고 넓다 해도 인간의 지능을 기초로 한 것입니다. 인간이 인간의 유익을 위해 AI를 이용한다는 원칙만 지킨다면 AI도 인간을 배반할 수 없을 것입니다. 유전자 기술의 일탈을 막는 것보다 훨씬 강한 제도적 감시도 필요합니다만, 무엇보다 인간이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아야 합니다.

인간이 인간에 대한 불신으로 인간보다 AI를 더 신뢰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인간이 AI에 패배하는 길이라고 봅니다. AI가 들려주는 하느님의 말씀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성직자의 기도와 숨소리가 들어있는 말씀에 대한 갈구가 있는 한 인간은 AI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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