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석순 프리즘]

최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두 가지 사건에 대한 재판 결과가 사회적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이른바 ‘윤미향 사기 및 횡령 사건’과 ‘곽상도 뇌물 사건’의 1심에 대한 반응입니다.

윤미향 의원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내세워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활동을 이끌면서 정대협 자금을 임의로 사용하고, 거짓 자료로 정부와 서울시 보조금을 부당하게 받아내고, 위안부 쉼터를 비싸게 사서 싸게 팔아 정대협에 손해를 끼쳤다는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이 같은 혐의에 대해 대체로 윤 의원의 정대협과 관련한 정당한 활동이라고 인정하고, 1,718만 원의 횡령 부분만 유죄로 판단, 벌금 1,5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사진 YTN 관련뉴스 화면 캡쳐
사진 YTN 관련뉴스 화면 캡쳐

​곽상도 전 의원은 대장동 사업에 도움을 주고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로부터 아들의 퇴직금 명목으로 50억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사건 관계인들의 대화 녹음 등 여러 정황증거가 있었으나 1심 재판부는 아들이 상식 밖의 거금을 받은 것과 아버지 곽씨와는 직접 상관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피고가 정치인이 아니라 일반 시민이었더라도 그런 재판 결과가 나왔겠느냐”고 의구심을 나타냅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건 일반 시민들만이 아닙니다. 법조계 일부에서도 수긍하기 어렵다는 반응입니다. 검찰이나 법원이 국민의 법감정과는 동떨어지게 사건을 너무 안일하게, 허술하게 처리한 게 아니냐는 소리가 들립니다. 여론에 떠밀리듯 검찰이 곧바로 항소하고 나선 걸 보아도 그렇습니다.

정말 아쉬운 것은 재판 결과보다 그동안 흘려버린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윤미향 의원의 혐의에 대한 재판은 1심에만 2년 5개월이 걸렸습니다. 그동안 그는 범죄인인지 아닌지 애매모호한 신분으로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직을 수행했습니다. 앞으로 고등법원, 대법원까지 올라가 판결이 확정되려면 또 얼마나 긴 세월이 걸릴지 알 수 없습니다. 최근의 재판 추세로 보아서는 남은 국회의원 임기 1년 3개월을 채우는 데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드루킹 일당과 대선 여론을 조작해 문재인 후보의 당선을 도운 김경수 씨는 그 공로로 더불어민주당 단일후보로 공천받아 경남 도지사가 되었습니다. 2018년 7월에 임기를 시작한 그는 특검에 의해 그다음 달 선거법 위반과 업무방해로 기소되었고, 이듬해 1월 1심에서 업무방해 징역 2년, 공직선거법 위반 징역 10개월(집행유예 2년) 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2021년 7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지사직에서 물러나기까지는 무려 3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임기 4분의 3이 지나도록 범죄자가 330만 경남 도민의 살림을 좌지우지했던 셈입니다.

지난 2019년 12월 자녀의 입시 비리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지난 2월 1심에서 징역 2년, 추징금 600만 원의 판결을 받았습니다. 함께 기소된 부인 정경심 씨(전 동양대 교수)는 징역 1년,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은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기소 후 만 3년 만의 일입니다. 중간에 부장판사의 잇단 휴직, 재판부 기피신청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너무나 긴 재판이었습니다. 조국 씨는 앞으로 법정에서 더 성실히 다투겠다고 하니 대법원까지 갈 경우 또 얼마나 긴 세월이 흐를지 알 수 없습니다.

최근 법원에 접수되는 소송 건수는 매년 줄고 있다고 합니다. 거꾸로 재판 기간은 갈수록 길어지는 추세입니다. 판사들이 늑장을 부리기 때문이라는 불만이 적지 않습니다.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 ‘충실한 재판’을 강조하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거기다 고등법원 부장판사의 승진제도가 폐지되고, 인사고과에서 사건처리율이 제외되는 등 법원 내 긴장이 느슨해지면서 재판도 덩달아 늘어지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판사들의 정치적 성향입니다. 판사가 노골적으로 정치 색깔을 드러내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집니다. 법원 내 특정 조직원들이 발탁되는 인사도 다반사입니다. 정치권 인사에 대한 재판에서 정치 성향이 강한 재판장의 의도적인 지연이나 재판부 교체 등 정의롭지 못한 일들이 벌어질 개연성이 그만큼 높아진 것입니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에 대한 재판은 지지부진하다 결국 1심 판결도 끝나지 않은 가운데 송철호 시장이 임기를 다 채우고, 그다음 선거에까지 재출마하는 기현상을 빚었습니다. 감사원장을 지낸 최재형 의원은 “(법원을) 정치 투쟁의 장으로 만든 김명수 대법원장이 의도적 재판 지연의 조력자 역할을 했다”고 비판합니다. 일부에서는 경력이 미흡한 그를 대법원장에 앉혀준 문재인 정권에 대한 보은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사회 정의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로서 법원의 신뢰성이 말이 아닙니다.

헌법에 규정했듯이 신속한 재판으로 사건 당사자인 국민의 고통과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법원의 소임입니다. 갈수록 갈등이 심각해지는 우리 사회에서 사건 실체의 규명과 불법 여부에 대한 판단이 흔들리거나 지연된다면 사회 혼란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의는 때에 맞춰 실현되어야 그 의미에 부합하는 것이다. 너무 늦은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법원을 떠나며 어느 판사가 남겼다는 발언은 바로 우리 법원을 향한 경구(警句)일 것입니다.

#이 칼럼은 오피니언타임스와 자유칼럼 그룹간의 전재 협약에 따라 게시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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