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의 들꽃여행

[오피니언타임스=김인철 칼럼니스트] 

 강원도 화천 비수구미의 한 야산에 옮겨져 대거 뿌리 증식에 성공한 광릉요강꽃 군락 @사진 김인철
 강원도 화천 비수구미의 한 야산에 옮겨져 대거 뿌리 증식에 성공한 광릉요강꽃 군락 @사진 김인철

백의 얼굴, 천의 표정을 짓는 광릉요강꽃!

학명은 Cypripedium japonicum Thunb.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멸종위기종 1급.

깡마른 갈색 숲에 돌연 생기가 돕니다. 낙엽 밑으로 꼬물꼬물 새순이 돋더니 어느덧 산야초의 푸름이 갈색을 압도합니다. 멀리 남녘에선 진즉 유채, 변산바람꽃 등 풀꽃이 피었단 소식이 전해졌지만, 잠잠하던 서울·경기·강원 등지에서도 여기저기서 꽃봉오리가 터지기 일보 직전입니다. 머지않아 개나리·진달래·산수유·철쭉·생강나무는 물론 민들레·냉이·광대나물·너도바람꽃·복수초 등 온갖 꽃들이 필 것입니다.

이렇듯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푸른 생기를 되찾을 이 땅의 풀·나무 등 자생식물의 수는 무려 4,100여 종. 그 하나 하나가 존재 이유가 있고 보존 가치가 있는 귀한 생명체이지만, 국가는 일부 식물을 특별히 멸종위기 야생식물 1·2급으로 지정, 보호하고 있습니다. 자연적 또는 인위적 위협 요인으로 개체수가 크게 줄어 현재의 위협 요인이 제거되거나 완화되지 않을 경우 1급으로 지정된 13개 종은 당장, 2급 79개 종은 머지않은 장래에 멸종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결과입니다.

5월 싱그러운 신록의 숲에서 발레리나처럼 춤추듯 피어 있는 광릉요강꽃 군락 @ 사진 김인철
5월 싱그러운 신록의 숲에서 발레리나처럼 춤추듯 피어 있는 광릉요강꽃 군락 @ 사진 김인철

최고 수위의 보호 식물 13개 가운데서도 첫째로 꼽히는 것이 광릉요강꽃.

난초과의 식물로,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과 대만에도 분포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30년대 초 경기도 ‘광릉’ 숲의 소리봉에서 처음 발견됐으며, 타원형 꽃 가운데가 움푹 파인 게 ‘요강’을 닮았다고 해서 광릉요강꽃이란 이름을 얻었습니다. 8cm 안팎의 꽃을 가운데 놓고, 앞뒤 또는 좌우 대칭으로 펼쳐진 합죽선 형태의 넓은 잎 2장이 주름치마를 닮았다고 해서 치마난초라고도 불립니다.

20~40cm 가량의 전초와, 꽃의 생김새와 색상이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야생화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활달하고 화려하다는 평을 받습니다. 이처럼 돋보이는 미모 때문에 눈에 뜨이는 대로 불법 채취되는 바람에 처음 발견된 곳이자 한때 꽤 많은 개체가 있었던 소리봉 일대에서는 아예 절멸 상태라고 합니다. 근래 발견된 천마산·명지산·백운산 등지의 자생지 역시 파괴되었습니다.

중앙의 꽃을 놓고 앞뒤 또는 좌우 대칭으로 2장의 잎을 활짝 펼친 광릉요강꽃 @사진 김인철
중앙의 꽃을 놓고 앞뒤 또는 좌우 대칭으로 2장의 잎을 활짝 펼친 광릉요강꽃 @사진 김인철

해마다 5월이면 큼지막한 꽃을 피우기는 하지만, 종자의 결실률이 낮은 생태적 습성도 광릉요강꽃이 멸종 위기에 내몰리는 또 다른 원인입니다. 꽃은 피지만 씨가 잘 안 만들어져 번식이 많이 안 되는 것이지요.

전문가들이 씨를 무균 배양하는 등 여러 방법을 동원해 결실 종자를 이용한 대량 증식법을 오랫동안 연구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 자생지에 보호 펜스를 설치해 인위적인 훼손을 막는 등의 조치를 관련 기관에서 취하는 것이 고작입니다. 게다가 불법 채취된 광릉요강꽃은 자생지 이외 제3의 곳에 이식할 경우 거의 모두 몇 년 내에 죽는다고 합니다. 공생 관계에 있던 자생지 토양의 곰팡이가 파괴되기 때문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광릉요강꽃의 씨와 곰팡이가 공생해 난균근(蘭菌根)을 만들어야 비로소 틔우는 독특한 습성 탓에 증식도 안 됩니다.

하회탈 같기도,요염한 입술같기도 한 광릉요강꽃의 만개한 모습 @사진 김인철
하회탈 같기도,요염한 입술같기도 한 광릉요강꽃의 만개한 모습 @사진 김인철

경기도 포천과 가평, 강원도 화천, 전북 무주, 전남 광양 등지에서 모두 1,000개 안팎의 개체가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되지만, 그 중 순수한 자생 개체는 절반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립공원인 덕유산을 비롯해 죽엽산, 천마산 등 주요 자생지의 경우 철조망을 두르고 보호하고 있어 일반인의 접근이 불가능합니다. 대신 광릉 국립수목원에서는 몇 년 전부터 수목원 안에 펜스를 치고 광릉요강꽃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대량 뿌리증식에 성공한 강원도 화천의 한 보호시설로부터 몇몇 개체를 옮겨 놓고 일반에 공개하는 것이지요. 이전 복원한 광릉요강꽃을 통해 일반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줌으로써 자생지 훼손을 막자는 취지에서입니다.

강원도 화천군 동촌리에서는 마을 주민이 수십 년 전 평화의 댐 공사 부지의 광릉요강꽃 몇 개체를 인근 산에 옮겨 심은 뒤 500여 개체에 이를 만큼 대량으로 ‘뿌리증식’하는 데 성공한 군락을 볼 수 있습니다.

꽃이 크며 화려한 탓에 불법 채취 등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광릉요강꽃@사진 김인철
꽃이 크며 화려한 탓에 불법 채취 등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광릉요강꽃 @사진 김인철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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