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김수종 칼럼니스트] 언제부터인가, 망고가 한국에서도 인기있는 열대 과일이 됐다. 시원한 망고 주스 한 컵을 들이켜면 한여름 더위가 싹 달아난다.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태국 등 동남아로부터 망고 수입량이 늘어날 뿐 아니라, 제주도 등 국내 남해안 지방에 망고를 재배하는 농가가 적잖이 생겼다.

세계에서 망고를 제일 즐겨 먹는 나라는 인도다. 인도는 세계 망고 생산량의 50%를 차지한다. 영국 독일 아랍에미레이트 등 부유한 유럽 및 중동 국가들이 인도 망고를 수입한다.

그런데 2022년 인도의 망고 농사가 흉년이었다. 기후변화로 날씨가 너무 더워졌기 때문이다. 망고는 열대 과일인데 더워서 흉작이라니 이게 무슨 얘기일까.

사진 SBS 관련뉴스 화면 캡쳐
사진 SBS 관련뉴스 화면 캡쳐

망고 농사를 하기에 알맞는 최적 기온은 섭씨 25도인데, 망고 개화기인 2022년 3월 인도 북부엔 평균 기온이 섭씨 33도, 최고기온 40도를 기록했다. 망고 꽃이 과일로 영글기 전에 시들어버렸다. 게다가 평년보다 비가 많이 내려서 그나마 달렸던 망고도 익기 전에 떨어졌다. 영세한 인도 망고 농장주들은 헐값에 밭을 팔거나 다른 작물로 대체할 걱정이 태산같았다고 한다.

아마 인도에서 망고가 기후변화로 잘 자라지 않으면 인도의 다른 지역이나 동남아의 다른 나라에서 망고가 잘 자랄지도 모른다. 인도의 망고값이 오르면 전 세계적으로 열대과일 값이 오르게 되고 따라서 한국의 망고 시설재배농가는 더 좋아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인도의 망고 흉년에서 우울한 기후변화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는 농산물이 어디 망고뿐일까. 모든 과일과 채소는 물론 인류의 기초 식량인 밀 쌀 옥수수 등 곡물 생산 전반에 기후변화는 막대한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작년 인도와 파키스탄 등 남아시아에 122년만의 고온이 덮쳤다. 인도반도가 모자이크처럼 한발과 홍수 지역으로 나뉘었다. 인도의 아쌈 지역은 1,000개 마을이 홍수로 파괴됐고, 파키스탄에서는 산불이 기승을 부렸다. 네팔은 원래 빙하의 나라다. 기온이 상승하자 눈 대신 비가 쏟아졌다. 눈의 나라가 비의 나라로 변한 것이다. 게다가 빙하가 녹아내려 곳곳에서 홍수가 터졌다. 물은 많지만 먹을 물이 없어졌다.

인도는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의 밀 생산국이자 소비국이다. 그런데 고온 현상으로 밀 재배에 타격이 예상된다고 국제 농업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인도가 세계 2위의 밀 생산국이란 점만 감안하더라도 장차 국제 곡물가에 미칠 영향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요즘 경제 시사 용어로 퍼펙트스톰(Perfect Storm)이란 말이 자주 쓰인다. 고환율 고유가 고금리 등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경제 상황이 수습하기 힘들게 진행되는 것을 뜻한다. 세계 밀 공급이 퍼펙트스톰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우울한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에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과 악화되는 기후변화 등 3대 악재가 지금 겹쳐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 전 분야가 똑 같지만 3년 동안 지속된 코로나 팬데믹으로 곡물은 파종에서 수확 및 유통에 이르기까지 심각한 영향을 받았다. 이어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식량 생산과 공급에 또 한 번의 큰 타격을 주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두 나라는 약 4억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는 밀 생산 국가다. 포탄이 쏟아지는 농토에서 농민들은 제대로 경작할 수 없다. 특히 우크라이나는 밀이 자라는 봄 동안 국토가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게다가 러시아 해군의 해상봉쇄로 우크라이나는 밀을 수출할 수 없게 되어 밀 값이 폭등했다.

국제 밀 가격이 2021년보다 80% 이상 폭등했다. 식량공급의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에 선물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밀 생산과 소비에서 1위에 있는 중국도 기후변화 영향으로 밀 생산에 차질이 크게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기후변화가 갈수록 더 악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처럼 종전을 기대할 수도 없고 코로나 팬데믹처럼 백신이 개발되어 집단면역이 생겨 유행이 꺾이는 행운을 기대할 수 없다. 캘리포이나 등 미국의 농업 지역에 물을 공급하는 콜로라도 강이 1000년만의 가뭄으로 말라가고 있다. 남아메리카의 아르헨티나, 호주가 모두 전에 볼 수 없던 극심한 한발로 농업생산에 큰 위협 요소가 되고 있다.

만약 지금과 같은 추세로 기후변화가 악화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된다면 2023년 이후 인류는 잔인한 식량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세계 식량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유엔 산하 세계식량농업기구(UN World Food Program)에 따르면 3억2,300만 명이 기아선상에 있으며, 4,900만 명이 굶어죽기 직전에 처해 있다고 한다.

기후변화가 단순히 식량생산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홍수 가뭄 태풍 사막화 등으로 주거 환경 파괴와 병행하여 일어나기 때문에 인류는 더욱 고통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세계의 식량위기는 선진 부국과 저개발 빈국이 느끼는 강도가 다르다. 아프리카 등 빈국은 식량 부족이 바로 정치불안과 전쟁으로 비화하기 일쑤다. 10여년 전 미국과 영국 등 연구기관이 분석한 예측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식량위기가 심화될 때 전쟁이 잦아질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핵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가설이 나오기도 했다. 굶주림 앞에 개인은 물론 국가도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없다는 점에서 설득력 있는 진단이다.

이제 선진국으로 부상한 한국은 GDP(국민총생산) 규모로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50년 전까지 "기아선상에서 시달린다"는 표현이 정치지도자의 입에서 토로될 정도로 최빈국의 경험을 한 것이 바로 한국이다. 그런데 지금 대부분의 국민, 특히 50대 이하는 굶주림의 의미를 모른다. 식량난은 아프리카 저 먼곳에서 일어나는 일로 인식한다. 라면 한 그릇보다는 시원한 망고 주스 한 컵의 가치가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생활에 익숙하다.

그러나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기후변화는 계속 진행될 것이고 국토가 비좁은 한국은 기후변화의 파괴적 영향을 크게 받게 될 것이다. 반도체산업이 아무리 발전해도 기후위기와 식량위기가 겹쳐서 덮쳐오면 국가는 통제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 앞에 겸허해져야 하지 않을까.

김수종
김수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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