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회 산소리]

2023년 2월 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특허침해소송에서 변리사에게 변호사와 공동소송대리를 허용하는 변리사법 개정안을 심의하는 자리였습니다. 심의장에 이인실 특허청장이 참석하여 의원들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현행 변리사법 2조(변리사는 특허 또는 법원에 대하여 산업재산권에 관한 사항을 대리를 업으로 한다)와 8조(변리사는 산업재산권에 관한 사항의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다.)를 보면 변리사에게 소송대리권이 명확하게 규정돼 있습니다. 그런데도 법원은 특허침해 소송에 대해서는 변리사의 소송 대리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과학기술계와 산업계, 특히 중소벤처기업들은 특허 침해 소송에서 변리사를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게 강하게 요청하고 있었습니다. 공동소송대리는 이름이 주는 느낌과 달리 실제로는 ‘변호사가 있는 상태에서 변리사가 참여할 수 있는 종속적인 것’이어서 모양새도 참 나쁩니다. 변리사법 규정을 제대로 해석하고 적용하면 절대 나올 수 없는 그런 법안입니다. 개정안은 현실적 고육책으로 이런 타협 법안을 마련해서 추진해 왔었고, 벌써 20여 년 동안 법안 제출과 자동 폐기를 되풀이해 왔습니다.

사진 SBS 관련뉴스 화면 캡쳐
사진 SBS 관련뉴스 화면 캡쳐

특허청은 산업재산권법과 변리사법을 관장하는 정부 기관입니다. 특허청장은 소송대리권 문제를 풀어야 할 자리이고, 특허청장은 소송대리문제를 풀기 위해 다른 정부 부처를 설득해야 할 자리입니다. 역대 특허청장들이 중점을 두고 추진해 온 사안이었습니다.

이인실 특허청장은 작년 5월 취임하면서 각종 언론과 대담에서 공동소송대리권을 추진할 것임을 여러 번 밝혀왔습니다. 이인실 청장은 변리사로서 현업에서 일해왔기 때문에 특허소송대리의 본질과 논리에 정통할 것이라고 기대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날 아주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개정안에 대한 정부의 태도를 물으니 ‘논의가 더 필요하다’. 이법을 지지하느냐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답답하게 여긴 의원이 3가지를 묻습니다(아래는 국회 속기록을 일부 편집한 것임).

1. 이 법이 통과되면 법률소비자 입장에서 효용이 증가하느냐?
청장: 실익이 있다.
2. 변리사가 특허침해소송을 수행할 능력이 있느냐?
청장: 능력이 있다.
3. 헌법재판소에서 변호사와 변리사의 공동소송대리를 허용함으로써 소송의 신속화 및 전문화를 도모하고 소송 담당자의 권익을 충분히 보호할 수 있도록 입법적 조치를 취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내용을 제시한 걸 알고 있는가?
청장: 알고 있다.
위 3가지를 다 동의하면서 예, 아니요를 말 못하는 이유는 뭔가?
청장: (어물어물)

결국 이 법안은 법안의 무덤이라는 법제사법위원회 2소위로 넘어갔습니다. 대체로 내년 5월이면 자동 폐기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 같습니다. 또 시간을 끌려나 싶어 과학기술계, 산업계, 변리사들은 크게 실망하고 있습니다. 산자위에서 온갖 논의를 거쳐 넘어온 법입니다. 자구와 법령 체계를 심사하는 법사위에 묶여 있을 일이 아닙니다. 선진화된 국회법에는 상임위에서 법사위로 넘어간 법안이 90일 안에 처리되지 않으면 해당 상임위가 국회 본회의로 넘길 것을 요구하는 절차가 있습니다. 이런 절차에 들어갈지 지켜봐야겠습니다.

특허청장 발언이 논란이 되자 3월 3일 특허청은 ‘이번 법안은 특허분쟁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벤처기업을 위한 법안이라며, 변호사·변리사 직역 간 갈등 구도는 법안의 취지와 본질을 훼손시킬 우려가 크다.’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특허청이 내놓은 해명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듭니다.

세간에서는 변호사 직역을 건드리는 법안이면 법사위를 통과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헌법에 ‘국회의원은 청렴의무가 있고,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규정한 것과 현실은 딴판인가요? 국회는 본연의 기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은 “이 법안이 변리사와 변호사 사이 밥그릇 지키기가 목적인 법이었다면 나는 이 법안에 찬성하지 않는다. 이 법안은 앞으로 우리나라가 발전해야 하고, 산업과 경제발전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라서 이 법안을 찬성하고 나섰다.”고 말합니다.

이인실 특허청장은 누구보다 적극으로 법안 통과를 지지해야 할 자리에 있었고, 스스로도 공동소송대리권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취임할 때 포부도 밝혔습니다. 맡은 자리에서 지킬 자세를 저버리거나, 옳다고 생각하는 믿음을 바꾸기 어렵습니다. 쉽사리 자기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인실 청장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동안 지켰오던 태도를 갑자기 바꾸었을까요? 스스로 생각을 바꾸었나요?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드러나겠지요.

#이 칼럼은 오피니언타임스와 자유칼럼 그룹간의 전재 협약에 따라 게시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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