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방제일 청년칼럼니스트]  매일 매일 술을 마신다. 나의 이야기이자,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은 주류 공화국이다. 이 사회는 주류라고 부를 수 있는 엘리트와 부자들을 위한 나라가 되어 가고 있다.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럼으로써 전혀 다른 의미의 주류 공화국이 되어 가고 있다.

사진 YTN  관련뉴스 화면 캡쳐
사진 YTN  관련뉴스 화면 캡쳐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에서 남편은 무기력한 지식인이다. 지식인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무기력한 인간이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이라면 이혼 사유다. 그 뿐인가? 아내의 무식을 은근히 비꼬기도 한다. 시대만 탓하면서 술만 퍼마시는 사회 버러지일 지도 모른다. 다시 읽어본 술 권하는 사회는 20년 전 교과서에서 배웠던 내용과 완전 다른 소설 같았다. 내용은 알고 있었다. 느낌은 달랐다. 주제의식은 묵직하게 다가왔다.

일제 치하도, 독재도 아닌 오늘 날 대한민국의 청년은 흡사 소설 속 남편과 같이 무기력하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술을 마시는 것 뿐이다. 누가 권해서 마시는 것이 아니다. 알코올 중독자여서 마시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중독자처럼 술을 마셔 된다.

주머니 사정이 가벼워서 마시고, 마음은 그만큼 무거워서 마신다. “날씨야 아무리 네가 추워봐라 내가 옷 사 입나, 술 사 입나”  문구처럼 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워서. 없으면 없어서, 있으면 있어서 술을 마신다.

1920년대 청년들은 무력한 현실에 취할 수 밖에 없었다. 일제치하라는 냉엄한 사회 현실에서 말이다. 1920년대 청년들은 독립이라는 열망에 취했고, 무기력에 취했다. 1980년대 386 세대는 어떤가? 그들은 민주화라는 열망에 취했고, 민주화 이후 허무에 취했다.

그렇다면 2023년의 청년들은 대체 무엇에 취해 있을까? 그들은 왜 더 이상 술 권하지 않는 사회에서 산다. 무엇과도 맞서지 않고 무엇과도 싸우지 않는다. 도저히 종잡을 수 없기에 세상은 그들을 MZ 세대라 부르고 분석한다. 때론 그들을 종잡을 수 없는 족속들로 풀이한다. 그들을 이해하려는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그 무엇도 MZ 세대를 제대로 정의하지 못한다. 이유는 하나다. MZ 세대조차 자신들을 정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정의란 것에 구속받고 싶지 않은 것일지 모른다. 그들은 각자의 삶의 자세를 존중한다. 존중의 이면에는 혐오가 깔려 있다. 서로가 싫은 것이다. 자신을 둘러싼 현실과 사회 그 속에 속한 한 개인, 나아가 나약한 자신에 대한 깊은 혐오를 가지고 산다. 나의 이야기이자 남의 이야기다.

어쩌면 취생몽사다. 취생몽사는 취하듯 살고 꿈꾸듯 죽는다는 사자성어다. 한 평생,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살다 인생을 허비한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수많은 세대들에 대한 분석과 메타포들이 나오고 있다. 나는 오늘 이 최신의 테크와 디지털 세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취생몽사 세대라 부르고 싶다.

나이가 들고 크면 원대한 꿈을 꾸고, 그것을 이루며 살아갈 줄 알았다. 전혀 아니었다. 꿈은 온데간데 흩어지고, 비루한 생만 남았다. 사회에 빌붙기도 하고, 세상에 빌빌대며 살아가는 비참한 청춘이 남았다. 마치 <술 권하는 사회>의 남편처럼 말이다. 100년 전 현진건이 그렇고, 지금의 청년들이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어디에 취한 듯 살고 있고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누구는 쇼핑에 취했고, 누구는 술에 취했다. 혹은 일에 취한 자들도 있다. 모두들 취한 듯 무언가를 착취하면서 살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꿈이 있기에 다르다고 선언하듯 하루를 마감한다.

나 또한 그렇다. 반드시 이뤄야 할 꿈이 있다고, 가야할 길이 있다고 믿었다. 사실 취생몽사다. 꿈 속에 숨어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꿈이라는 허울만 있으면 매일 술을 마셔도 용서가 된다. 회사원의 퇴근 후 껍데기에 소주 한 잔을 마셔도 고개를 끄덕이는 사회, 술에 취해 성추행을 해도 심신미약으로 감형 받는 사회. 이런 술에 대한 관대함이 술 권하는 사회를 청년들에게 권한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참지 못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위스키 한 잔을 마신다. 술 권하는 사회의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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