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김수종 칼럼니스트]  '지구온난화의 위험이 급격히 상승하고 있어서 적응이 곧 불가능해질 수 있다.'

유엔산하 IPCC(정부간기후변화협의체)가 2022년 2월 28일 공개한 제6차 평가보고서의 핵심 요지다. 아직은 IPCC의 존재가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기후변화 이슈에 관해서는 권위와 영향력을 갖고 있는 기관이다. 지금 세계경제의 진단과 처방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기구가 국제통화기금(IMF)인 것처럼 기후변화시대에 IPCC의 입김은 갈수록 세질 것이다.

제6차 IPCC 평가 보고서는 각국의 정책 결정권자들이 의사결정에 참고할 수 있게 전 세계 400여명의 과학자들이 온난화의 진전 상황과 그 파장을 합동으로 분석 평가한 문서다.

2021년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6) 정상회의에서 기후변화 문제가 국제사회의 긴급한 의제로 자리잡았다. 작년 지구촌이 별 일 없이 조용했더라면 지구촌 곳곳에서 보고되는 기상재난을 타고 이 보고서가 2022년 큰 이슈로 부각되었을 것이다.

사진 SBS 관련뉴스 화면 캡쳐
사진 SBS 관련뉴스 화면 캡쳐

그러나 상황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전격적으로 침략하면서 급변했다. 기후변화 이슈는 전쟁의 블랙홀 속으로 빨려들어가 버린 것이다. 유럽은 2차대전 이후 77년만에 가장 치열한 전장으로 변하면서 기후변화 따위는 생각할 엄두도 나지 않은 긴박한 상황으로 내몰렸다.

석유든 석탄이든 에너지 확보가 눈 앞의 다급한 문제가 되었다. 러시아의 석유 가스 석탄에 의존하던 유럽은 에너지값이 치솟고 장래를 예측할 수 없는 에너지 파동에 휘말려 들었다. 2050 탄소중립, 즉 넷제로(Net-Zero)를 달성하기 위해 골몰하던 유럽국가들은 기후변화와 에너지문제의 보조를 맞출 수 없어 혼선에 휩싸이게 됐다. 현재 벌어지는 전쟁의 당사자가 화석 에너지 대국 러시아이기 때문에 단기적 충격이 너무 크고 장기적 파장을 예측할 수 없다.

러시아는 미국의 거의 2배에 육박하는 국토에 막대한 석유 석탄 천연가스 매장량을 갖고 있다. 2020년 기준으로 러시아는 전체 수출액의 50%를, 국가예산의 28%를 화석 에너지에 의존하고 있다. 유럽은 석유 소비량의 30% 이상, 천연가스의 40% 이상을 러시아의 공급에 의존하고 있었다. 특히 유럽에서 경제규모가 제일 큰 독일은 천연가스 소비의 50%, 석유의 30%, 석탄의 50%를 러시아에 의존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탈원전 정책은 독일로 하여금 더욱 러시아 천연가스에 매달리게 만들었다.

푸틴이 국내에서 독재정치를 유지하며 유럽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석유값을 좌지우지하는 '오펙 플러스(OPEC+)를 움직이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힘은 바로 에너지 파워에 있다. 푸틴에게 기후변화와 탄소중립은 별로 관심없는 어젠다이다. 석유부자 미국을 유럽으로부터 떼어내고 유럽에 에너지를 팔어먹으며 과거 소련제국의 영광을 누리는 게 푸틴의 꿈이다.

전쟁이 터지자 미국이 러시아의 석유와 가스 수입금지조치를 내렸다. 그렇지만 미국이 러시아서 수입하는 석유는 전체 석유수입의 3%에 불과하다. 러시아가 아파할 정도가 못된다. 유럽은 미국의 수입금지에 전폭 동조하지 못했다. 러시아 산 에너지가 없으면 유럽경제가 돌아가지 않을 판이었기 때문이다.

전쟁은 에너지를 집약적으로 소비한다. 차량, 탱크, 항공기, 군함은 거의 화석연료로 가동된다. 전쟁이 없었다면 생기지 않을 탄소배출이 일어난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독일을 비롯한 유럽국가들이 당장의 에너지 확보를 위해 폐쇄하고 있던 화력발전소를 재가동하고 닫았던 석탄광산도 다시 문을 열어야 했다. 유럽의 탄소배출은 오히려 늘어나게 됐다.

세계 에너지 안보에 중추역할을 하는 미국의 바이든 정부는 탄소중립 목소리를 잠시 내려놓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널뛰기를 시작한 국제석유값이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금수조치가 나오면서 더욱 불안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미국 유권자들은 휘발유값 인상에 아우성인 것도 바이든 대통령의 기후변화정책의 손을 묶고 있다.

미국의 탄소중립 반대론자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가격이 폭등하는 것을 보면서 바이든 기후변화 정책의 우행이라고 비난한다. 보수 일간지 월스트리트 저널은 "바이든의 기후문제 집착으로 미국과 유럽이 푸틴의 에너지 공갈극에 취약해졌다"며 "환경운동가들이 푸틴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라고 비난했다. 요지는 미국의 석탄 석유 셰일가스 개발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로 집약된다.

사실 미국은 나토동맹을 강화하기 위해서도 전쟁으로 차질을 빚는 유럽의 천연가스와 석유수요를 채워주기 위해 석유와 가스 공급을 늘려주는 게 급선무가 되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렇게 석유와 천연가스를 놓고 벌어지는 푸틴과 서방국가들의 에너지 싸움이 되다시피 했다.

그러면 탄소중립은 흐지부지 동력을 잃고 말 것인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전쟁이 기후변화를 멈춰 세울 수는 없다. 전쟁도 무섭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기후변화가 더 큰 재앙을 잉태하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 전화(戰禍)와 기후재앙이 융합하면서 인류가 가까운 미래에 이중의 곤경에 처할 수 있다.

유럽은 이번 전쟁으로 그 동안 러시아 에너지를 수입하며 유럽평화를 추구해온 정책이 나이브하다는 반성을 하기 시작했다. 하루 아침에 러시아 가스를 줄일 수 없지만 2020년대에 러시아로부터 에너지 독립을 하기 위한 계획에 착수했다. 에너지 안보가 바로 국가안보라는 인식에 도달한 것이다.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가 가장 높았던 독일이 앞장서 왔다.

러시아에 의존하던 유럽연합 국가들은 재생에너지 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리고 에너지효율화를 강화하고 미국 또는 카타르 등에서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입하기 위해 터미널 건설계획을 세우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한 여성과학자가 러시아로부터 에너지 독립을 이루려는 유럽의 염원에 불길을 당겼다. 바로 IPCC 6차 평가보고서 작성의 우크라이나 대표단 단장 스비틀라나 크라코브스카의 활약이다. 2022년 2월 전쟁이 터지자 그녀는 수도 키이우의 아파트에서 세 자녀를 돌보며 작업을 했고, 단원들에게 인터넷만 통하면 작업을 계속할 수 있다고 독려했다. 한 단원은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에 아파트가 붕괴되면서 목숨을 잃었지만 그녀는 단원을 이끌면서 그녀가 맡은 IPCC 보고서를 마무리했다. 이 소식은 과학계에 퍼졌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크라코부스카를 인터뷰해서 보도했다. 그녀는 푸틴의 전쟁에 분노를 터뜨렸다.

"석유 석탄 천연가스를 태우면 온난화를 일으킨다. 러시아는 이 에너지를 팔아 그 돈으로 무기를 산다. 다른 나라들은 이 러시아 화석연료에 의존한다. 그들은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건 화석연료 전쟁이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계속 살 수가 없다 이렇게 가면 우리 문명이 붕괴된다."

유럽은 안보위기와 에너지 위기에 처했다. 지난 16년간 유럽 경제 1위의 독일을 이끌었던 엥겔라 메르켈 총리의 탈원전과 노스트림 가스관을 통한 러시아에 대한 유화정책은 찬사를 받아왔다. 그러나 지금 독일인들은 그 그늘을 벗어나려 하고 있다. 바탕 능력도 중요하지만 유능한 정치 지도자는 시대의 산물이란 걸 실감한다.

태양광과 바람은 독재자라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그래서 유럽은 재생에너지 개발에 더 심혈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00% 재생에너지로만 거대한 유럽이 움직일 수 있을까. 그 공백을 유럽은 어떻게 메울까. 원자력, 수소, 핵융합일까.

오늘의 유럽의 고민이 내일의 바로 대한민국의 고민이 될 것이다. 한국은 더 불리할지 모른다. 에너지에 관한 한 한국은 고립된 섬이기 때문이다.

  김 수 종 
  김 수 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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