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이주호 청년칼럼니스트]  이세돌이 알파고한테 지던 날을 기억한다. 복학한 대학교 2학년 때였다. 나는 바둑 규칙도 모르면서 그게 내 패배처럼 아팠다. 바둑은 어쩐지 인간만이 가능한 예술 같았다. AI에게 예술의 왕좌를 내어주는 모습은 모든 사람에게 제각기 충격을 줬다. 

지난 주말 독서모임 중 잠깐 '이세돌 자리'에 앉아볼 수 있었다.

미국 문학 거장 필립로스의 '울분'이란 책을 다루는 회차였다. 익히 들어온 작가라 기대하고 읽었지만 솔직히 그다지 인상적이진 못했다. 2시간가량 모임에서 무엇을 말할 수 있을지, 어떤 것에 집중해야 하는지 고민하던 참이었다.

다들 머뭇거리던 초입에서 우리 모임에서 가장 얼리어답터인 친구가 말 문을 열었다. “요즘 화두인 챗GPT에 대해서 들어보았냐, 오늘 모임에 앞서 챗 GPT에게 책을 문의해 봤다”면서.

아래는 챗 GPT가 발제하는 문장이다. 

꽤나 상세하게 기술돼 있다. 단지 책 소개에 그치지 않고 중요하게 얘기돼야 할 점과, 혹은 질문하고 싶은 내용도 짚어준다. 챗 GPT 등장은 인공지능이 단순히 바둑 몇 판을 이겨먹는 게 아니라 이제 한 명의 독서모임 게스트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주었다. 어쩐지 무시무시하게 느껴졌다.  

인공지능, AI 시대에서 독서는 어떤 모습으로 바뀌게 될지 상상해 본다.

검색하면 모든 정보가 나오는 세상이다. 그러니 단지 독서가 정보를 얻는 정도라면 비효율적이다. 백과사전에서 단어를 찾는 것보다 네이버에 검색하는 게 더 빠르고 정확하다.

그렇다면 AI 시대에서 책 읽기는 정말 쓸모없는 일일까? 

독서 보수 주의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그런 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책 읽기는 여전히 여러 종류의 형태로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독서는 도착지보다 여정이 중요하다. 좋은 책은 여러 번 우리 생각을 산책시킨다. 멋진 문장과 탁월한 주장은 책을 덮은 뒤에 눈을 감고 천천히 곱씹게 돕는다. 가끔은 책 내용과 전혀 무관한 경험이 평소 고민하던 일에 힌트가 되기도 한다. 좋은 독서 경험은 마지막 장 덮을 때 한 번 크게 터지는 폭죽이 아니라, 책 읽는 동안 작은 축제가 여러 번 열리는 일이다. 

그리고 그런 순간을 마주하기 위해선 그 작은 축제 현장에 온전히 발 도장을 찍어야 한다.

AI가 요약해 주는 효율적인 압축은 그런 순간을 지나칠 수밖에 없다. 지름길에는 내 생각이 확장되고 부유할 수 있는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책 읽는 일은 오래 걸리기 때문에 가치 있다. 마치 운동이 힘들고 땀나기에 의미 있는 일처럼. 책을 읽으면서 여러 생각에 잠기고, 옆길로 생각이 빠지고, 다른 생각으로 번지는 모든 것이 즐거운 독서 여정이다.  

나는 AI가 독서를 대체할 수 있다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분명 AI는 무시무시하다. 다른 모든 산업에서 그러하듯이 분명 독서, 출판 산업에도 새로운 스파크를 만들어 낼 것임은 분명하다. 그게 무엇인지는 두렵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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