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담연칼럼]

‘프사’라는 말 아시나요? 이걸 얼른 알아듣지 못하면 나이가 아주 많거나 디지털세상에 자못 어둡거나 젊은 사람들의 말에 생소한 분입니다. 하기야 나도 이게 ‘프로필 사진’이라는 걸 안 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이런 말을 굳이 써야 할 이유도 없고, 알아야 할 필요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최근에 안 말 중에는 아닥과 열폭도 있습니다. 아닥은 '아가리 닥쳐', 열폭은 '열등감 폭발'이라는 말이랍니다.

요즘은 글자가 세 자만 넘어가도 무조건 줄이고 보는 세상인데, 어떤 경우는 줄임말이 아주 천박하고 상스러워서 거부감이 더욱 커집니다. 예컨대 개딸, 양아들은 이른바 '개혁의 딸', '양심의 아들'의 줄임말이라지만 대체 어떤 사람들이 어쩌자고 이런 말을 만들어내는지 모르겠습니다.

‘프사’는 카톡이나 페이스북 등 SNS에 자신을 소개하기 위해 올리는 사진입니다. 사람마다 개성과 취미가 달라서 그걸 죽 살펴보면 재미있습니다. ‘왜 하필 이런 걸 골라서 올렸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흥미롭기도 하고 의아스럽기도 합니다. 프로필 사진이라고 말할 때의 진지함과 달리 '프사'라는 말에서는 가벼운 유희를 즐기는 듯한 감수성을 느끼게 됩니다.

내 또래의 친구들 카톡에는 주로 손자 손녀들 사진이 나옵니다. 자기 얼굴은 전혀 없이 아들이나 딸의 결혼사진, 가족들의 사진을 실었다가 한두 해가 지나면 갓 태어난 손자 손녀 사진을 추가로 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친구들 모임에서 사진을 내보이며 손자 자랑을 하면 벌금을 내거나 술을 사라고 하는 말도 이제는 거의 하지 않게 됐습니다. 그런 친구들이 대부분일 만큼 할아버지가 된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지요.

사진 페이스북 화면 캡쳐
사진 페이스북 화면 캡쳐

손자나 가족사진 다음에는 그 사람의 평소 활동과 취미를 알게 해주는 사진이나 캐리커처, 풍경 사진, 꽃 사진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거나 붓글씨를 쓰는 사람은 당연히 그림과 글씨 작품을 올리고, 수시로 새로운 작품으로 바꾸곤 합니다.

몇 년 전에 죽은 강아지 두 마리를 잊지 못해 카톡에 10여 장이나 사진을 올린 여성도 있습니다. 자기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60년 전 초등학생일 때의 흑백 사진 한 장만 달랑 올려놓은 친구도 있습니다. 아무 사진도 없는 사람보다는 낫겠지만 나로서는 그 심리가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프사' 밑에 종교적인 구호나 기도문, 한문 성어, 남들이 잘 모르는 외국어 격언을 써놓은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지금까지 거쳐온 사회적 직위나 벼슬 이름을 처음부터 끝까지 나열한 사람, 스스로 자기 아호와 함께 ○○○박사라고 이름을 써놓은 사람들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하품이 절로 나옵니다.

30년쯤 전에 이메일 사용이 일반화할 무렵, 나는 사람들의 이메일 이름을 유심히 살펴보곤 했습니다. 영어이름 약자를 쓰거나 거기에 태어난 연도를 붙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때도 이미 독자적 개성을 발휘해 기발한 이름을 지어 사용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성이 고씨이면 godori나 gostop, 이름이 일석이면 einstein, 이렇게 이름을 짓는 식이었지요.

그렇게 이메일 아이디를 살펴보듯이 지금은 '프사'에 관심을 갖고 유심히 들여다보게 됩니다. 어떤 경우는 같은 이름이 세 사람이나 저장돼 있습니다. 내가 아는 사람은 하난데, 그가 전화번호를 바꿀 때마다 등록을 했든지 아니면 지금은 다른 사람이 그의 전화를 쓰고 있는 경우 같습니다만, 가깝게 지낸 사람이 아니어서 정확하게는 알 수 없습니다.

며칠 전에는 전화번호는 있는데 더 이상 연락을 할 일이 없어 보이거나 이미 세상을 떴을 것 같은 분의 이름도 정리할 겸 카톡의 명단을 챙겨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날마다 카톡에 뜨는 ‘(오늘) 생일인 친구’ 명단에 지난해 11월 암으로 세상을 떠난 고교 동창의 이름이 올라왔습니다. 죽었는데 생일이라니! 그의 카톡엔 그가 숨지기 10개월 전에 태어난 외손자 사진이 맨 먼저 나오고, 언제인지 모르지만 돌아가신 그의 어머니 빈소 풍경이 이어집니다. 30여 장의 사진 중에서 가장 내 눈길을 끈 것은 카메라를 둘러메고 이곳저곳 촬영을 다니던 그가 만개한 홍매화 그늘 밑에서 웃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회사 정년퇴직 후 그는 여러 번 입상도 할 만큼 사진가로 명성을 얻으며 열심히 살았던 사람입니다. 나와는 고교 입학 직후부터 친해져 같은 집에서 하숙도 한 바 있습니다.

그가 암으로 투병 중인 것은 알고 있었으나 어쩌다 보니 소식을 주고받지 않은 지 오래됐습니다. 어느 날 다른 친구를 통해서 그가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몇 달 전에 세상을 떠난 걸 해를 넘겨서야 알게 됐습니다. 호스피스 병동 이야기를 들었을 때 몇 번 전화를 하고 녹음도 했지만 끝내 통화는 하지 못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때 이미 말을 하지 못해 아들이 대신 전화를 받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아들과도 통화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입원 사실도 알리지 말라, 장례도 조용히 지내라고 해서 가족들이 전혀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내 전화기에는 그 친구를 비롯해서 이미 돌아가신 분들의 이름이 몇 명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프사'로 미루어 그 전화번호의 주인은 내가 아는 분이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 바뀐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망인의 전화 그대로입니다.

그런 분들의 이름을 다 삭제할까 하다가도 나와 주고받은 카톡 대화 중에서 버리기 아깝고 아쉬운 것들이 있어 그대로 두는 중입니다. 어디 다른 곳에 보관하면 될 텐데도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게으른 탓도 있지만 왠지 그런 삭제행위가 미안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프사’를 보고 이런 생각을 하면서 떠나간 사람들의 명복과 영원한 안식을 빌고 있습니다.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어서 떠난 사람들을 더 생각하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이 칼럼은 오피니언타임스와 자유칼럼 그룹간의 전재 협약에 따라 게시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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