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이주호 청년칼럼니스트] 취준생 땐 회사를 대학처럼 생각했다. 삼성전자는 서울대, 하이닉스는 연고대로 등치 했다. 주문같이 외워지는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에 시가총액을 대입했다. 행복도 비례할 것만 같았다. 1등 회사 입사자가 15등 회사 신입사원보다 15배만큼 행복할 것 같았다. 

나는 재수, 편입을 하면서 못한 인서울을 취업이라는 구간에선 대기업으로 극복하고 싶었다. 

그리고 운 좋게 대기업에서 1년간 계약직으로 일했다. 지금은 중견기업으로 내가 원하는 직무로 옮기게 됐다. 그러면서 세상에 '객관적으로 좋은 회사'는 없다는 걸 배웠다. 내가 방점을 두는 건 '좋은 회사'가 아닌 '객관성'이라는 부분이다. 

크다고 다 맛있을까...@사진 오피니언타밈스 DB
크다고 다 맛있을까...@사진 오피니언타밈스 DB

객관적으로 좋은 회사라고 불리는 곳은 어디일까. 삼성이면 될까. 삼성은 성과금도 많고, 복지도 좋다. 삼성맨이란 타이틀도 좋다. 

하지만 삼성이 꼭 객관적으로 좋은 회사는 아닌 듯하다. 만약 그렇다면 삼성에서 이직하는 사람을 설명하기 어렵다. 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삼성을 다니다 다른 산업, 다른 직무, 다른 회사로 옮긴다. 만약 회사도 대학처럼 급이 공고하다면 서울대를 다니다 그보다 못한 학교로 편입하는 셈이다. 

삼성에서의 이직은 그곳이 객관적으로 1등이 아닐 수도 있다는 반증이 된다. 

삼성만큼은 아니지만 대기업에서 일했다. 그 산업에서 가장 잘 나가는 회사였다. 하지만 연혁이 짧았다. 체계가 없었다. 가파른 성장세 때문에 업무 강도도 높았다. 야근이 잦고, 주말에 출근하는 일도 많았다. 바빠서 휴가를 쓰는 일도 눈치 보였다. 연말이 되자 인사팀에선 휴가를 소진하라고 했고, 팀원들은 휴가를 쓰고 출근했다. 

만약 대기업이고, 연봉을 잘 주는 회사가 '좋은'회사라면, 이 회사는 부합한다. 나 역시도 그 동기로 입사했다. 성과금도 많고 초봉도 높다. 하지만 워라벨, 체계적인 업무가 우선순위라면 이 회사는 좋은 회사가 아니다.  

말하자면 홍어무침이다. 아버지는 홍어무침을 아주 좋아하지만 나는 싫어한다. 만약 아버지가 홍어무침이 '객관적으로 맛있는 음식'이라고 주장한다면 나는 반대표를 던질 거다. 맛은 지극히 주관적인 지표다. 

회사를 선택하는 일도 홍어무침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정 회사를 선택할 때 철저히 '주관적인' 선호와 우선순위로 결정돼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고 그냥 '객관적으로 좋아 보이는' 회사에 입사했다간 나에겐 아주 잘 만들어진 홍어무침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고~급 홍어로 만들어봤자 내 선호에 맞지 않으면 그건 맛없는 음식이다.   

취준생 땐 구분하기 어렵다. 그러니 Top-down이 아닌, bottom-up방식으로 생각해보길 권한다. 마지노선 리스트를 적는 게 도움 된다. "아무리 연봉이 높아도 지방 근무는 안 한다" 혹은 "아무리 대기업이라고 해도 정체, 혹은 사양 산업에서는 커리어를 시작하지 않는다"와 같은 일을 결정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회사가 추려지게 되고, 집중할 수 있어 더 좋은 결과물도 만들 수 있다.  

나는 첫 회사에서 계약이 종료되고 다음 회사를 찾을 때 딱 3가지 지표를 두었다. 하나는 제약-바이오 산업일 것, 두 번째는 Planning업무를 다룰 것, 세 번째는 SAP를 사용하며 연혁이 깊고 체계적으로 업무를 하는 곳일 것이다. 그리고 현재 회사에 다니고 있다. 물론 첫 번째 회사만큼 대기업이거나, 남들이 치켜세울만한 회사는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세운 3가지 기준에는 정확히 부합한다. 그러니 다니면서 단점이 보이더라도 "그 당시 이것보다 더 좋은 결정을 내릴 수는 없었다"라는 마음을 상기할 수 있다.  

'주관성 기르기'에 대한 말은 꼭 취업에만 국한되는 말은 아니다. 남이 만든 기준이 아닌, 내 기준과 논리에 따라 의사결정 내리는 일. 그리고 그 일에 온전히 책임지는 일.  

나는 그렇게 하면서 조금은 더 주관이 생겼고, 자존감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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